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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변경…후보자는 찬성하십니까?

21대 국회 성평등 정책 가이드라인③



가부장제/부계 혈통/남성 중심 사회의 성차별적인 환경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며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성차별과 성폭력은 별개의 이슈가 아니다.


미투 운동(#MeToo)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사회적 인식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디지털 세계로 확장된 성착취 범죄의 끔찍한 실체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결코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피해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개개인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누구도 성착취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간죄 기준, 폭행/협박 대신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현행법을 꼽는다. 지금 강간죄를 구성하는 법적 요건은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 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어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는 ‘왜 벗어나지 못했나?’ ‘왜 저항하지 않았나?’ 등의 질문에 답해야 하며 폭행/협박을 당했음을 증명하도록 요구받는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가 추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셰도우핀즈, 널채움 공동 제작 CALL 21st 사이트 안내. https://call21st.works


이 문제에 대해 반성폭력운동 진영은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왔고,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투 운동 이후엔 더 많은 목소리들이 모여 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20대 국회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21대 국회로 과제가 넘어간 만큼, 총선 결과가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정책 검증 사이트가 생겼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와 젠더폭력 피해자의 사법적 대응을 돕는 비정기 페미니즘 프로젝트 그룹 <셰도우핀즈>(shadowpins.dothome.co.kr) 그리고 시빅해킹(civic hacking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공공 문제를 오픈소스 시민들의 참여로 풀어가는 것) 네트워크 <널채움>이 함께 각 정당 지역구/비례 후보들에게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데 찬성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CALL 21st 사이트 https://call21st.works


“21대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묻습니다” CALL 21st 사이트(call21st.works)에선 누구나 쉽게, 자신이 응답을 확인하고 싶은 후보에게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데 찬성하냐”는 질문을 보낼 수 있다. 또 그에 응답한 후보들이 누구인지도 찾아볼 수 있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사회적 개입’이 절실


인터넷 검색 창에 ‘왜 안 만나줘’로 검색했을 때 수두룩하게 나오는 기사들, 여성들에게 데이트폭력은 ‘드물지 않은’ 경험이다. 아내폭력도 마찬가지다. ‘집안일’, ‘사적인 일’로 치부되어 오던 오랜 인습 탓에 남편으로부터 당하는 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한 채 견디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 살인 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8명, 그러니까 최소 1.8일에 한 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데이트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구제 및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 ‘친밀한 사이에서의 폭력’과 관련한 정책 질의를 한 결과, 주류 정당 모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는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의 첫 번째를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처벌 실질화”로 꼽았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사적인 공간과 관계 속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폭력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폭력에 대한 예견 혹은 위협으로 인해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회적 개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 근절과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21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를 정리하여, 어떤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지 세세하고 꼼꼼한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자료집 다운로드: https://vo.la/wigz


가정폭력 특례법의 목적이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이라는 점, 즉 ‘피해자 구제보다 가정 유지를 중시’하는 문제부터, 폭력 상황에서 피해여성의 방어가 ‘쌍방폭력’이 되는 문제까지. 21대 국회에서 분명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짚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새로운 형태의 폭력에 대응 시스템 갖춰야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행태도 다양해 지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매번 어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3월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가 개최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장내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 기자회견.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디지털 성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선 성착취 피해 사진/영상 등의 유통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걸 생각하면, 피해자들에게 신고와 구제, 가해자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정책 제안서를 통해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단계에서 경찰에 신고해도 ‘사소한 사건’으로 취급받거나,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거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하여 사건 접수조차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하며 정치권에서 법 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현재 “정보통신망법 상 음란물 유포와 사이버 명예훼손, 형법 상 음화반포, 모욕, 명예훼손, 전기통신사업법 등이 있지만 이 법들의 경우 피해자들이 겪는 피해에 비해 가해자 처벌 수위가 낮아 실질적으로 범죄 예방의 효과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불법촬영물을 소지만 하는 경우, 불법촬영물을 삭제하도록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이에 대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도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사이버 성폭력을 예방하는 조치를 강화할 것을 권고하며, 특히 온라인 플랫폼 및 온라인 배포자들이 범죄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차단하지 못할 경우 상당한 재정적 제재를 부과하는 등과 같이 여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명확히 범죄화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사이버 성범죄의 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국회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 23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왔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사이버 성범죄의 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이틀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다. 과연 21대 국회는 이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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