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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동‧청소년 성착취’에 왜 이리 무방비한가?
온라인에서 증가하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그루밍과 성매매
32세의 성매수자는 채팅어플을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17세) C와 만나 12만원을 주고 자신의 차량에서 성매매를 했다. 또한 C 몰래 차량 블랙박스 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이후 C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어플을 삭제하고 연락을 차단했지만, 성매수자는 C의 SNS에 C의 사진을 올리며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동영상이 있다는 걸 미끼로 성관계를 하면 지워주겠다고 협박했다. C는 십대여성인권센터로 도움을 요청했고, 센터 측은 경찰서에 동행했으며, 경찰은 성매수자를 긴급 체포했다. 그의 차량 블랙박스에선 수많은 동영상이 발견되었다.
지난 2일 열린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학술대회 <아동 청소년 성매매, 착취의 구조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에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가 발표한 사례 중 하나다.
▶ 11월 2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학술대회 <아동 청소년 성매매, 착취의 구조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현장. 왼쪽부터 김진 변호사(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강정은 변호사(사단법인 두루),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 성균관대학교 인권센터 강지명 전문위원.
최근 국내 웹하드 업체를 운영하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력과 괴롭힘 행각이 주목을 받으며, 동시에 불법촬영과 사이버성폭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웹하드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성매매 시장처럼 ‘손쓰기 어려운 규모의 돈 되는 산업’이 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성매매 시장처럼 산업이 된 ‘사이버성폭력’ http://ildaro.com/8280)
여기서 또한 놓치지 않고 대응해야 하는 현실 중 하나가 바로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매매와 성착취다.
채팅앱 등으로 성매매 유입, 연령대 낮아져 초등생까지
2016년에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 (성매매 포함) ‘조건만남’을 하게 되는 경로의 74.8%가 채팅앱(37.4%)과 랜덤채팅앱(23.4%), 채팅사이트(14%)인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 매체를 통한 유입 비율이 굉장히 높다.
국내에서 아동‧청소년 성매매와 성착취는 지속되는 문제였지만, 디지털네이티브(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세대)가 등장하고 산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복잡해지고 더 교묘해지고 있다. 성매수자들이 아동‧청소년의 성을 착취하기에 더 용이한 환경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 자료 중 (출처: 여성가족부)
십대여성인권센터 사이버또래상담팀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알선하고 유인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SNS, 개인TV방송의 특징을 조사한 결과를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채팅 어플리케이션의 특징은 “회원가입 절차 없이, 성인인증 절차 없이 가입할 수 있어서 익명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 내용이 저장되지 않으며, 일부 어플리케이션은 캡처도 불가”하다. “증거로 남길 수 없다.”
이런 어플리케이션은 단속을 피해 “업데이트 명목으로 자주 탈바꿈”하며 “이름이 자주 바뀌고 검색도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채팅 어플리케이션에서 사용되는 성매매 관련 용어 또한 “줄임말, 신조어를 사용하며, 쓰는 말을 자주 변화”시킨다.
채팅 어플리케이션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도 쉽게 ‘조건만남’ 등을 검색할 수 있고 성매매를 할 수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런 채팅 등에 참여하는 “연령이 초등학생까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하며, “최근 혼혈 여성을 찾는 남성 성매수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래서 ‘혼혈’이라는 특징을 강조하는 여성 이용자도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나날이 기술은 발전하고 성매수자들이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지는 반면 “현재 국내에서는 스마트폰 채팅 앱이나 인터넷 카페/채팅을 규제할 관련 법령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재 수단조차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조진경 대표는 지적했다.
각국은 온라인 그루밍과 성착취에 어떻게 대응하나
온라인에서 증가하는 아동‧청소년 대상 그루밍(Grooming, 성인이 아동‧청소년과 성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조금씩 친분을 맺어가며 심리적으로 길들이는 것)과 성착취는 세계적으로 당면한 문제이다. 각국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고, 강력한 제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네덜란드 ‘스위티’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중에서 캡쳐. (출처: https://youtu.be/WVwJcrZdd3U)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하나의 예시로 네덜란드의 ‘스위티’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이 프로젝트는 ‘열 살의 필리핀 소녀 스위티’라는 가상의 캐릭터(인공지능로봇)를 웹상에 심어두고, 성매매와 성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성인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채팅을 진행하며, 그들이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고 그루밍하는 방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스위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수천 명의 남성들이 스위티에게 돈을 대가로 섹스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결과를 토대로 영국, 호주, 폴란드에서 관련 법안을 제정했다. 올해 6월 네덜란드에서도 ‘(스위티와 같은) 가상의 아동‧청소년 캐릭터에게 성적인 목적으로 접근하고 성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것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안’(Computer criminality III)이 통과되었다.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는 추세이다. 국제실종아동센터(ICMEC)에서 2017년 발표한 <성적 행위 목적의 아동 대상의 온라인 그루밍> 보고서에 따르면, ‘그루밍’(혹은 섹슈얼 그루밍)의 정의는, 성적인 관계를 목적으로 아이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아이 혹은 심지어 그 가족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행동이나 활동을 의미한다. 그루밍은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미묘하고 지속되며, 계산적이고 통제적이며, 계획적이고 정신적인 조작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엔 이런 그루밍이 앱채팅 등을 비롯한 온라인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선 2017년 4월, 그루머(그루밍을 행하는 이)가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성범죄자로 등록되는 법이 통과됐다. 성적인 행위가 일어나기 전 그루밍 단계에서 범죄자로 잡아들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영국 정부의 언론 보도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SNS, 이메일, 편지를 포함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성적 행동을 요구하거나 그런 행동을 유도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모두 그 대상이 된다.
▶ 국제실종아동센터(ICMEC)의 <아동 대상의 온라인 그루밍> 보고서에서, 관련 법률이 있는지 여부를 표기한 그래프 중
그럼, 한국의 상황은 어떠할까? 국제실종아동센터(ICMEC)의 <아동 대상의 온라인 그루밍>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법률에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고, 온라인 그루밍과 관련된 법안도 찾아볼 수 없으며, 아동‧청소년을 만날 목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만날 목적이 없더라도 진행하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법안도 물론 없다.
한편, 학술대회에서 토론에 참여한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그루밍을 규제하는 법으로는 유일하게 아동청소년보호법에서 ‘성매수 유인행위’에 관한 처벌 조항이 있으나, 실제로 작동하기엔 많은 한계가 있으며 처벌된 사례도 발견하기 힘들다”고 보고했다.
많은 앱들이 익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큰 난관이다. 이현숙 대표는 이 법이 실효성 있으려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함정 수사를 할 것이 아니라, 경찰이 미성년자로 위장하여 수사하는 기법을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성착취’다
한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확산되는 아동‧청소년 대상 그루밍과 성매매와 성착취에 대응책을 마련하는 과제에 앞서, 이 같은 행위가 ‘성착취’라는 관점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정은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본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분석하면서, “아동의 성적 학대를 포함한 성착취로부터 보호 받을 권리가 포함된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한국은 비준했지만, 그 협약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아동의 매매‧성매매 및 아동 음란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아동‧청소년의 합의가 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나 대가를 위해 성적 행위를 수행하도록 아동을 찾아내거나 알선 및 제공하는 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제연합(UN)의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에도 ‘성매매를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로 규정’하고 있다.
김진 변호사(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는 <해외의 성매매 아동청소년 관련 법제도 현황>을 살펴보며 “한국에선 여전히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 피해자로 보지 않고, 범죄에 가담한 ‘대상청소년’으로 본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반해 “영국은 중범죄법(Serious Crime Act 2015) 개정으로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를 통한 아동학대’가 ‘아동 성착취를 통한 아동학대’로 변경되었다.” 미국에서도 “18세 미만인 자가 성매매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은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에 포함되기 때문에, 피해자는 부적절한 시설에 구금되지 않으며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도록” 하고 “성매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김진 변호사는 “만13세 아동이 운전하고 있는 경찰관을 불러 구강성교를 제안하고 20달러를 받은 사건에서 ‘아동의 동의는 성인인 가해자에게 이용되고 통제되는 것뿐’이라며 성착취로 판결한 사건”의 판례도 공유했다.
“캐나다 또한 ‘성착취아동보호법’이 있으며 다방면으로 피해자를 지원한다.” 김 변호사는 “캐나다의 경우 원주민 아동의 빈곤, 약물 남용, 교육 부족 등의 문제가 성착취와 연결된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국내에서도 ‘혼혈 여성’을 찾는 성매수자들이 등장한 만큼 이주민 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가 증가할 가능성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참여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임수희 부장판사는 “한국에서 성범죄 구성 요건의 ‘디폴트’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지만, 아동‧청소년의 경우 폭행 또는 협박이 필요 없다.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우는 이들의 성을 취하기 위해선 굳이 물리력을 쓸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임수희 판사는 “이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라고 한번 더 강조했다.
심각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매매에 가담한 아동‧청소년을 ‘대상청소년’으로 명명하며 소년원 등의 구금을 ‘보호처분’으로 내리는 기존 법안 내용을 삭제하고, ‘피해자’로 명명하면서 ‘지원 보호’하는 것으로 개정하는 발의안(2016년 8월 남인순 의원실 발의)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김삼화 의원실 발의안(2017년 2월)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번 젠더법학연구소 학술대회에서는 웹하드 카르텔 뿐 아니라, 채팅앱과 사이트 등을 운영하고 성매매를 알선하면서 수익을 얻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그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제기됐다. 참가자들은 적어도 아동‧청소년이 ‘성매매 가담행위’로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불합리한 법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하며,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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