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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성을 위해 페달을 밟는 ‘조산사’가 본 세상

제니퍼 워스의 자전적 소설 <콜 더 미드와이프>



글을 쓰지 않고 두는 역사가 있다. 특히 여성의 일이 그렇다. 낳고 기르고 돌보고 살려낸 여자들의 노동과 감정들은 남아 있지 않다. 이야기들은 끊기고 때로 구전으로 전해진다. 때로 어떤 경험의 자취로 무의식의 동력으로 남아 흔적을 남긴다.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사 뒤에 그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여성 노동의 역사가 숨어 있다. 또한 세상을 더 공정하고 평등하게 만들고자 한 여성들의 역사가 숨어 있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의 작가인 제니퍼 워스(1938~2011)는 이름 없이 일한 조산사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다른 직종의 여성들처럼 자신의 역사를 가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조산사’라는 직업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고, 현실에서도 의사의 그늘에 묻힌 존재였고 ‘분만실 문 뒤에 숨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제니퍼 워스는 1998년 어느 날 <미드와이프 저널>에 실린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그 마지막 문장은 “글을 쓰는 조산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테리 코츠, ⌜문학 속의 조산사⌟)였다. 그녀는 생각했고, 그 도전을 받아들여 용기를 내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동명의 BBC 드라마로 제작돼 큰 화제를 모은 제니퍼 워스의 소설 <콜 더 미드와이프>(고수미 역, 북극곰, 2016)


책의 배경은 1950년대 영국 런던 빈민가다. 주인공 제니는 조산사로 일을 하기 위해 조산원 노나터스 하우스의 문을 두드린다.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던 수녀들은 조산원을 운영한다. 수녀들의 목표는 가난한 여성들의 안전한 출산이었다. 이전에 가난한 여성은 비용 때문에 출산을 위해 의사를 부를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 영국 극빈층의 산모 사망률은 35~40%로 높았고 60%의 아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1902년 영국에서 조산사법이 통과되고 왕립조산사협회가 생겼다. 간호사인 수녀들은 삼십여 년의 싸움 끝에 조산사법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빈민가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조산사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들의 일을 해나간다. 세계대전 속에서 공습이 일어나도 이 조산사들은 “방공호, 참호, 교회 지하 묘지, 지하철역 등 어디에서건 아이를 받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산모와 아기들을 지켜냈다.


조산사였던 제니의 눈을 통해 1950년대 런던 템즈 강변의 항만 지역 빈민가의 풍경이 전해진다.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면 조산사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항만 부두 노동자들의 고달픈 노동,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늘 여자의 몫이었던 피임, 절대로 콘돔을 쓰기 싫어한 남자들, 열악한 주거와 성매매의 호객 소리. 그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제니는 ‘하필이면 조산사가 되려 했나’하는 자괴감과 아기를 받고 나서의 뿌듯한 충만함 사이를 갈팡질팡한다.


그러나 페달을 밟는 것을 멈추는 법이 없다. 조산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주민들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의 삶을 지키러 오는 이 여성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지켜내려고 하는 이들의 노력을 그들 또한 가슴 깊이 옹호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제니퍼 워스가 목격한 1950년대 영국의 빈민층 산모와 아기들의 상황에 대한 보고가 담겨 있다. 대대적으로 피임이 보급되기 전, 아직 병원 분만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에서 불안하게 아기를 낳으며 초조하게 조산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새겨져 있다. 또, 아기를 지키고자 분투한 조산사들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려고 애쓴 전후 노동계급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이 책이 동명의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2012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되며 각광을 받은 이유는 그때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니는 당시의 풍경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말해준다. 방의 문을 열고 만난 가정폭력의 모습이라든가, 혐오와 구역질을 일으킨 질병과 무지의 풍경, 견뎌내야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도 인간적인 고통 때문에 힘겨워하는 장면들까지. 이를테면 성병에 걸린 산모를 내진할 때의 충격이라든지, 위험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시도해야 하는 분만이라든지, 아기를 저버리려는 이들에 맞서 신생아의 목숨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까지 써놓았다.


가난한 여성들은 그동안 산고를 견디다 죽어갔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소모품이었기에 출산 중 사망한 여자의 수는 헤아리지 않았다고 이 책은 기록한다. 가난한 여자들의 아기들 또한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았다.


제니퍼 워스의 소설 <콜 더 미드와이프>(북극곰, 2016) 표지 이미지 중에서.


제니와 함께 일하는 수녀들도 발버둥 치며 애쓴다. 호의적이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세상에서 꿈을 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또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동료들이 부족한 지지와 자원 속에서 어떻게 신념을 지키고 타인에게 이타적이고자 노력하는지 제니는 목격한다. 귀족이라는 특권을 버리고 수녀가 된 한 여성은 남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견디며 자전거 타기를 익히기 위해 애썼다. 계속 넘어지고 멍이 들어도 웃으며 거듭 일어나 마침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불편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수녀’로 불린 그 여성들은, 틀에 박힌 여성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자아를 실현하는 길을 가고자 했기에 더 치열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이제 타인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한 수녀는 억압되었던 공격성을 발산해 다른 수녀를 짓궂게 놀리곤 해서 눈총을 샀지만, 결국엔 자신이 일을 하면서 겪은 트라우마를 은연중에 고백한다. 죽이려 드는 세상에서 살리고자 분투한, 그녀들이 선택한 길은 여전히 지키고 싶은 영광된 길이자 생생한 상처의 길이었다.


조산사이자 간호사. 자신들이 선택한, 당시로서는 평범치 않았던 그 고난의 길에서 어떤 풍경이 펼쳐졌는지 제니는 활달한 어조로 끊임없이 말한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어 어두운 방의 문을 열 수 있었고 더 어두운 그 안쪽으로 혼자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책임감으로 인한 중압과 두려움. 출산 현장의 적나라한 모습과 위기. 외로움. 하지만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한다는 다짐과 결단이 문장마다 박혀 있다. 조산사는 출산의 협력자이며 이웃이었으니까.


가난한 여성들의 건강과 삶에 대한 통계나 기록은 지금도 충분하지 않다. 가난 때문에 아기를 빼앗기고 제한된 선택들이 모여 다시 가난한 상황으로 물림이 되는 풍경은 지금도 이어진다. 이 책에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집에서 폭력의 피해를 입고 탈출한 소녀가 낯선 남자를 섣불리 믿고 의지했다가 성매매 업소에 팔려가 잔인하게 희망을 배신당하는 장면이다. 동료가 어떻게 불법 낙태시술을 받다 목숨을 잃는지 지켜본 소녀는 가까스로 탈출해 자신의 아기를 낳았지만, 양육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아기를 빼앗겨 입양 보내게 된다. 제니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싸우지만 결국 그 아기를 지켜주지 못한다. 나중에 소녀가 다른 사람의 아기를 유모차에서 훔쳐 범죄자가 되었을 때 제니는 이를 기사로 읽으며 가슴 아파한다.


이 책이 쓰인 시기는 구빈원의 희생자들이 살아 있던 시기였다. 자본주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청소된’ 가난한 이들이 구빈원에 갇혀 강제로 자식들과 이별하고 모든 희망을 강탈당했던 이야기도 쓰여 있다. 가난의 비참에 시달리다 자식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던 여성, 거짓된 약속에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절망에 빠져 처절하게 우는 변방의 노인.


제니는 써놓는다. 죽은 아기를 버려야 하고, 살아 있는 아이도 잃어야 하고, 남의 아기를 탐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는 끔찍한 울음소리로 울고 마는 사람들이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혐오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이웃들조차 그 장화 속 같은 고백을 듣게 되면 그들의 고통이 결국 가난한 여성에게 사회가 가한 폭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안미선 지음, 동아시아, 2019) 표지


나는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의 기획으로 올해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동아시아, 2019)를 펴냈다. 이 책에는 모든 산모와 아기를 위해 닫힌 문을 두드리는 가정 방문 간호사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본 세계를 나에게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경계를 뛰어넘는 그들의 용기와 노력에 감명받았다.


간호사들은 다른 여성과 아기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그들이 고립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통로가 되어주었다. 모든 이가 평등하므로 공평하게 기회를 누리고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이 간호사들의 걸음에 담겨 있었다.


“그 산모에게 저는 세상으로 열려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 있어요. 엄마들에게는 유일한 기회고 어떤 엄마에게 우리를 만난 건 유일한 세상을 만난 거니까요.”(110쪽)


“문을 두드리면서 간호사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이 만들어낸 적나라한 고통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들이 만난 산모들이 온몸으로 드러내는 건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그 압도적 고통의 무게다. 고립, 소외, 불안, 분열, 폭력, 학대, 가난, 침묵……. 산후우울증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억압된 자리를 나침반처럼 가리키며 증상이 되어 나타난다. 산모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들이 세상에서 겪은 비정하고 냉담한 현실과 그 불공평함을 듣는 것이었다.”(334~335쪽) 


그때나 지금이나, 조산사나 간호사들이 목격한 것은 비참만이 아니다. 과학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끈질긴 목숨. 삶에 대한 애착. 여성들이 아이들의 양육을 지탱하며 얼마나 용감하게 자리를 버티는지 이들은 쓰거나 말했다. 선택과 결과의 이어짐 속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다음을 믿는 용기, 사라지는 것과 다가오는 것 사이에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의 것에 희망을 걸고 자신을 바치는 결단을 이들은 지켜보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불완전한 인간들의 완전한 꿈을 말해주고,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들이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때를 함께 살아낸 사람들의 세상을 복원해준다.


여성들의 경험은 충분하다. 이것을 글로 쓰거나 말하는 기회가 필요하고, 이들의 경험이 역사로서 가치를 가진다는 확신이 필요할 뿐이다. 또 그 작업을 지지해주는 이들이 더 필요할 뿐이다. 그녀들은 서로를 지탱해냈기에 그 시간을 다 살아낼 수 있었다. 여성들이 함께한 보이지 않는 자리, 그 숨겨진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말해져야 한다. (안미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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