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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 이야기는 가라

<블럭의 팝 페미니즘> 미리 보는 2017년 팝 음악 결산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블럭]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2014년 비욘세와 니키 미나즈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Flawless” 리믹스 버전 이미지

 

여성괴물 성공시대

 

어느덧 올해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다가오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동시에 다음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2017년이 지나려면 아직 두 달하고도 조금 더 남았다. 이 시점에서 결산 같은 것을 내놓기는 애매하지만, 올해 팝 음악 전반의 흐름과 현상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여성스러움’을 벗어난 이들이 다수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바바라 크리드는 영화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그리고 ‘여성 괴물’(The Monstrous Feminine)이라는 개념을 꺼낸 사람이다. 그는 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라는, 그러니까 ‘이빨 달린 질’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많은 신화와 영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분석한다. 여성으로부터 거세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진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 그러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비유했는지를 영화에서 살펴보면 <죠스>나 <피라냐>부터 <감각의 제국>, <원초적 본능> 등 여러 영화 속 ‘입’과 ‘절단’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해석할 수 있다. 거세하는 성기 앞에 선 남성의 두려움인 것이다.

 

여성 괴물이라는 개념은 이제 음악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알앤비 음악은 능동적인 여성이 직접 자신의 성적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거 음악에서 여성은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남성을 기다리고, 남성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며 심지어는 성적 욕망을 이야기할 때도 ‘해 달라’ 혹은 ‘하고 싶다’, ‘해 줘’가 대부분 곡이 지닌 말투였다. 머라이어 캐리를 비롯한 1990년대, 2000년대 팝 가수들이 부른 노래의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위켄드(The Weeknd)와 함께 불렀던 “Love Me Harder”까지도 그랬다.

 

Tell me something I need to know 

내가 알아야 할 걸 말해줘 

Then take my breath and never let it go

그리고 내 숨까지 가져가서 나를 놓지 말아줘

If you just let me invade your space

만약 네가 날 너의 품에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한다면

I’ll take the pleasure, take it with the pain

아프더라도 기꺼이 그 기쁨을 받을게

-Ariana Grande “Love Me Harder” 가사 

▶ i'm a bitch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


하지만 이제 예쁘고 섹시한 여성이 수동적인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는 시대도 저물었다. 올해부터는 여성 괴물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비욘세(Beyonce)나 리아나(Rihanna) 등 예쁘고 섹시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낼 때, 기존의 가부장적 시선으로 여성음악가를 대상화하는 면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그 흐름마저도 조금씩은 바뀌고 있다.

 

‘여성스러움’ 기대를 깬 여성뮤지션들

 

2014년에 니키 미나즈(Nicki Minaj)는 거친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화두를 낳았지만, 지금의 니키 미나즈는 명실상부 스스로 여성 괴물을 자처한 강하고 멋진 음악가다. (관련 기사: “여성 괴물”을 자처하다, 혹은 포장되다)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여성스러움’을 벗어난, 그렇게 기존의 가치관이 기대하는 모습을 깨는 여성들이 다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러한 시도가 처음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케이 미셸(K. Michelle)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그러한 흐름의 시작(?)을 알렸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주목을 하지 않았다. 과거 알앤비 음악이 남성중심적이었고, 남성음악가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곡이 1980년대부터 오랜 시간 유지되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케이 미셸의 알앤비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한 의미가 있다.

 

Missing you is way too hard to do, I’d rather be fucking you

너를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야, 차라리 너와 섹스하고 싶어

-K. Michelle “Hard To Do” 가사

 

▶ 케이 미셸(K. Michelle)이 작년 발표한 앨범 [More Issues Than Vogue] 자켓 이미지

 

지금까지 이런 음악이 작품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올해 시저(SZA)가 발표한 앨범 [CTRL]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매체로부터 호평을 얻는 동시에 가사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Heard you got some new homies/ Got some new hobbies Even a new hoe too

새 친구들이 생겼다고 들었어. 새로운 취미도 생기고, 새로운 년도 생겼다며

Maybe she can come hump you/ Maybe she can come lick you after we’re done

어쩌면 걔가 너와 그 짓을 하고 네 걸 해줄 수도 있겠네 우리가 끝나고 나면

What’s done is done/ I don’t want nothing else to do with it

끝난 건 끝난 거니까 딱히 뭘 하거나 그러고 싶진 않아

Let me tell you a secret/ I been secretly banging your homeboy

비밀을 말해줄게, 난 네 절친이랑 몰래 자곤 했어

While you in Vegas all up on Valentine’s Day

네가 발렌타인 데이에 종일 라스베가스에 있을 때 말이야

-SZA “Supermodel” 가사

 

▶ 올해 시저(SZA)가 발표한 앨범 [CTRL] 자켓 이미지

 

이곡 외에도 “Love Galore”에서는 ‘니네 남자 놈들처럼 나도 여자 좋아하고 그래’와 같은 내용과 요즘의 연애 문화를, “Drew Barrymore”에서는 데이트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Normal Girl”에서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앨범은 평범한, 미국에 사는 20대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그 내용 하나하나가 지독히 현실적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알앤비 음악가 중 한 명인 저네이 아이코(Jhene Aiko)는 [TRIP]이라는 앨범을 통해 약물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네이 아이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순수한 여성 이미지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지적했다. 자신은 딸이 있는데도 어떻게 그런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도 말했다. 앨범 [TRIP]은 전반적으로 약물에 관한 경험담을 담았다. 앨범은 단편영화와 앨범, 책이 하나로 묶여있는 프로젝트 중 일부이며, 저네이 아이코는 어둡고 깊이 있는 세계를 선보인다.

 

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동시에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여성음악가들이 올해 부각되었다.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와 켈라니(Kehlani)는 각각 [1992 Deluxe]와 [SweetSexySavage]라는 작품을 통해 두 사람이 태어난, 그리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은 1990년대의 무언가를 선보인다. 두 사람 모두 ‘톰보이’ 이미지를 드러내는가 하면 ‘여성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I really like Marvel ’cause characters look just like me

난 정말 마블(미국의 코믹스와 영화 제작사)을 좋아해, 캐릭터들이 나 같거든

And women don’t have roles that make them look too sexually

그리고 여성들이 너무 섹슈얼하게 보이는 역할을 안 하잖아

- Princess Nokia “G.O.A.T” 가사

 

▶ 올해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가 발표한 앨범 [1992 Deluxe] 자켓 이미지

 

레게, 힙합, 댄스홀에서도 드러나는 여성의 목소리

 

카디 비(Cardi B)는 1998년 로린 힐(Lauryn Hill)이 “Doo Wop (That Thing)” 이후 처음으로 피쳐링(곡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 없이 본인의 랩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다른 피쳐링이 있는 곡까지 포함하더라도 카디 비는 역대 다섯 번째 빌보드 1위 여성래퍼다.

 

카디 비는 외에도 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새 역사를 썼는데, 오랜 시간 니키 미나즈 외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 여성 래퍼가 전무했던 가운데 등장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여기에 카디 비는 니키 미나즈와 축하, 감사의 메시지를 SNS로 나누기도 했다. 카디 비는 니키 미나즈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카디 비는 마담느와르(Madamenoire)를 비롯한 복수의 매체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그를 여성의 힘 모으기에 있어 10대, 20대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는 매체도 있었다. 사실 카디 비는 클럽 스트리퍼 출신인 동시에 SNS 유명 인물로 먼저 알려졌다. 이후 TV 프로그램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가 하면, 레게와 힙합을 아우르는 음악 스타일로 음악적인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했다.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여기며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카디 비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래퍼 배드 베이비(Bhad Bhabie) 역시 주변인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래퍼 카디 비(Cardi B)의 싱글 “Bodak Yellow” 이미지

 

리코 내스티(Rico Nasty), 이샤나(Ishawna) 등 대중음악 시장의 새로운 문을 여는 데 있어 힘이 되는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샤나는 남성중심적이며 동성애 혐오 가사가 만연했던 레게, 댄스홀 시장에서 여성의 힘과 목소리를 이야기한다.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이샤나의 “Equal Rights”의 가사에는 자신의 남성에게 구강성교를 받고 싶다고 말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상황과 표면적인 이야기 자체는 이렇지만 그 안에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댄스홀 커뮤니티에서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처럼 올해는 끊임없이 좋은 작품, 의미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지니어스(Genius)를 비롯한 몇 해외 매체에서 2017년의 팝 음악은 과거와는 다른 현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아직 그러한 목소리가 많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더라도 올해는 앞선 2010년대 어느 해보다 여성뮤지션의 새로운 시도 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7년의 팝 음악은 과연 어떤 느낌인지, 앞서 소개한 음악을 하나씩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 비욘세 feat 니키 미나즈(Nicki Minaj) “***Flawless”(remix) http://bit.ly/1rSrYLP

※ 케이 미셸(K. Michelle) “Hard To Do” http://bit.ly/1HpVOPc

※ 시저(SZA) “Supermodel” (Acoustic Version) MTV http://bit.ly/2haE2dh

※ 저네이 아이코(Jhene Aiko) “Overstimulated” (Audio) http://bit.ly/2y4pJkW

※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 “G.O.A.T” http://bit.ly/2t8yFSc

※ 카디 비(Cardi B) “Bodak Yellow” http://bit.ly/2tdJ6Et

※ 이샤나(Ishawna) “Equal Rights” http://bit.ly/2i64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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