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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여성’ 미츠키는 왜 카우보이가 되라고 할까

<페미니스트라면 이 뮤지션> 미야와키 미츠키


※ 필자 블럭(bluc): 음악에 관해 글 쓰는 일과 기획 일을 하는 프리랜서이며, 2019년은 공부가 목표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여기 한 가수가 있다. 언제나 무대에 홀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한다. 그러나 강렬하다. 거침없고, 그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없어 보인다.


▶ 미츠키(Mitski)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영화화한 <피아니스트>(미카엘 하네케 감독, 2001)의 주인공 에리카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이 가수의 모습은, 음악가 미츠키(Mitski)의 앨범 [Be The Cowboy](2018) 속 가상의 주인공이다.


미츠키는 이 가상의 여성을 두고 ‘이 캐릭터는 확실하게 내 안에 있는 무언가’라고 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내면이 억압된 에리카가 강렬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듯, 미츠키가 만든 주인공 역시 어떤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미츠키는 “세계를 돌면서 나는 여성으로서 많은 통제를 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츠키의 실제 경험에서 온 얘기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음악가로 꼽히는 미츠키


미츠키는 가수 로드(Lorde)의 투어 오프닝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투어를 진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던 것, 느꼈던 것 중 하나의 키워드가 ‘통제’였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Be the Cowboy”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자신이 처했던 모습과 반대로, 카우보이처럼 모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고 또 홀로 강하게 우뚝 선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런 존재로 보이고 싶어서다.


▶ 미국의 많은 매체들이 2018년 최고의 앨범으로 꼽은 미츠키(Mitski)의 5집 [Be The Cowboy] 커버. 아시아계 여성이 겪는 통제와 심리적 억압을,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카우보이라는 제목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미츠키는 왜 카우보이가 되고 싶어 했을까? 미츠키는 그의 본명이며, 성까지 더하면 미야와키 미츠키(1990년생)다.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터키, 중국, 말레이시아, 콩고 등 13개 국가를 거치며 살았고, 마지막에는 뉴욕에 정착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해왔고, 음악을 학교에서 공부한 뒤 그는 직접 혼자서 앨범을 발표했다. 학생 때 프로젝트의 하나로 발표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때부터 미츠키의 음악은 시작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개성이 있었고, 그런지부터 팝까지 다양한 문법을 절묘하게 사용하며 인디음악 시장에서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2015년에는 인디음악 명가라 불리는 레이블 ‘데드 오션스’(Dead Oceans)와 계약했다.


13개국을 거쳐 생활하면서 정체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는 점에서, 미츠키는 늘 고민이 많았고 혼란을 많이 겪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을 시기에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숙제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도움이 되었던 건 음악이었다. 1970년대 일본 팝 음악부터 2000년대 주류가 된 팝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들을 맞이한 결과, 미츠키는 다양한 음악 문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직접 앨범을 발표할 땐 친구와 단둘이서 모든 연주와 믹싱, 마스터링, 커버 디자인까지 해낸 덕에, 앨범 제작 과정 전체를 자신의 시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힘겹게 만든 앨범은 여러 매체를 통해 주목을 받았고 결국 레이블 계약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미츠키의 명작 중 하나인 [Puberty 2]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미츠키가 2016년에 발표한 [Puberty 2] 앨범.  인종과 섹슈얼리티, 계층 문제까지 담고 있는 명작으로 꼽힌다.


난 ‘베스트 아메리칸 걸’이 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Puberty 2](2016)는 피치포크(Pitchfork) 같은 음악 매체부터 타임지까지 여러 매체에서 그 해의 베스트 앨범으로 꼽은 바 있다.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었으니, 그때부터가 미츠키 전성기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성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과 섹스 이후의 상실감을 담은 “Happy”도 인상적이지만, 앨범의 타이틀곡에 해당하는 “Your Best American Girl”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미츠키는 이 한 곡 안에 인종차별과 성차별, 문화적 차이와 계층 문제까지 담아냈다.


“네 엄마는 어떻게 내 엄마가 날 키웠는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난 (이주민 여성으로서 가사노동의 현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한다”는 한 줄 안에는 가사노동을 가족 안과 밖에서 ‘누가’ 맡게 되는지, 누구의 눈에 그 노동이 보이는지,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양육 문화까지 생각해볼 여지가 많이 담겨있다.


여기에 “넌 완전 아메리칸 보이잖아, 난 ‘베스트 아메리칸 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라는 가사를 통해 복잡한 맥락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 미츠키의 “Your Best American Girl” 뮤직비디오 중에서


[Be The Cowboy] 앨범도 알 수 있듯이, 미츠키는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을 가사를 통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팝과 록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그 안에서 더욱 다양하고 세분된 문법을 사용할 줄 아는 그의 음악은 곡 하나하나의 곳곳을 뜯어보게 될 정도로 그 전개와 구성이 매력적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가 이기 팝(Iggy Pop)은 미츠키를 두고 미국의 가장 위대하고 진보적인 송라이터(songwriter, 작사가 겸 작곡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카우보이, 역설적인 이미지를 통해 말하는 여성의 해방


이러한 유명세가 이어지며 미츠키는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게 되었다. 13개 국가에서 살며 거쳤던 사춘기는 앨범 제목처럼 [Puberty 2](두 번째 사춘기)에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긴 투어는 오히려 미츠키에게 더욱 큰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게 했고, 그 결과 [Be The Cowboy]가 탄생하게 되었다.


카우보이는 미츠키의 상황과 정 반대에 있다. 과거지향적이고, 자신의 폭력적인 모습을 아름답게 포장하며, 무엇보다 미국 문화를 보여주는 백인 남성이다. 그러한 카우보이라는 용어를 가져와서 쓴 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미츠키는 전한다. 세상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작에 이어 외로움과 고독은 이어지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적인 방식이 더욱더 짧고 간결해지며, 동시에 강렬해져서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 미츠키의 [Be the Cowbody] 앨범 두 번째 싱글 “Nobody” 뮤직비디오 중에서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Be The Cowboy] 속 가수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함축된 문장과 전개를 담아 메시지를 펼쳐낸다. 사람들은 이 간결함과 실험적인 구성에 반해 5개의 매체에서 2018년의 앨범 1위로 꼽았으며, 21개 매체에서 2018년의 앨범 중 하나로 선택했다.


간헐천처럼 뜨겁고 격한 감정이지만 그걸 드러낼 수 없는, 여성으로서 느낀 정신적 억압을 담은 곡 “Geyser”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랑 노래처럼 들리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통제와 심리적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유의 외롭고 고립된 정서를 흥겨운 댄스 팝 사운드로 풀어내 아이러니함을 더한 “Nobody”를 비롯해, 미츠키의 곡들은 여러 상징과 은유를 통해 그 의미를 담아낸다. 짧은 작품들이라 여러 번 감상해도 부담이 없고,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의미가 더욱 다가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지닌 복잡함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대신 함축적으로 아름답게 음악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미츠키가 오는 2월 15일 내한 공연을 한다고 한다. 빠르게 표가 매진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한국에도 미츠키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우보이가 되어라’고 한 미츠키는 억압에서 해방된 여성상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는 중이다. (블럭)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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