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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동일 임금” 이슈 제기한 미국 축구선수들

2019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 기록보다 중요한 화두 던져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붉은악마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다. 경기가 새벽에 열리더라도 축구 경기를 보려고 자지 않고 기다리며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로 경기에 집중하던 시절 말이다. 얼마 전에도 남자 축구 U-20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그동안 거두지 못했던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하는 결과를 얻어 잠시 다시 축구 열풍을 몰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6월 7일부터 7월 7일까지 프랑스에서 2019년 FIFA 여자 월드컵이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국 팀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자 월드컵 경기가 회자되는 것에 비교했을 때 올해로 8회를 맞은 여자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매우 미미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국내에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 미국 국가대표팀과 여자 축구는 여러 이슈를 몰고 왔으며 이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선수들과 관중 모두 “동일 임금”(Equal Pay) 외치다


7월 7일 열린 월드컵 결승, 네덜란드 vs 미국 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쪽은 미국팀이었다. 미국 국가대표팀은 2회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는데, 1991년 이후 총 8번 열린 월드컵 중 4번째 우승이기도 했다. 참고로 남자 월드컵은 1930년부터 열렸으며 가장 많이 우승한 건 브라질로 총 5번 우승을 차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축구 역사에서 이런 우승 기록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번 월드컵 우승팀은 더욱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FIFA(국제축구연맹)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이 경기장에 등장했을 때, 관중석에서 다 함께 “동일 임금”(Equal Pay!!)을 외친 거다.


이 장면은 미국 팀이 우승 세레모니를 위해 뉴욕 맨해튼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기념식을 진행했을 때도 반복되었다. 미국축구협회 카를로스 코르데이로 회장이 축사 중에 “미국축구협회는 그 어떤 나라보다 여자 축구에 많은 지원을 했다”고 말하자, 관중들이 야유 섞인 목소리로 술렁이다 “동일 임금!!”을 외치기 시작했다. 축구협회의 ‘많은 지원’이라는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지적하는 의미였다.


 @the.wing에서 만든 “동일 임금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문구 (출처: 메간 라피노 인스타그램 @mrapinoe)


4번의 월드컵 우승 경력을 가진 미국 여자 축구팀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로 벌어들인 수익은 50.8백만 달러로 남자팀의 49.9백만 달러에 앞선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이 받는 평균 임금은 남자 선수들의 고작 38%밖에 안 된다. 남자 축구팀은 1930년에 3위를 차지했던 게 최고 기록이며 그 이후론 순위권에 든 적도 없다. 지난 월드컵엔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다. 여자팀이 경기에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며, 심지어 수익도 더 많음에도 선수들이 받는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은 상황인 것이다.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에 비해 잔디가 제대로 구비된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인조 잔디 경기장은 부상이 일어날 확률이 높음에도, 그걸 감수해야 한다. 또한 남자 국가대표팀이 전용기(Charter)를 타고 다닌 데 반해, 여자 국가대표팀은 그냥 상업 비행기를 타는 일을 비롯해 마케팅 등의 지원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선수들은 지난 월드컵 우승 이후 지속적으로 성차별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러나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올해 세계여성의 날 28명의 국가대표 팀원들이 축구협회를 대상으로 임금 및 지원, 투자에 있어 불합리한 차별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과 대중들, 상원 및 하원 의원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 등 많은 이들이 ‘선수들은 당연히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린 운동선수만이 아니다…정치적 의견 밝혀


이번 월드컵에서 미국 국가대표팀을 이끈 세 명의 공동 주장 중 한 명이며, 실버부트(두 번째 득점왕)를 기록한 알렉스 모건(Alex Morgan)은 지난 10일 ESPY 시상식에서 ‘최고 여자 선수 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성과 소녀들을 지원하는 건, 경기장 위에서만 일어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단지 운동선수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멋지고 뛰어난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지원을 해야 한다.”


정치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기장 위에서 ‘동일 임금’을 비롯해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발언이다.


또 다른 공동 주장인 메간 라피노(Megan Rapinoe)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볼과 골든부트를 전부 차지한, 이견이 없는 2019년 월드컵 최고의 선수다. 그만큼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또 있었다.


메간 선수는 지난 7회 월드컵 이후 동일임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선두에 있었고, 2016년 9월엔 경기 전 국가 제창 때 서 있어야 함에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로 시작한 ‘무릎 꿇기 운동’에 동참한 거다. 메간은 미국 국가를 부르지 않고 침묵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비난을 쏟아 냈지만, 메간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며 사회의 차별에 맞서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또한 그는 우승 이후, CNN의 앤더슨 쿠퍼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배제하고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고, 비(非)백인들을 배제하고 있고, 어쩌면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조차도 배제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 나라의 리더로서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모두를 위해 일해주세요.”


메간이 ‘나를 배제하고 있다’고 한 말은 그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선수’만이 아니라 ‘여성’이며 ‘퀴어’이고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한 명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트로피를 든 메간 라피노 선수 (출처: 메간 라피노 인스타그램 @mrapinoe)


무지개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자신감


놀랍게도(?!) 지금 미국 국가대표팀에 있는 퀴어는 메간 라피노만이 아니다. 월드컵 참가 전, 여성 파트너가 있거나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선수가 23명 중 5명이었다. 그리고 우승 후, 켈리 오하라 선수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달려가 키스를 하는 모습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이후론 6명이 되었다.


국가대표 팀 막내인 만 20세 티에르나 데이비슨(Tierna Davidson)은 메간 라피노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13살이었다. 그는 메간 같은 롤모델이 있어서 좋았다며 “저렇게 용기 있게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메간은 월드컵 결승 전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팀에 동성애자 없인 안 된다. 그게 과학이다”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자신과 퀴어 동료들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전에 오른 미국과 네덜란드 팀은 각각 커밍아웃한 선수들이 5명으로 가장 퀴어 선수들이 많은 나라였다는 점이다.


선수들은 또한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는 팀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기독교인이어서 ‘프라이드’(Pride)를 기념한 ‘무지개색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기에 국가대표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힌 재일린 힌클의 발언에 대해서, 팀의 골키퍼 중 한 명이자 커밍아웃한 선수 애슐린 해리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 팀은 포용을 나타낸다. 당신의 종교는 절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당신의 편협함과 동성애 혐오 때문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하나로 만드는 목표를 가진 우리 팀에 절대 맞지 않을 것.”


선수들의 당당함은 승리를 즐기는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경기 이후 선수들의 각자 SNS 등을 통해 축하 파티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뉴욕에서 퍼레이드 행진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승컵 트로피를 들고 “난 이걸 받을 만해!”라고 외치거나 “퍼레이드도 좋지만 ‘동일 임금’은 더 좋아”(Parades are cool, Equal pay is cool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응원하는 이들을 더 환호하게 했다.


‘건방지다’는 등의 평이 없는 건 아니지만, “메간 라피노를 2020년 대통령으로!”라고 외칠 정도로 대중이 호응하는 이유는 비단 월드컵에 우승한 선수들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은 축구장을, 락커룸을, 축하 퍼레이드 행진과 기념식을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차별에 대항하는 자신들과 모두를 위해서.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카리스마와 당당한 태도, 솔직한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당연해 보인다.


여학생의 체육활동 지원하는 ‘타이틀 나인’ 법


미국 팀이 이렇게 최강 팀이 된 이유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나 팀워크, 감독의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1972년 제정된 ‘타이틀 나인’ 교육법의 영향을 크게 꼽는다.


‘타이틀 나인’은 여학생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남학생들이 받는 체육 장학금과 동일하게 여학생들도 장학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항목이 들어가 있다. ‘타이틀 나인’ 이전엔 고등학교 여학생 축구선수들이 미국 전체에서 고작 7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첫 월드컵이 시작되었던 1991년엔 12만 명이 넘는 선수가 활동할 만큼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국내의 상황은 어떨까. 2016년 학교체육진흥법 개정에 따라 13조의2에 ‘여학생 체육활동 활성화 지원’ 조항이 생겼다. 학교 장은 매년 여학생의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계획을 수립, 시행해야 하고, 일정 비율 이상의 학교스포츠클럽을 해당 학교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종목으로 운영하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예산과 시설 등에서 동일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타이틀 나인’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을뿐더러,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게 적용되고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9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 계획’ 중


2018년 기준, 한국축구협회의 선수 등록 현황에 따르면 U12부터 WK리그에서 활동하는 여자 선수는 1천539명으로 남자 선수들 수의 6%밖에 안 된다. 게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2017년 399명이었던 U12 선수는 2018년 378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U15, U18 선수의 숫자가 준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015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했던 걸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일 수밖에 없다. 2010년 U-20 월드컵에서 3위를, U-17 월드컵에선 우승했던 전력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분명 기량과 가능성을 가진 선수들이었는데 왜 발전하지 못했을까? 그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치 않았던 탓은 아닐까.


미국 팀의 역사적 월드컵 4회 우승 뒤엔 40년이 넘는 여학생 체육활동 지원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더 많은 여학생들이 운동장을 점령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그 운동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지원이 절실하다.


최근 제48회 익산전국소년체전에서 ‘역대급 여자 육상 선수’가 나타났다는 영상과 함께 그 주인공인 양예빈 선수가 화제였다. 몇 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신동, 영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기 위해선 선수의 노력만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 속에서 운동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훌륭한 선수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으니까.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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