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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이 스펙이냐” 채용성차별 현황 속속들이 밝혀라!

금융권 성차별 고용에 항의, 재발방지 촉구하는 기자회견



지난 2일,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의회의 여성의원들이 모여 성별 임금 격차(gender pay gap)을 해소하기 위해 힘을 합쳐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 움직임을 이끈 영국 노동당의 스텔라 크리시(Stella Creasy)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여성의원들도 참여한 초당적인 모임에서 페이미투(#PayMeToo)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영국의 공공기관 중 90%가 남성에게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의 움직임이다.


미국에서도 미투(#MeToo)에 이어 영화산업, 광고업계, 언론계, 실리콘밸리 등 각 분야에서 여성의 부재(不在)와 직장 내 성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들이 결속하고 있다. (관련 기사: 미투, 타임즈업 운동…‘여성노동’ 이슈로 이어져 http://ildaro.com/8180)


국내서도 기업들의 채용 성차별에 항의하며 공정한 채용,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 을지로입구 KEB하나은행 앞에서 열린 채용성차별 철폐 기자회견. ⓒ일다(박주연 기자)


최근 KB국민은행이 2015년 상하반기와 2016년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에서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임의로 올려준 일로, 인사팀장이 검찰에 기소(남녀고용평등법 위반)된 사실이 알려졌다. 4월 2일에는 금융감독원이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 잠정결과’를 발표하며, 하나은행이 ‘사전에’ 남녀 4대 1의 비율로 차등해 채용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고했다. 합격점수를 남녀 다르게 적용해 여성들을 서류전형 단계에서부터 떨어뜨린 것이다.


금융권의 채용 성차별 비리가 알려진 후, 여성/노동/인권 단체들과 모임들이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을 결성해 24일(화) 오전 11시 을지로입구역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자라서 떨어졌다’ 성별이 스펙인 사회


하나은행 앞 기자회견에서 진행을 맡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정하나 활동가는 이날 아침 한겨레신문 기사를 인용하며, 채용 성차별 문제를 방관하는 정부를 질책했다.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 성차별 채용실태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해보겠다며 고용노동부에 협조를 요청했는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를 거절했다. “지금까지 금융기관의 채용비리 등은 관행이었는데, 과거 사례까지 들추면 크게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게 이유다.(“금융기관 혼란 우려돼 채용비리 전수조사 거절”, 한겨레신문 2018년 4월 24일자)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주수정 활동가는 “우리 단체가 2013년에 만들어졌고, 요즘 청년실업 문제 관련해서 저희를 불러주시는 곳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여성청년’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여성청년이 그냥 청년과 뭐가 다르냐, 왜 여성청년을 분리해서 말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묻는 분들게 팩트를 알려드리겠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여기 있는 하나은행은 여성 지원자의 커트라인 점수를 남성에 비해 48점이나 높였고, 저기 있는 국민은행은 남성 지원자 100명의 점수를 올려줬습니다. 이래도 ‘여성청년’ 이야기를 할 필요 없습니까? 많은 기업들이 채용 성차별과 관련해서 조마조마하고 있을 것입니다. 남자 먼저 뽑으시죠? 압박 면접이라는 핑계로 여성들에게는 남자친구 있느냐, 결혼하고 출산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시죠? 요새는 성폭력 당하면 미투 할 거냐고 물어보시죠?”


▶ 을지로입구 KEB하나은행 앞에서 열린 채용성차별 철폐 기자회견 피켓 문구. ⓒ일다(박주연 기자)


청년유니온의 김영민 사무처장은 “많은 청년들이 이력서를 50개, 100개 쓰고도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지금 채용시장의 상황”이라며, “내가 여성이라서 떨어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청년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우기 “채용 과정의 불공정함이 청탁의 수준을 넘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


또 “이런 부정이 기업의 묵인 없이 인사 담당자 개인의 행위로 가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며, 채용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개인의 잘못 혹은 실수라고 무마하려 드는 기업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손영주 회장은 “금융권 기업들의 채용비리에 분노한다. 기업들은 ‘조정’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조정이 아니라 ‘조작’이다”라고 외쳤다.


손영주 회장은 무엇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실질적으로 처벌받는 기업은 거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고용노동부에서 ‘오래된 관행’이라는 이유로 손을 대지 않으면 어느 정부 부처가 이 일을 담당하고 처리하겠냐” 라고 비판했다. 이어 “담당자 한두 명을 처벌하는 방식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 관행으로 지속되어 온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정부에 당부했다.


▶ KB국민은행 앞 창문 외부에 100개의 피켓 붙이기 퍼포먼스중인 기자회견 참가자들. ⓒ일다(박주연 기자)


성차별 채용, 이제는 뿌리 뽑아야 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KB국민은행 앞으로 이동한 후, 발언을 이어나갔다. 정의당 박인숙 여성위원장은 “미투(#MeToo)는 성차별 구조에 의해서 벌어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페이미투! 제대로 고용하고 제대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했다.


민중당 장지화 공동대표는 “부모의 재산만 스펙이 되는 줄 알았는데 성별도 스펙이 되는 지몰랐다. 이렇게 채용 성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청년에게 꿈을 키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사회는) 저출산 운운하며 결혼하라, 임신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금융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지적하는 한편, 정부와 기업 측에 세 가지 변화를 요구했다.


첫째, 정부는 기업의 채용 과정 중 성차별 현황을 명명백백히 조사하여 제대로 실태 파악하라: 성차별적 면접 질문이나 점수 조작 등 사회에 만연한 채용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채용과 모집에 있어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을 처벌하고, 엄정한 시정조치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강화하라: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1항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된 ‘채용 성차별 금지 조항’의 처벌 규정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하다. 채용에서부터 성평등 노동 가치가 실현되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기업은 채용의 전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채용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매년 신규 채용 성비를 공개해, 채용 성차별을 시정하고 있는지 기업은 사회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


▶ KB국민은행 명동점 창문에 붙은 피켓 문구들. ⓒ일다(박주연 기자)

 

이번 기자회견을 주최한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에 함께하고 있는 단위는 약 60개 단체로, 한국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인권/노동단체들과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불꽃페미액션 등이 함께했다. 여기에 고려대, 국민대, 동국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인천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등 각 대학 총여학생회와 여성주의 교지, 페미니즘 학회와 동아리 등 취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참여가 유독 돋보였다.


여성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채용 불평등과 임금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절망에 대해 이제 정부와 기업은 책임 있는 변화로 답해야 한다. 부조리한 성차별 고용 비리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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