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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페미니스트 정당을 만들려 하는 이유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⑱페미당 창당모임


※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요즘 자기 소개를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있다.

“왜 페미당이죠?”


시민단체 활동 혹은 다양한 운동 방식들이 있는데 왜 하필 정당이냐는 것이다. 기존 진보 정당에서 페미니즘 정치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단골 질문인 만큼, 외부 행사나 인터뷰 지면을 통해 충분히 답한 것도 같다. 하지만 페미당 창당 준비를 하는데,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페미당 당원 찾기. (출처: 페미당 창당모임)

적은 수지만 전국 각지에 페미당의 예비당원들이 존재한다. 


아쉬웠던 진보 정당 내 페미니즘 정치


3년 전, 나는 한 진보 정당에 가입했다. 지인이 그 정당에서 페미니즘 소모임을 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모임 참여와 당내 여성위원회에서 주최한 강연 행사를 통해 여성 정치, 페미니즘 정치를 꿈꾸는 페미니스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나눴다. ‘포스트 메갈리아’, ‘포스트 강남역’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정당 정치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거리를 두는 걸 떠올려본다면 신기한 광경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문득 집회 현장에서 외쳤던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란 구호가 떠올랐다. 이들과 한배를 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한배를 타 보기로 했다.


입당을 하고 반년 정도 뒤에, 나는 지인이 진행하던 페미니즘 소모임 운영을 맡게 되었다. 지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쉬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모임 진행은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이었지만 늘 어딘가 아쉬웠다. 사실 그 소모임은 정당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것치고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여성 단체나 페미니스트 모임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와중에 초보 활동가 혼자서 거둔 성과이기에 꽤 만족한다.


다만, 내 아쉬움의 근원은 당원들의 무관심이었다. 아무리 당내에 소모임을 홍보해도 반응이 없었다. 운영위원회에서 가끔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당원 참여는 거의 없었다. 우리 소모임 행사에 찾아온 페미니스트들 대부분이 나의 개인 SNS나 <페미니즘 캘린더>(femical.dothome.co.kr) 페이지를 보고 온 것이었다. 나는 외부 참가자들이 늘어날 때마다 반가우면서도, 당원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해당 정당의 지역 운영위원이기도 했던 나는, 회의 때 활동 보고를 하면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정당이 페미니즘 소모임 운영을 내게 일임한 것에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 역시 명확했다. 내가 빠지게 되면 이 사업을 담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진행과 홍보를 도맡아 하는 건, 소모임의 활동에 명백히 한계가 있었다. 책임의 무게추가 신입 운영위원인 내게 과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을 이어가면서, 진보 정당은 필요할 때마다 페미니즘을 찾았지만 주요 이슈로 여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기타 안건’ 정도에 불과했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젠더 이슈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미투, 낙태죄 폐지, ‘젠더 적폐’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들


페미당 창당모임은 2018년 4월 7일에 출범했다. 하지만 내가 페미당 창당모임의 소식을 처음 들은 건 2017년 10월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당시, 동료로부터 페미당 창당 준비를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서울에서의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낙향했던 때였다. 동료에게 좋다고는 했지만, 한편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페미니스트 정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당시 운동권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처음부터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며 겪었던 고립 때문에, 이 운동에서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정당 내 여성주의 운동에서 내가 느꼈던 회의감과 별개로, 정당 운동권 밖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페미니즘의 불길은 거세어져 갔다. 메갈리아 현상과 강남역 살인사건은 불길의 도화선이었다. 해가 거듭날수록 미투(#MeToo) 운동과 낙태죄 폐지 요구 시위 등 여성 운동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광장과 거리, 온라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여성 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와 ‘젠더 적폐’를 폭로하며 더 나은 세상을 요구했다.


변할 것 같지 않던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는 2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위력 성폭력’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1953년 제정된 이래 66년 동안 존속된 낙태죄는 헌법 불합치 선고를 받았다.


2019년 3.8 여성대회 당시 페미당 창당모임 부스. ©페미당 창당모임

페미당이 추구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리고, 발기인 서명을 받고 있다. 


페미당 창당모임(이하 페미당)은 조금씩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페미니스트 정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여성 의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관련 법안 등이 국회에서 계류되는 걸 보면서, 원내에 페미니스트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페미당 외에도 여성들이 일으킨 해일에 정의당, 녹색당 등 여러 진보 정당이 서핑보드를 올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기존 진보 정당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싶었다.


내 주변에 있는 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사회의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당과 제도권 정치의 힘이 필요한데, 중년 남성 중심의 분위기나 수직적인 의결 구조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더해야 했다. 나는 남성 중심적이고 수직적인 정당 대신,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책임지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지난 5월, 페미당 창당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페미니스트지만 우리는 다 다르다


페미당의 모든 의사 결정은 수평적으로 이루어졌다. 권위나 위계가 없는 조직 활동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인 독서 모임 이후로 처음이었다. 때문에 목표 시간을 초과해서 회의가 끝나는 일이 빈번했지만, 의결 과정에서 단 한 명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우리는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있다.


현재 페미당에서 활동하는 주비위원(창당 이전, 창당을 위한 기획과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열네 명인데, 정당 경험 유무부터 합류 시점, 직업이나 활동 분야, 관심 의제,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등에서 겹치는 부분이 손에 꼽는다. 정치적 의제에 대한 관점도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페미니즘 정치가 필요하다는 합의점을 제외하면 접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를 수용하며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들이 짧은 시간 활동하면서 내가 느낀 페미당의 장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페미당이 의사 결정이나 소통을 무리 없이 평등하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부터 페미당을 지켜온 주비위원들에 의하면, 출범 전후로 의견 차이와 갈등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합류–탈퇴를 반복했다고 한다. 현재 페미당의 조직 문화는 그들이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은어)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지금의 페미당에도 개선해야 할 점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페미당에 가지는 우려 역시 잘 알고 있다. 과연 창당을 할 수 있을지 같은 쉬운 질문부터,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페미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같이 명료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까지. 나 역시도 주비위원이 되기 전부터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으로 페미당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한다. 그러나 개선할 점이 있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를 발견하고 절충안을 찾아 진보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문제는 언제든 발생하게 되어 있다. 관건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2019년 페스티벌 ű 부스 참여 사진. (출처: 페미당 창당모임)

행사에 방문한 사람들이 페미당에게 바라는 점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고립된 지역 페미니스트들에게 더 절실한 ‘정치 세력화’


호기롭게 창당을 선언했지만, 실제로 정당을 창당하기 위한 문턱은 높고 멀다. 한국에서 정당을 창당하려면 600명의 창당 발기인이 필요하다. 600명의 발기인을 모으고 발기인 대회를 마치면 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준비위원회를 등록하고 6개월 내로 창당을 마쳐야 한다. 창당 조건은 5개의 시·도당을 만들어 각각 법정 당원 수 1천 명을 채우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최소 5천 명 이상의 예비당원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5천 명을 6개월 안에 모을 수 있을까? 돈도 힘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이슈를 가지고 정치 참여를 하기에는 공정한 판이 아니지 않나? 그놈의 공정은.


페미당 뒤에 붙는 ‘창당모임’이라는 단어를 떼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때문에 우리는 축제가 열리는 곳마다 부스를 신청했고, 발기인과 예비당원을 모집했다. 실제로 페미당에 합류한 여름, 나는 부스를 세 번 정도 참여했다. 부스 행사를 하면서 페미니즘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페미니즘 정당의 필요성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912명의 발기인을 모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스 참여만으로는 그 지역에 사는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나 정치적 의제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전국적으로 젠더 이슈가 부상하고 있지만, 운동장의 기울기가 서울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페미당 내부에서도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 경험을 돌이켜 보자면, 부친의 고향 용인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소소한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까지 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용인 내 페미니즘 이슈는 흥덕고 졸업생들이 학교에 페미니즘 서적을 기증했다는 이유로 백래시(backlash, 사회 변화나 정치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와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 성별, 인종,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제로 작용)를 겪었다는 것뿐이었다.


<인천페미액션>과 페미당이 공동으로 주최한 인천 지역 간담회를 통해, 우리는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처한 상황이나 고민 등을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미 5월에 전주퀴어문화축제를 바탕으로 한 전주 지역 간담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인천 지역 간담회는 전국적인 페미니스트 정치 세력화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간담회에 참여한 인천의 여성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천 특유의 정치적 맥락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지만 인천은 다른 수도권 지역보다 혐오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고, 지방 정부가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폭력적이라고 했다. 모든 문제가 쌓일 대로 쌓였다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인천퀴어문화축제(2018년 축제에서 성소수자 혐오 세력에 의한 폭력이 난무했고 사실상 무산됨)는 그중 일부에 불과했다. 인천 페미니스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스쿨미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던 이유는, 학교 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젠더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도 타 지역 대학들에 비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천의 대학 사회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할 정도다. 어느 대학에서는 페미니즘 관련한 대자보나 현수막을 붙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페미당 창당모임 인천 지역 간담회 현장. 서울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인천만의 복잡한 정치 지형적 맥락을 알 수 있었다. (출처: 페미당 창당모임)


인천과 전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지역 사회에서 성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만큼, 다른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고립감은 상당했다. 그래서 <인천페미액션>의 경우에는 활동가 개개인이 각자 다른 당적을 가지고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인 무관심이 곳곳에 있는 지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고립으로 이어지는 걸 떠올려보면,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이들에게 더더욱 절실한 과제였다. 시민 사회의 인식 변화를 견인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 부분이었다. 전국 단위로 페미당이 창당된다면, 각 지역의 페미니스트들의 든든한 정치적 뒷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여기서 정치를 바꾼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이 얼마 전 유튜브로 정치 출마 의사를 밝혔다. 유튜브 라이브에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함께 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정당이 새로운 인물을 비례대표 후보로 영입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나는 정의당의 러브콜과 유튜브를 통한 영입방식보다 장혜영 감독의 입당 선언문의 한 구절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지쳤기 때문에, 정치를 시작한다고.


시설에서 긴 시간을 보냈던 장애인 동생과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투쟁해 온 장혜영 감독의 삶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맺혔다. ‘지쳤기 때문입니다.’ 이 여덟 글자는 그 어떤 연설보다 큰 울림이 담겨 있었다. 청와대에 청원 게시물을 올리고 봐줄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정치,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나중’으로 미루는 정치에 지쳤기 때문에 ‘생각 많은 둘째언니’인 그는 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지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게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정치와 정당이 필요한 이유가 아닌가.


2019년 전주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을 때 사진. 전주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면서 

전북 지역에서 꽤 많은 발기인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출처: 페미당 창당모임)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약 4년간 한국 사회는 크고 작은 여성 이슈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삶을 보내고 있다. 광장에서, 거리에서, 일상과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원내 정치는 시민들의 인식이나 젠더 감수성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크고 작은 파도와 부딪히고 있는, 일상을 전쟁처럼 보내고 있는 지금의 여성들이 지쳤을 때 누가 그들의 곁에 있어야 할까?


페미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시민과 사회의 인식 변화를 견인하는 건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4차 산업과 모바일 시대에 ‘대의’를 얘기하고 정당과 정치를 얘기하는 게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누구는 정치 자체에 염증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논의는 결과적으로 정치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페미당은 아시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당에 도전한다. 페미니스트들이 광장과 거리, 일상과 온라인 공간에서 지쳤을 때 바로 떠오르는 정당을 만들어갈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페미당이 어떻게 총선에 대응할 것인지 물어본다. ‘다른 정당의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 ‘아직 정당도 아닌데 어떻게 총선을 준비할 거냐’는 식으로.


페미당 역시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은 현재의 정당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페미당 창당을 준비함과 동시에 여성 정치 단체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총선 때 선보일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하실지 모르겠다. 과연 얘네가 총선 때 무엇을 할 것인지. 페미당 창당모임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주목해 달라.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 구독 신청도 하시길 바란다. 연말이나 연초 즈음에, 조금은 특별한 소식이 갈지도 모른다.


페미당 창당모임은 현재 열네 명의 주비위원들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페미당을 만들어내는 건, 페미니즘 정치에 갈증을 느끼고 현 정치 지형의 판도가 뒤집어지길 바라는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주비위원이기 이전에 페미당의 예비당원으로서, 아시아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당을 만드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를 적극 권유한다. 물론, 강요는 하지 않는다. 일상 속으로 침입하는 혐오와 백래시에 지쳤을 때, 당신의 삶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을 때,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우리는 여기서 정치를 바꾼다. 창당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풍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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