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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가 지배한 이태원, 그곳을 살아낸 여성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을 만든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이태원을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난다. 이태원은 딴 세상에 온 것처럼 즐거운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신기한 곳이었다. 내게 이태원은 늘 그런 곳이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독특하고 신기한 동네. 그리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동네.


작년 언젠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여성의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 <이태원> 소개 글을 보았을 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이태원과 선뜻 연결되지 않는 ‘나이 든 여성’들 이야기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데…’ 말을 읊조리기만 하면서 아쉽게도 매번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 기회를 놓치곤 했다.


그러다 2019 이룸 영화제 <절망을 감추는 욕망, 욕망을 만드는 도시>(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주최, 11월 8일~10일 서울 충무로 코쿤홀)에서 드디어 볼 기회를 잡았다. 삼숙, 나키, 영화라는 세 여성과 애증의 관계인 이태원, 기지촌 유흥산업에서 일하는 여성의 삶과 나이 듦, 재개발을 맞닥뜨린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괜히 소문난 영화가 아니구나’하고 감탄한 <이태원>이 12월 5일 극장 개봉을 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강유가람 감독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2016)을 만든 강유가람 감독


여성국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왕자가 된 소녀들> 조연출,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부동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모래>(2011) 연출, 임신중절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2013) 공동제작과 프로듀싱,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정국에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국페미>(2017) 연출. ‘영페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담아내며 페미니즘 역사를 되짚는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2019) 연출까지. 경력만 봐도 엄청난 ‘페미 포스’가 느껴지는 강유가람 감독과의 만남은 의미가 충만한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 <이태원>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지금의 힙한 ‘이태원’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은 아닌데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기지촌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 첫 번째 작품이 <모래>인데, 은마아파트에 사는 우리 가족 이야기에요. 재개발을 앞둔 상황에서 그 공간이 들썩이는 모습과 우리 가족이 어떻게 불안정하게 사는지 등 공간의 변화를 다뤘죠. 그런 관점에서 재개발하는 이태원도 관심 있게 보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여성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이태원에 있는 여성분들과 신뢰 관계를 쌓고 있던 지인이 저한테 한번 만나보라고 했어요. 그때 나키 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들의 삶을 기록하면서 이태원의 변화를 같이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전에 참여했던 워크숍 영향도 있어요. 2009년, 2010년 즈음 용산 참사 이후에 용산 지역이라는 재개발 현장을 여성주의적으로 보자는 주제의 워크숍에 참여했거든요. 그때 미군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일했던 클럽이 있는 후커힐까지 걸어서 찾아가면서 그 여정을 담은 짧은 영상을 같이 만들었어요. 겨울이었고 엄청 추웠는데 동네가 유령도시 같은 거예요. 그땐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 공간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그 공간에 실존하는 인물인 나키 님을 만나게 되니까 워크숍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거죠. 이분의 삶과 이태원을 잘 조합해서 영화에 담아야겠다 싶었어요.”


영화 <이태원> 포스터 (제공: KT&G상상마당)


-재개발과 그 속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도 흥미롭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나키, 삼숙, 영화 세 분의 캐릭터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각자 개성도 강하고 놓여 있는 상황도 다르고. 어떻게 이 세 분을 섭외했을까 싶더라고요.


“나키 님은 처음엔 촬영하기가 쉽진 않았어요. 자기 말고 삼숙 님을 찍으라고 하시면서 소개해주시더라고요. ‘여기 이태원 대장부가 있다’고 하시면서 절 직접 삼숙 님의 클럽(그랜드올아프리)에 데리고 가 주셨죠. 삼숙 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무 강렬했어요. 이분은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촬영 시작하면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랑 아웃리치(현장 방문 상담)를 같이 나가기 시작했거든요. 실제로 거기 있는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으면 더 좋고, 촬영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정 바쁠 때 아니면 아웃리치를 계속 나가고 있는데요. 오래 다녀도 신뢰 관계가 잘 생기진 않더라고요. 한 3년 해야지 이제 겨우 ‘아, 왔구나’ 이렇게 받아 주시는 정도거든요. 카메라나 촬영에 마음을 열어 주실 수 있는 분들로 추려진 부분도 있어요.”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이년 반 정도 했어요.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된 게 2016년 9월 DMZ국제영화제고요. 그 이후로 편집을 1년 정도 더 해서 2017년에 완성을 했는데, 이번에 극장 개봉 버전으로 한 번 더 하긴 했죠.”


-이룸 영화제에서 봤을 때랑 이번 개봉 버전이 좀 다르더라고요. 이전 버전에는 이태원 경리단길, 우사단길에 자리 잡고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개봉 버전에선 그 부분이 좀 빠지고 세 주인공 이야기가 더 들어간 게 보였어요.


“2017년 당시엔 ‘나도 이방인이고 세분한테 나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일부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청년 예술가들 입장을 통해 제 시선을 보여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편집했어요. 그런데 경리단이나 우사단에 계셨던 분들이 이제 거의 나가셨고, 개발 상황도 달라졌고요. 지금 보면 좀 애매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아쉽지만 그 이야기는 좀 덜어내고 세 여성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재편집한 거죠. 이분들 캐릭터가 더 살아나면 좋겠다 싶었어요.


특히 영화 님은 너무 집에만 있어서 분량이 좀 적어 아쉬웠는데, 이분이 동네 나가면 얼마나 아는 사람이 많고 친구가 많은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삼숙 님 이야기에선 그에게 가족이 얼마나 큰 굴레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부분인데, 그게 뒷부분에 조금만 나오는 거 같아서 추가했어요.”


영화 <이태원> 스틸 사진 (제공: KT&G상상마당)


-저도 글 쓰려고 자료를 열심히 찾아두었다가 막상 쓰려고 할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멘붕’ 올 때가 있거든요. 촬영을 오래 한 만큼 소스가 많았을 텐데 편집할 때 어떻게 틀을 잡았을지 궁금해지네요.


“한 200회차 넘게 찍었는데 나중엔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조연출이 <퀴어의 방>(단편 다큐멘터리, 2018년) 만든 권아람 감독인데 스크립트 쓰느라 엄청 고생하셨고요.


처음에 인터뷰했을 땐, 이분들이 어떻게 이태원에 왔고 미군들이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중심으로 얘기했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던 서사가 나오진 않더라고요. 저도 약간 정형화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본인이 피해자로) 보여지길 원치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특별히 피해 서사로 얘기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우리가 편견을 가진 거였을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일상적인 얘기 위주로 하기 시작했어요. 오래 찾아뵈니까 나중엔 개인적인 아픔에 대한 얘기도 꺼내셨지만, 그걸 굳이 영화에 넣진 않았어요. 말하긴 했어도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들과 관련된 이야기 중 상징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은 충분히 들어가게 편집했고요.


그리고 이태원의 변화와 관련된 장면들은 가급적 넣으려 했죠. 예를 들어, 나키 님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태원이 꺼지겠다”고 말씀하는 장면이라든가. 삼숙 님은 본인 가게를 소유하고 있으니까 재개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런 의견들도 배치하려 했고요. 지금의 이태원을 바라보는 시선과 잘 버무려질 수 있도록 하자는 걸 기준으로 소스들을 골랐어요.


-‘언니들’(삼숙, 나키, 영화)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죠. 친해지는 과정은 어땠나요?


“보통 그냥 친해지긴 어렵잖아요. 명절 때 좋아하는 뭐라도 가져다드리기도 했죠. 영화 님은 ‘왜 이런 걸 굳이 가지고 왔냐’고 하시지만 좋아하시고.(웃음) 나키 님은 ‘그래, 고맙다’ 하시는 스타일이시고요. 삼숙 님만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받으면 다 빚이고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술 주시고.(웃음) 요즘엔 조금 달라지셔서 이젠 싫어하진 않으시더라고요. 그래도 얼마 전에 영화 포스터 전달해드리러 갔더니 또 술 주셨어요.(웃음)”


-삼숙 님은 사업을 하셔서 그런 ‘주고받음’이 뚜렷하신 가봐요.(웃음) 세 분이 그렇게 성격도 다른데 어떤 지점에선 굉장히 비슷하고, 삶이 겹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세 분의 삶에 가정폭력이 자리 잡고 있었죠. 삼숙 님은 아버지, 나키 님은 전남편, 영화 님에겐 연락이 되지 않는 여동생 남편의 폭력이 의심되고요. 그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인지 궁금했어요.


“한국 사회에서, 특히 그 시대에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상처가 없진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온 거죠. 삼숙 님의 아버지 얘기도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거고요. 소외된 여성들의 삶 속에선 하나씩 존재하는 스토리인 것 같긴 해요. 제가 일부러 그 주제를 다루려 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고, 편집하다 보니까 묘하게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더라고요.”


-세 분의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 영화의 주요 재미인 것 같아요. 각각 특히 살리고 싶다거나 부각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나요?


“영화 님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가 좋았어요. 불평불만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낙관적이고 잔정이 많고 붙임성 좋으시고. 누구나 빨리 친해지는 스타일이죠. 그게 생존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한번 해 보고 싶은 건 해 보고 만다, 그리고 후회는 없다’는 태도가 신선했어요.


나키 님도 삶을 살아온 자신만의 방식이 있죠. 마이웨이 같은 느낌. 진짜 부지런하시고요. 다만 안타까운 건, 돈을 좀 벌었을 때 뭐라도 마련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유흥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돈을 쉽게 번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있는데 실제로 이태원의 돈이라는 게 그 여성들에게 가지 않는 구조라는 거죠. 어느 순간 사라지는 존재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까워요. 그래서 인물들이 개성 있게 그려지는 것과는 별도로, 이분들의 땀과 시간이 주변화되는 모습도 보여주려 했어요.


삼숙 님 같은 경우엔 자신의 가게를 일궈온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자영업자로서의 면모, 당당한 태도. 심지어 아버지가 공부도 안 시켰는데 미군들 상대로 장사하고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분이다 싶죠. 영어도 잘하시고, 약간 콩글리시이긴 한데 대화가 너무 잘 되잖아요.(웃음)”


영화 <이태원> 스틸 사진 (제공: KT&G상상마당)


-삼숙 님, 정말 카리스마 있어요. 그래서 분량이 조금 더 많은 건가요?(웃음)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서 영화에서 지분을 많이 차지하시긴 한 것 같아요. 사실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엔 촬영 소스에서 좀 차이가 있었거든요. 나키 님은 주방 일하시는 거 찍는 게 (거기 사장) 눈치가 보여 쉽지 않았고, 영화 님도 집에서 주로 게임을 하시고 그러셔서.


삼숙 님은 이야기가 사실 대서사여서 줄이느라 고생했어요. 이분의 삶이 미군 부대의 역사랑 거의 겹치거든요. 문산에서 미군 대상 잡화점 같은 걸로 시작하셔서 미군 부대를 따라다니셨다 하고요. 1972년인가 1973년인가? 미군이 용산으로 온다고 하니 삼숙 님이 이태원을 딱 찍어서 클럽을 인수한 거예요. 그때 큰 빚을 졌다는데 인생 배팅을 하신 거죠. 미군 상대로 장사하기 전에 생선 장사하실 땐 여성국극도 보러 다니고 그러셨다는데, 클럽 인수하고 나선 여기에 인생을 바친 거죠. 그래서 이분 인생을 보면 미국에 대한 선망을 가진 한국인의 어떤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어쨌든 돈 벌어주게 한 건 미군이니까요.


반면에 ‘한국 놈들은 나한테 양갈보라고 욕이나 했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런 마음인 거죠. 진상 손님 얘기도 많은데 다 한국 사람이고요. 예전에 이태원에서 스트립쇼 같은 걸 많이 하던 때에, 삼숙 님 가게에서도 하라고 요구하는 조폭들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근데 그런 거 너무 하기 싫고 술만 팔고 싶다고 했더니 어느 날 와서 재떨이를 던지고 행패를 부린 거죠. 그러다 삼숙 님 여동생이 재떨이에 맞아서 이마가 찢어졌다는 거예요. 삼숙 님이 너무 열 받아서 도끼를 들고 뛰쳐나가서 간판인가 어디를 부쉈더니, 그 담부턴 그 사람들이 안 왔다는 얘기도 하신 적 있고요. 삼숙 님 인생을 보면,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한국 여성들을 이용하면서도 멸시하는지 보이거든요. 그래서 상징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숙 님의 미국과 미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탁월한 대사가 영화에 나오잖아요. “부대 안은 공기가 달라.”(웃음)


“그 대사 정말 재미있죠.(웃음) 삼숙 님 보면 재미있는 분이다 싶다가도 생각할 거리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세 분 이야기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해석할 지점이 많다는 것도 영화의 장점이에요. 그리고 이 여성들이 결국 재개발을 맞닥뜨린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요. 영화 초반에 삼숙 님이 ‘미국 사람들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걸 좋아해’라며 툭 내뱉은 말이 재개발을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면, 후반에 영화 님이 ‘재개발되면 어떻게 하라고, 돈 없는 사람은 어디 가서 살라고’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현실을 드러내죠.


“영화 초중반까진 세 분을 소개하고 이들이 미군들과 경험했던 이야기를 배치했다면, 후반엔 실제로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 생계노동에서 주변화되고 나이 드는 것, 공간이 재개발 때문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로 영화의 구조를 쌓았던 것 같아요. 제가 관심을 가진 건, 공간의 변화와 이분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제작한 책 <청량리-체계적 망각, 기억으로 연결한 역사>엔 재개발이 성매매집결지와 그곳의 여성들을 ‘지우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계노동은 점점 힘들어지고 공간은 재개발로 들썩거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분들이 이태원에서 버티며 산다는 의미가 뭘까 싶기도 했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나는 내 삶을 살아낸다’는 태도가 세 분 모두에게 있는 것 같아요. 이태원 자체에 대한 애정도 있고요. 나키 님이 ”이태원은 나를 나답게 있을 수 있게 하는 곳이다. 날 인정하는 자리에 있고 싶다”고 얘기하잖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환대받는 공간에 있고 싶어 하잖아요. 이태원에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특이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외부에서 어떻게 보든 간에.


저한텐 그런 모습들이 인상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기지촌이라는) 낙인을 찍어온 곳이긴 하나, 이분들은 그곳에서 강인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거죠. 그런 자부심이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또, 어쨌든 한국 사회가 이 여성들을 이용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되고 논의되어야 하고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용산에 전쟁기념관이 있잖아요, 그런데 전쟁을 기념한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일까요? 영화에도 전쟁기념관 모습이 조금 나오는데, 대기업이 운영하는 벼룩시장에 많은 사람이 와 있는 장면이죠. 그런 장면을 일부러 배치함으로써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2014년부터 촬영했고 2016년에 처음 공개한 작품을 2020년을 코앞에 두고 드디어 개봉하게 되었네요!


“굉장히 많이 떨리기도 해요. 어떻게 봐주실지, 개인적으론 개봉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거든요. KT&G상상마당(배급사)에서 같이 하자고 제안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누군가 이 이야기를 알아봐 준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용기가 생기긴 것 같고, 마음속에 있던 숙제 같은 게 풀어지는 느낌이에요.


궁극적으론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었고, 이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 마음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사실 나키, 삼숙, 영화가 가진 삶에 대한 자세나 태도 같은 게 오히려 저를 배우게 했거든요.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태원> 외에도 <우리는 매일매일>(다큐멘터리, 2019년)도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 중이라 바쁘시죠? 올해 특히 훌륭한 여성 감독들의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들이 개봉해서 관객들 반응도 뜨거운데, 그런 변화 같은 게 느껴지나요?


“확실히 젊은 여성 관객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어떤 관객분이 ‘요즘 영화에서 보여지는 여성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좋다. 남성 감독들이 만든 남성 서사만 보다가 요즘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여성의 이야기에 대한 니즈(needs)가 있는 관객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개봉 시기가 좋은 것 같아요. 흐름을 잘 타신 것 아닌가요.(웃음)


“저도 붐을 타야 하는데.(웃음) <이태원>은 다큐멘터리라서 걱정이 되긴 해요. 극영화는 팬덤이 생기기가 용이한데, 다큐멘터리는 조금 애매하잖아요? 그래도 잘해봐야죠. <우리는 매일매일>도 계속 영화제에 제출하고 있고, 공동체 상영도 하고 있고요. 사실 독립 다큐멘터리가 개봉하기가 어려운데 관객들이 원하면 관이 열리더라고요.(웃음)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2월 5일 개봉한 <이태원>을 볼 수 있는 상영관은 KT&G상상마당 시네마의 트위터 @csangsangmadang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ssmadangcine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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