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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났다” 영화 <어떤 개인 날>
 

영화 <어떤 개인 날>은 이제 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 이혼 1년차 여성 ‘보영’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여성운동가로 활동해 온 이숙경 감독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첫 장편인 이 영화는, 감독이 자신의 딸과 아버지를 주인공의 딸과 아버지로 직접 출연시키고 있을 만큼, 실제 이혼을 경험한 감독 자신의 삶이 속속들이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도 이야기하고 있듯, <어떤 개인 날>의 메시지는 ‘한 이혼여성의 일상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록은 ‘이혼’의 문제를 넘어, ‘여성’을 넘어 보편적인 이해와 소통의 문제로 나아간다.
 
이혼을 했건 안 했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일상의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출구 없는 감정들. ‘까칠한 이혼녀’ 보영에게 보내는 아래의 편지는 이혼이 아니라 결혼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한 여자가 <어떤 개인 날>의 보영의 일상을 뒤쫓으며 느꼈던 화해와 치유의 감정에 대한 고백이자 감사의 인사다.
 
<어떤 개인 날>의 보영언니에게

 
언니, 그냥 솔직히 말할게요. 정말 처음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어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야 이 자식아, 차 안 빼!”라며 택배기사랑 드잡이하는 언니 모습은 정말 볼만 했거든요. 골목길 저 너머에서 딸내미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마지막까지 “너 아까 나한테 욕했잖아! 사과해. 사과 안 해?”라며 악쓰는 모습은 ‘아, 저 여자 정말. 까칠한데다가 꼬이기까지 한 거 아냐. 세상 살기 힘들겠구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구요. 
 

화를 삭이지 못해 담배를 뻑뻑 피우며 도착한 출판사에선 “계약 파기하시면 두 배로 위약금 물어야 되는 것 아시죠?”라는 원고독촉이 기다리고 있고, 이혼한지 일년 만에 문자로 결혼을 통보하는 전남편을 만나서는 ‘불편하니 앞으로는 만나는 것도 연락도 안 했으면 한다’는 말이나 듣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은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 있고, 아무리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셔대도 써야 할 글은 안 나오고. ‘참 이 여자, 인생이 왜 이러냐’라는 말이 절로 나옵디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언니는 “냉정한 년”이라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전 좀 그랬어요. 아니 뭐 이혼했다고 다들 저렇게 사나? 텔레비전 보니 이혼하고도 쿨하게 멋지게 잘만 사는 사람들도 많더만. 사람이 저리 까칠하고 꼬였으니 그 모양이지. 찌질하게 궁상 떨지 말고 탁탁 털고 일어나서 멋있게 좀 안되나? 뭐 이런 생각들이 들더란 말이죠.
 
이건 ‘냉정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라고요? 세상살이가 텔레비전에서 보듯 그렇게 우아하고 쿨하게 정리정돈 되는 건 줄 아느냐고요? 그렇게 ‘쿨하게’를 외치는 너는 궁상 떨고 구질구질해질 때, 왠지 세상이 나만 못살게 구는 것 같고 온갖 일에 히스테리컬해지는 그런 때가 없느냐고요? 그래요, 있습니다. 그런 때 있어요.
 
근데 말이죠, 언니. 저도 가만 보니 언니만큼이나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기분 따위 가슴 속 저 깊은 서랍장에 처박아두고 “난 괜찮아”하며 살고 있었거든요. 물론 그걸 깨달은 건 영화가 한참 더 진행되고 난 후였지만 말입니다.

그저 ‘까칠하고 피곤한 여자’ 같기만 하던 언니 모습에 가슴이 싸한 연민이 느껴진 건 오히려 그 긴 하루를 견디다 못한 언니가 폭발하던 순간이었어요. 안 나오는 글을 붙잡고 있다 못한 언니가 맥주나 한잔 할까 하는 마음에 찾아간 동네친구는 몸도 피곤하고 일도 많고 등등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왠지 언니를 피하는 듯한 모습이었죠.
 

한참을 조용히 탁자만 바라보던 언니가 던진 말은, “너 나 이혼하고 나서 변했어. 내 문자에 답도 안하고, 전화도 안 받고. 왜 니 남편이 이혼한 여자랑 어울리지 말래?”
 
아, 이 얼마나 유치한 발언입니까. 그런데 그 순간 가슴 한쪽이 뜨끔했던 건 저뿐이었을까요? 세상 어디에도 내 몫의 위로나 위안 따위는 없는 것 같은 기분의 어느 날, 무심한 친구에게 화풀이하듯 터트리는 억울하고 야속한 기분.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지 내가 제일 잘 알기에, 떠올리는 순간 스스로가 끔찍해지는 그런 마음, 저도 알지요. 그래서였을까요? 함께 퇴근하는 친구 부부의 뒷모습을 언니가 말없이 바라볼 때, 제 마음에도 조용히 새벽의 싸아한 바람이 불더이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을 아슬아슬하게 버텨가던 언니에게 나타난 강적이 있었으니, 바로 구수한 남도사투리를 구사하는 민요강사 정남언니였지요. 1박2일 일정으로 특강을 하러 간 연수원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두 여자. 하지만 괜히 낯선 사람이랑 말 섞기도 싫고 밀린 원고나 마치고 싶은 언니에게, 맥주나 한잔하자며 넉살 좋게 들러붙어선 ‘이혼선배’인 자신의 얘기를 술술 풀어놓는 정남언니는 참 난감한 상대 아니겠어요? 정남언니 말마따나 우리 같은 “서울 다마네기”들은 마음에 꼭꼭 자물쇠를 채우고는 누군가 다가오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날을 곤두세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맥주 잔을 하나 둘 비워갈수록 이혼은 왜 했느냐, 한번도 속 시원히 힘들단 얘길 해본 적 없지 않느냐, 말을 해야 알지 왜 말을 않느냐, 울고 싶으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 될 것 아니냐며 다가서는 정남언니에게 언니는 결국 버럭 화를 내곤 돌아눕고 말았죠.
 
살아가는 일이 어느새 일상의 피로와 무게를 그저 ‘견디는’ 일이 되었기에 내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지는 하루하루. 그 상처가 곪고 곪아 남의 눈에까지 보이는데도 “난 괜찮아”, “잘 버티고 있어”라며 고집스레 외면해 온 시간들. 
 
아마 그날 밤 정남언니가 언니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언니가 글쓰기수업 수강생들에게 무미건조하게 내뱉던 바로 그 말일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의 풍경을 보세요. 그러면 이야기가 보일 거예요.” 바보처럼 자기 마음은 들여다보지도 못하면서 남들이나 가르치려 하고 있으니 정남언니 성격에 참 답답하게도 보였겠죠.

 
그런데 답답한 건 언니뿐이 아니었더라구요. 정남언니에게 남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곤 불 꺼진 방에 모로 누운 언니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을 때,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언니를 보며 ‘왜 저리 까칠하게 굴어?’, ‘참 안쓰럽긴 하네, 쯧쯧’ 하고 있던 나도 사실은 “난 괜찮아”하며 마음을 꽁꽁 싸맨 채 버티고 있더란 말이지요.

영화를 보기 바로 전날 밤, 저도 언니와 똑같이 누워 소리도 안낸 채 조용히 울다 잠들었단 걸 그 순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은 분명 그냥 우연만은 아닐 거예요. 언니처럼 까칠한 “서울 다마네기”인 나, 그리고 어제의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울고 있는 언니의 모습. 언니가 길고 긴 길을 돌아 언니마음을 들여다보게 됐을 때, 언니를 엿보던 저 역시 돌봐주는 이 없던 내 마음과 맞닥뜨리게 된 거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포스터를 보니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와 닮은 누군가를 만났다.” 마흔 언저리의 이혼 1년 차인 언니와 서른 언저리의 비혼인 나. 달라 보이지만 나와 너무나 닮은 언니를 만나 어찌나 고마운지요.
 
연수원에서 돌아온 다음 날 딸을 품에 안으며 “안전벨트”라 읊조리는 언니의 말에 마음이 놓였던 건, 그 말이 “너는 나의 안전벨트”인 동시에 “너의 안전벨트가 되어줄게”라는 다짐으로 들렸기 때문일 거예요. 내 마음을 돌보고 바로 보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돌볼 수도 없을 테니까요. 언니가 맞은 ‘어떤 개인 날’이 저에게 역시 ‘또 다른 개인 날’이 될 수 있을 듯해서, 내 곁의 누군가에게 나도 말하고 싶어졌어요. 조용히, “나의 안전벨트”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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