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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한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산다는 것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유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라이프치히 및 베를린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유진 ©촬영: 채혜원


유진 이주 이력서


이주 7년 차

2010~2012년 세계일보 취재기자

2013년 워킹홀리데이로 독일에 도착

2014~2018년 라이프치히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2015년~현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독일 통신원

2018년~현재 주독한국문화원 등에서 독일 언론기사 한국어 번역

이외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한경비지니스> <신문과방송> 등에 기사 작성


“늘 정보를 찾아다녔어요, 절박함이 낳은 생존법이죠”


특파원 형태로 정해진 기간(평균 2년)만 머물며 독일 현지에서 기사를 쓰는 한국 기자를 제외하고, 본인이 직접 비자를 받고 일하는 한국 저널리스트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독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보다 언론사에 정직원으로 취업한 상태의 기자들이 여전히 대다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현지에서 통신원 형태가 아닌 프리랜서 기자로 한국 매체에 기사를 쓰려면 한국 매체에서 일한 경력이 뒷받침돼야 일 구하기가 수월한 이유도 있다.


그런 면에서 유진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내게 ‘동지’나 다름없다. 독일 현지에서 한국 매체에 보낼 기사를 쓰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고민을 나누며, 기사 주제를 정하고 인터뷰이를 선정할 때 구체적으로 상의할 수 있는 현지 동료다. 그는 독일에 사는 7년 동안 4년간 라이프치히에 살았고, 좀 더 다양한 사회‧문화 관련 기사를 쓰기에 좋은 베를린으로 2년 전 이주했다.


유진은 탁월한 정보 수집가다. 외국인이 알면 도움 되는 정보뿐만 아니라 독일인도 잘 모르는 생활 정보까지 늘 섭렵하고 있다. 그 정보를 자신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한국인에게 알리고 싶어 독일 내 다양한 취업/창업 및 스타트업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 ‘독밥’ DOKBAB(dokbab.com)을 운영 중이다.


유진이 운영하는 ‘독밥’ 웹페이지 모습 ©출처: dokbab.com


2018년에는 ‘라이프치히 할레 한인학생회’를 만들고 노동 매뉴얼 <독일알바-이 정도는 알고 하자>를 발행했다. 현지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노동 관련 법률을 공부하기 어려운 한국인을 위해 다양한 노동‧법 관련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한 책자다. 비자 종류에 따른 노동조건, 우리가 알아야 할 독일노동법, 직장 내 성희롱 및 부당행위 대처, 노동계약서와 노동관계 해지서 견본 등을 제공하고 있다. (노동 매뉴얼 보기: https://bit.ly/3cUhaZI)


유진은 정보를 찾아내는 비법에 대해 ‘절박함이 낳은 생존법’이라 답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저렴한 예산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늘 정보를 찾아다녔어요.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도 독일어 수업을 가장 저렴하게 들을 수 있는 어학원을 찾다가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구직자를 위한 수업을 찾아서 독일어도 무료로 배웠거든요. 한국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죠. 당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지원 대상이라 가능했어요. 그때부터 늘 정보를 열심히 찾으며 살았어요. 싼 집을 잘 구한 것도 절박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학생에게 천국 같은 곳, 라이프치히에서 독일 생활 시작


대구의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대학 공부까지 마친 유진의 인생 첫 이주지는 서울이었다. 그토록 꿈꾸던 일간지 기자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은 너무 재밌었지만 기자 생활을 할수록 스스로 너무 얄팍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유진은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장학금으로 미국, 필리핀, 호주로 짧게 어학연수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지만, 이중 다시 가서 공부해보고 싶은 나라는 없었다. 반면 등록금이 낮고, 당시 관심 있던 ‘나치 역사 청산’ 문제와 ‘통일’ 이슈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


동독 라이프치히는 독일 작센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약 5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촬영: 채혜원


국비 장학금을 받기 위해 1년간 준비했지만 아쉽게 탈락했고 차선책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독일에 도착했다. 학생 식당 설거지, 건물 청소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시간은 유진에게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다.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학생에게 주는 여러 혜택 덕분이었다.


유진에 따르면 독일 대도시에서 대학생들이 겪는 어려움, 예를 들어 자리 잡기 힘든 강의실과 도서관, 짧게는 1년에서 2년을 기다려야 하는 학생 기숙사, 방 구하기 전쟁, 비싼 물가 등의 문제가 라이프치히에는 없다. 라이프치히 학생 기숙사는 신청하면 대기 기간 없이 들어갈 수 있고, 300유로대(한화 40만 원대)의 저렴한 월세를 낸다. 넓은 창으로 햇볕이 잘 들고 겨울에도 따뜻했다. 필요한 가구도 모두 구비되어있다.


한국에 비해 책값이 상당히 비싸지만, 전공 서적을 사라고 요구하는 교수는 없다. 수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가 복사물이나 파일 형식으로 제공되고,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 도서관 운영은 24시간이라 원하는 만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 공부하다가 배고프면 대학 식당인 멘자(Mensa)에 가는데 4유로 정도(약 5천 원)면 배부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동독 지역 중 라이프치히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도 라이프치히에서는 서독 방송을 들을 수 있었고, 청년들이 모여 사회와 세계에 대해 대화하는 대학이 있었고요. 통일의 시발점이 된 촛불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던 이들도, 통일 후 동서를 넘나들며 장벽의 흔적을 지우는 이들도 라이프치히 학생들이었어요. 여전히 독일에서 서독 대학의 인기가 높지만, 저는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시간이 여러모로 너무 좋았어요.”


한국 일간지 경력을 바탕으로 유진은 학생 때 바로 정부 기관 통신원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거의 이어지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 여러 정부 기관과 <미디어오늘> 등 여러 한국 매체에 기사를 써서 보내고 있다. 주로 독일에서 열리는 한국과 관련된 문화 행사를 취재해 기사로 쓰고, 다양한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이슈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쓴다.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에는 독일 언론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도 하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풍경 ©촬영: 채혜원


독일살이와 한국살이의 가장 큰 차이는 ‘주거 환경’


석사 졸업 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비자를 받으면서 유진은 좀 더 다양한 취재를 할 수 있는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독일인도 집 구하기가 어려운 이곳에서 공공주택(Städtische Wohnungsbaugesellschaften)에 입주했다. 주택회사가 운영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일반 부동산 회사가 운영하는 곳보다 월세가 싸고 여러 혜택이 있다.


유진은 베를린에 있는 6개의 공공주택 중 ‘다양성’을 모토로 내세운 공공주택회사에 철저하게 준비한 서류를 넣었고, 집을 보러 갔다. 집을 보러 온 수많은 사람 중 유진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그런데도 유일하게 비어있던 원룸 임차인으로 유진이 선정됐다. 월세가 비싼 집조차 구하기 어려운 요즘, 공공주택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동네인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데다 혼자 살기 넉넉한 평수, 부엌도 분리돼있고 테라스까지 있는 원룸을 유진은 333유로에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요즘 베를린은 원룸은커녕 방만 혼자 쓰고 화장실, 부엌을 공유해야 하는 집도 평균 400~500유로에 달하며 이마저도 수요가 높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비자를 받고 공공주택에 집까지 구하고 나니 ‘아, 당분간은 걱정 없이 밥벌이에 집중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들었어요. 물론 코로나-19 발생 이후 여러 생각이 들긴 하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큰 과제인 비자와 집이 해결되고 나니 앞으로 3년간은 더 독일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진이 계약을 맺은 공공주책 게보박(Gewobag)은 베를린의 공공주택 중 한 곳이다. 출처: gewobag.de


아늑하고 모든 게 제대로 갖춰진 방에서 살며 가끔 유진은 처음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직장을 그만두고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기간에도 총무로 일하며 고시원에서 지냈다. 당시 방은 화장실까지 있는 나름 좋은(?) 고시원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우면 냉장고에 머리가 닿아 시끄러웠고, 반대편으로 누우면 옆방 화장실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자다가 깰 정도였다. 유진은 결국 다시 몸을 돌려 냉장고 전원을 끄고 잠들곤 했다. 월세 40만 원인 방이었다.


유진은 한국살이와 독일살이를 비교할 때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집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독일에는 소득이 적은 이들을 위한 주택 정책도 잘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회주택(Sozialwohnungen)은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이 주택은 임대료가 제곱미터당 최대 6유로(1인 기준 최대 50제곱미터)를 넘지 않으며, 세금 빼고 300유로 정도에 방을 구할 수 있다. 학생, 저소득 노동자, 외국인 모두 사회주택 입주를 신청할 수 있다. 직업이 없는 경우에는 월세를 지원하는 정책도 있다.


물론 공공주택 입주 후에도 독일 대부분의 집이 그러하듯 모든 걸 혼자 설치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있다. 유진은 혼자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전구를 새로 사서 끼웠다. 한번은 손잡이가 빠져서 집에 갇힐 뻔한 적도 있었지만, 공구함을 꺼내 스스로 해결했다.


“비록 월세지만 내 이름으로 처음 집 계약을 하고 대형공구점을 매일 다니며 페인트칠, 락카칠, 전동드라이버, 톱질, 세탁기 연결 등 웬만한 집수리 작업을 모두 터득했어요. 한국에서는 사람을 부르면 쉽게 해결되는 과제잖아요. 여기에서는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도움을 청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손잡이 빠진 문을 다시 고쳤을 때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집을 정리하면서 생존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간 느낌이 들었습니다.(웃음)”


미디어 분야 프리랜서 노조에 가입하다


유진은 언론과 미디어를 공부했고, 한국에 이어 독일에서 기자로 일하는 ‘미디어 전문가’다. 유진은 “한국에서는 프리랜서 기자가 일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어서 독일에서 ‘한국 저널리스트’로 사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며 “감사하게도 짧은 일간지 경력으로 금방 일감을 구할 수 있었고 독일에서 혼자 내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일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독일에 있으면서도 독일 현장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출입처를 확보하기도 어렵고, 한국처럼 기관별로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아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는 일일이 관련 정보를 찾아다녀야 한다.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자 유진은 독일의 서비스 부문 노동조합인 통합서비스노조(ver.di)에 속해있는 미디어 분야 프리랜서 노조에 가입했다. 최소 만 원 정도부터 시작하는 월 회비를 내면 오프라인 세미나 등 다양한 교육을 들을 수 있고, 세금 등 기자 일을 하면서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여러 위원회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유진은 식료품을 사는 마켓과 약국, 병원 등을 제외하고 모든 종류의 시설이 문을 닫은 요즘에도 꾸준히 독일 언론과 미디어 이슈에 대해 취재해 한국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둘러싸고 한국과 독일의 보도 행태가 어떻게 다른지, 독일 네트워크집행법이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등을 담은 소셜네트워크 콘텐츠를 어떻게 처벌하는지, 끝없는 독일의 공영방송 수신료 논란 등의 이슈에 대해 다뤘다.


TIP. 유진이 전하는 한국과 다른 ‘독일 코로나19 보도’ 특징


1. 쏟아지는 뉴스, 실시간 업데이트로 한 곳에 모은다.

시간대별로 확진자가 나오고, 격리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기사로 기사량을 늘리지 않는다. 코로나19 독일 상황에 대한 소위 ‘주요 기사’는 한 페이지에 시간대별로, 혹은 사안별로 계속 업데이트된다. 초기 보도부터 축적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추이를 한눈에 보고 이해하기 쉽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제목과 기사가 무분별하게 화면을 덮지 않는다.


2. 코로나19 관련 정보는 학술/지식 섹션에 보도한다.

코로나19 예방법, 증상, 위험성 등 객관적 정보는 주요 매체의 ‘학술’, ‘지식’ 카테고리로 나온다. 관련 궁금증을 해소하는 문답식 기사도 마찬가지다. 기사 배치에서부터 신뢰성을 보장한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두려움’이 아니라 ‘배움의 자세’로 기사를 접하게 된다. 문답식 기사 또한 같은 페이지에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면서 체계적이고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쌓아가고 있다. 이런 문답식 기사에서 호들갑이나 공포는 찾을 수 없다.


독일 언론에서도 연일 코로나19에 대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지는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 홈페이지 첫 페이지. ©출처: spiegel.de


3.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독일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은 직후 독일 언론 ‘슈피겔(Der Spiegel)’은 ‘부모가 알아야 할 것’에 대한 기사를 발행했다. 아이가 감염 가능성이 있을 경우, 아이 돌봄으로 직장에 가지 못할 경우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문답형으로 보도했다. 독일 최대 노조인 베르디는 발 빠르게 코로나19와 관련되어 직장인들이 알아야 하는 노동법 정보를 정리해 알리기도 했다. 격리나 돌봄 문제 등으로 우려하는 시민의 불안한 목소리보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먼저 찾아서 알리고 있다.


4. ‘패닉’을 만드는 매체도 물론 있다.

불안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매체도 많다. ‘빌트(Bild)’ 같은 타블로이드지다. 베를린 지역 타블로이드지인 ‘B.Z.’는 지난 2월 27일 저녁 내내 속보를 내보냈다.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베를린으로 온 한 승객이 코로나 증상 의심으로 병원에 갔다는 소식이었다. 노란색 속보 배너 기사가 번쩍번쩍하면서 베를리너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다음날 이 승객은 음성으로 밝혀졌고, 사람들은 ‘패닉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런 타블로이드지에서는 ‘햄스터 소비’, 즉 사재기하는 사진을 어디선가 구해서 열심히 보도하고 있다. 손 세정제는 이미 수 주 전부터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식품 판매대가 비는 일은 독일에서도 흔한 일이다. 이런 보도가 사재기를 더욱 부추긴다.


5. 언론사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때.

‘디벨트(Die Welt)’ 사이트에 여러 기사가 올라온다. “그러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더 커집니다”, “독일의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 “코로나19를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 “코로나19로 여행 취소? 당신의 권리입니다” 모두 유료 구독자에게만 보이는 기사다. 독일의 많은 언론사가 유료 콘텐츠를 따로 제공한다. 무료 기사와 유료 기사가 적당히 섞여 있다. 독일의 확진자 현황이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보는 무료로 접근 가능하지만, 언론사에서 별도로 전문가와 나눈 심층 인터뷰는 유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로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졌다. 그간 구독을 저울질하던 많은 독자들이 이번 기회에 뉴스에 돈을 지불하리라 생각한다.


(출처: 이유진의 베를린노트, “독일의 코로나19 보도 단상” 미디어오늘 2020년 2월 29일)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시스템에 중요한’, 즉 사회 인프라 유지와 위기 대처에 꼭 필요한 직종에 의료진과 수도 및 전기 공급업체 외에도 ‘기자’를 포함시켰다. 유진은 “매일 상황이 급변하는 현 상황 속에서 정확한 정보 전달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며, 최근 독일에서도 SNS에 출처가 불분명한 허위 정보가 많이 퍼지면서 기자들의 사실 확인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유진은 한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서 독일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외국인이 독일어로 독일 매체에 기사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에서는 독일인조차 저널리즘 전공 후 기자가 되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성 있는 프리랜서 기자 운영 시스템이 한국에 아직 정착하지 않은 것도 유진의 아쉬운 점 중 하나다.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에 관한 기사를 쓰는 외신기자들은 높이 평가하면서, 정작 외국에 혼자 힘으로 거주하며 거주 국가에 대해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한국 기자들에 대한 인정은 왜 없는 걸까.


이런 이유로 유진은 한국에서도 그러했듯 독일에서도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렇게 한국 정부 기관 통신원 일을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한국 매체에 기사를 쓰게 됐고, 독일 기사와 독일 매거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과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 수업을 하는 일도 하게 됐다.


“어찌 보면 그동안 내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긴 것 같아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무 괴로웠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았고, 열심히 하다 보니 독일에서의 밥벌이가 가능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나아가다 보면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유진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서 기자 일을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었다. 지금처럼 7년째 독일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유진은 가까운 미래에 독일에 있을지 다른 곳에 있을지 그림을 그려보지 않는다. 미디어를 더 공부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들어가 논문을 쓰고 있을 수도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 일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낯선 타국에서 혼자 힘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유진은 이제 알고 있다. 외국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가끔은 여러 제약으로 자신이 생각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여성들에게 유진의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독일 미디어, 젠더 불균형 문제 심각


독일의 미디어 영역이 여전히 남성 지배적이며 젠더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두 가지 젠더 연구보고서가 뒷받침한다.


첫 번째 보고서는 독일 로스톡(Rostock) 대학 연구팀이 지난 2017년 발표한 ‘독일 영화와 TV 속 남녀역할 묘사’ 젠더 보고서다. 연구팀은 총 3천 개의 TV 프로그램과 1천 개의 영화 필름을 분석했으며, 그 결과 독일 TV와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의 75%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남성 지배적인 영역은 ‘정보 전달’ 프로그램으로 사회자의 80%, 전문가의 79%, 대변인이나 대표자의 72%가 남성이었다. 뉴스, 다큐멘터리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 비율 중 남성은 70%에 달했으며,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남성 비율이 69%였다.


무엇보다 여성 출연자는 나이 제약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여성은 같은 또래의 젊은 남성 동료보다 TV에서 자주 보이지만, 30대 중반부터는 남성 출연 비율이 여성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50세 이상 여성 출연자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글로벌 미디어 모니터링 프로젝트’는 5년마다 미디어 젠더 평등 지수를 발표한다. 출처: whomakesthenews.org


두 번째 보고서는 5년마다 발표되는 ‘글로벌 미디어 모니터링 프로젝트’(Global Media Monitoring Project)의 미디어 젠더 평등 지수다. 2015년 보고서를 살펴보면, 인쇄 매체 뉴스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비율은 35%다. 라디오 영역은 이보다 조금 높은 41%로 조사됐다. 여성 저널리스트가 보도하는 기사 영역으로는 정치(31%)와 경제(39%) 영역에서 낮게 나타났다. 2020년 보고서는 아직 발표 전이다.


또 보고서에 따르면 신문이나 TV, 라디오 등 매체에 등장하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은 24%에 그쳤다. 특히 정치 뉴스에서는 여성이 다뤄지는 비율은 16%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뉴스 인터뷰에서 여성이 대변인으로 나온 경우는 20%, 전문가로 모습을 보인 비율 역시 19% 정도였다.


독일 언론 도이치벨레(DW)는 지난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열흘간 도이치벨레 온라인팀의 기사를 분석해 발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두 보고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젠더 불균형 문제가 발견됐다. 기사에서 여성이 전문가나 대변인, 또는 사건의 중요한 사람 등으로 다뤄진 비율은 29%에 그쳤다. TV팀의 경우에는 조사 기간 동안 뉴스에 등장한 255명의 인터뷰 참여자 중 43%가 여성으로 조사됐다.


독일의 미디어 영역 내 젠더 불균형 문제를 보여주는 두 보고서 이후 아직 발표된 새 보고서는 없지만, 여전히 미디어에서 보이는 남성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독일에서는 카메라 앞에 보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여성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움직임도 크게 일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필자 소개: 채혜원. 독일 베를린 거주. 한국에서 여성매체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 국제 이주·난민 페미니스트 그룹 <International Women Space> 멤버로 활동 중이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유럽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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