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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비서 성폭력을 ‘산업재해’로 조명해보자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권수정 님에게 듣다



안희정-박원순 사건을 산업재해로 볼 수 없을까?


최근 한국 사회는 정치권에서 일어난 또 한 번의 성폭력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2018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고 올해 또다시 박원순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면서, 언론에서는 정치권 비서의 노동 환경이 성폭력 발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겪은 직장 내 성폭력을 진지하게 ‘노동 환경’의 문제, 더 나아가 ‘산업재해’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미비하다.


책 <김지은입니다> 중. 정치권 비서들이 처한 억압적 노동 환경을 보여준다. ‘도지사 수행비서 업무 매뉴얼’ (촬영: 밍갱)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1년, 대한민국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투쟁이 있었다. 농성장이 당시 여성가족부가 있던 청계광장에 자리잡아 ‘여성가족부 투쟁’이라고도 불렸던 이 투쟁을 통해, 피해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보복성 해고를 당했던 것에 대해서도 ‘복직’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피해자와 함께 이 투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피해자 대리인이었던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만났다.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보아야 하는 이유, 현장에서 실제 산재로 인정받는 과정의 어려움, 그리고 안희정/박원순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을 산재로 인정받은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죠. ‘여성가족부 투쟁’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1997년부터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있었습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두 명의 하청업체 관리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죠. 피해자가 이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는데, 회사가 그해 9월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선량한 풍속을 해친다.’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피해자를 해고했어요.


이후 2011년 1월에 국가인권위는 성희롱으로 인한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원청인 현대자동차 측에서 피해자가 속해있던 하청업체를 폐업해버렸죠. 실제로는 회사 이름만 바꾼 거여서 가해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전부 고용 승계가 되었는데, 피해자만 돌아갈 곳이 없어진 거죠. 국가기관으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는데도 법적으로는 이미 돌아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렇다면 이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 않냐, 이런 생각으로 피해자와 대리인이었던 제가 함께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일의 농성 끝에 결국 복직을 이뤄냈죠.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내 성희롱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았고요.”


금속노조 부위원장 권수정 님의 인터뷰 모습. (촬영: 레나)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뿐 아니라, 부당해고 문제까지 엮여있는 투쟁이라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려운 싸움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피해자 언니가 이렇게 말했어요. ‘만약 내가 지금 여기서 멈추면 비정규직 사내하청 여성노동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도 그냥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나는 도저히 그걸 못하겠다. 내가 성희롱을 당한 게 맞고, 그 사람이 가해자가 맞다는 걸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정을 했는데도 회사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대체 어떤 여성노동자가 사내 성희롱 피해에 대해 말할 수 있겠냐’고. 그래서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결심하게 되었죠. 이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근데 이걸 동의해버리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 그것 때문에 싸우게 된 것 같아요.”


-사실 현대자동차라는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게다가 한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잖아요? 복직을 위한 싸움만으로도 어려운 와중에 이 문제를 산업재해로도 인정받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혹시 있으셨나요?


“아산에서 서울로 피해자 언니랑 둘이서 올라오면서 기조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였어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전에(2000년) 사내 성폭력에 의한 ‘신체적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하나 있었어요. 근데 그건 사무직에서 있었던 일이거든요, 피해자도 다수였고, 물리적 피해도 있었고…. ‘심리적 피해’가 중심이고 피해자가 한 명인 우리 사례랑은 또 다른 거였는데, 사무금융연맹에서 그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 분이 농성장에 찾아와서 ‘산재 신청을 한 번 해보세요’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그럴까요?’ 하고 하게 된거죠.(웃음) 그때는 다 몰랐었죠. 사내 성희롱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선례가 없다는 것도 몰랐고, 이후에 그렇게 힘들 줄도 몰랐고.”


-산업재해 신청을 한 이후에 많이 힘들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가요?


“산업재해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하면 공단에서 조사를 해요. 근데 문제는 공단 직원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라. 공단에서 피해자가 조사를 받은 날에 다른 인터뷰가 있어서 내가 같이 못 갔는데, 피해자 혼자 조사받는 과정에서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조사하는 사람이 남자였고, 공개되어있는 장소, 그것도 사람 많은 사무실에서. 마치 경찰서에서 범죄자 조사하듯이 앉혀놓고 물어본 거죠.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뭐였냐면, ‘왜 이혼을 했냐’, ‘이혼하기 전에 집 나간 적도 있다던데.’ 이런 가해자 관점에서의 질문들을 사람들 다 있는 데에서 물어본 거예요. 그거를 2시간에서 3시간을 하고 온 거죠. 조사를 받고 와선 언니가 막 우는데, 둘이 앉아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펑펑 울었어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겪은 피해자에게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오히려 2차 피해를 입힌 셈이군요.


“네. 근로복지공단에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쫓아가서 기자회견을 하고, 조사관을 여자로 바꾸라고 얘기하고, 비공개적인 공간에서 피해자 대리인이 동석해서 하겠다, 그렇게 주장해서 여성 조사관으로 바뀌기는 했죠. 그런데 또 여성 조사관이 와서는 이전에 조사한 게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보시라,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국가인권위에서 이미 판단한 내용이 다 있다. 이 내용 그대로 국가가 산업재해로 인정만 해주면 된다. 따로 조사도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혼 여부나, 이혼하기 전에 남편과 싸우고 보름 정도 집을 나간 일 같은 걸 왜 물어보냐, 이건 또 다른 가해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이렇게 가르쳐야 하는 게 공단만이 아니었어요. 경찰 앞에서도 또 이야기해야 하고, 국가인권위에서도 이미 다 설명한 내용인데 재판에서도 몇 번을 반복해야 하고. ‘도대체 한 사람의 피해자가 자기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왜 이렇게 많은 국가기관에 반복해서 가르치고 얘기해야 하는가.’ 하나의 국가기관에서 한 번 인정을 받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콜 전화 같은 것처럼. 실제로 해외는 그렇게 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2011년 당시 여성가족부 앞에 있던 농성장. 출처: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블로그 


-조사 과정의 어려움이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피해자가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꺼리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국가인권위와 고용노동부에서 사내 성폭력/성희롱 문제를 처리해요. 피해자는 노동부에 진정할 수도 있고, 국가인권위에 제소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산재를 넣으려면요, 노동부에 한 번 냈어도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해요. 다시 조사를 받아야 되죠. 노동부 판단을 가지고 가봤자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아요. 그러니 보통의 피해자들은 그렇게 못하는 거죠. 일단 왔다 갔다 하는 거 자체가 힘들어요. 거기다가 만약에 명예훼손으로 가해자가 걸고 이래 보세요? 그러면 거의 불가능하죠. 한 여성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노동부도 가야 되고, 근로복지공단도 가야 되고, 경찰서도 가야 되고, 민형사상 소송도 해야 되고, 이걸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거죠, 지금은.”


-이외에도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들이 또 뭐가 있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은 피해자에게 무척 많은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노조의 지원 같은 게 절실해지죠. 그런데 문제는 노조에서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산업재해 지원에 온전히 집중하기에는, 이미 중대 재해로 인해 사망하는 노동자들부터가 수도 없이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들조차 산업재해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란 더더욱 쉽지 않겠죠. 결국은 산업재해에 대한 의식부터 바뀔 필요가 있어요.”


-사내 성폭력 문제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이 다른 산업재해들을 인정받는 것과 무관한 문제가 아닌 거군요.


“그렇죠, 정말 무관한 문제가 아닌 게, 대한민국은 가해자에 대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약해도 너무 약해요. 우리 사건에서만 봐도 하청업체 사장에게 벌금으로 떨어진 돈이 400만 원이에요. 이게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 이전에,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부터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거든요.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데, 사내 성희롱을 제대로 처벌할 리가 없겠죠. 그래서 저는 직장 내 성희롱도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이 만들어지면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장에 대한 처벌이 잘 이뤄질 수 있다면,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성희롱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할 거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나는 생존을 걸어야 되는데 이것이 인정돼봤자 회사는 피해받는 게 거의 없어. 그러면 문제 제기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손해인 거죠.


그리고 또 산업재해 인정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애초에 당사자들부터가 직장 내 성희롱이 산재인 걸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죠. 직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잘 하지 않거든요. 금속노조 성폭력 강사단도 사업장에 가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는데, 금속노조 강사단이 하기 이전에 다른 곳으로부터 교육을 어떻게 받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안 하고 대충 사인하거나, 하더라도 보험상품 팔고 10분 정도나 얘기하고 가고, 이런 식이었다고 보통 답을 해요. 그러니 사람들이 직장 내 성희롱이 뭔지도 모르고,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더 모를 수밖에 없겠죠.”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의 인터뷰 모습. 출처: 레나


-권수정 님은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내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직장에서 발생하는 다른 산업재해들도 위계와 권력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죠. 관리자가 무리하게 시킨 일을 하다 다치는 것도 사실은 위계와 권력이 작동을 하는 거죠.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는데, ‘(사업장이 아니라) 회식 자리에서 싸움이 나서 관리자가 폭행을 했다.’ 이것도 산재가 돼요. 그러니까 직장 내 위계와 권력에 의해서 관리자가 나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내가 그 고통으로 인해 치유 받아야 한다면, 그것도 당연히 회사에서 보상을 해야 하는 거죠. 결국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문제를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산업재해들과 마찬가지로 ‘노동 환경 내에서의 위계와 권력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다는 거예요. 더이상 개인과 개인 간의 일로 보지 않고요.


사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나 관리자가 ‘내가 너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표출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원래는 노동자와 사측이 어떤 노동을 할지,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할지, 임금을 얼마로 할지 서로 합의하고 계약관계에 의해 일을 해야 하는데, 그 관계에서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은 심지어 ‘내가 너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그래서 직장 내 성희롱이 있었다는 건, 나머지는 안 봐도 비디오에요. 사용자가 노동자를 소유 관계로 보는데 당연히 나머지 노동 환경도 다 엉망일 수밖에 없죠. 안희정/박원순 사건만 봐도 노동 환경 전체가 엉망이었잖아요?


-안희정/박원순 사건은 이 기사를 기획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내 성희롱 문제로 투쟁하셨던 분으로서, 이 사건들을 보면서 생각하신 바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안희정/박원순 사건 보면, 사람들이 사내 성폭력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증거들이 ‘인수인계를 열심히 했다.’ 뭐 이런 거예요. 이 문제를 노동 환경의 문제, 산업재해를 당한 피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 관계로 바라보니까. 피해자는 노동자로서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인수인계 문서에서 서울시장에 대해 좋게 썼다는 것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증거로 해석이 되잖아요? 말하자면, 이걸 ‘노동 환경 문제’, ‘산업재해’로 바라보지 않고 그냥 개인 간 성폭력으로 바라봐버리면, 사내 성폭력 문제에서 피해자는 일을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그게 이후에는 성폭력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버리는 거죠.런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개인과 개인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직장 내 성폭력이 발생한 범죄 현장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해요.”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정치권 비서 성폭력을 ‘산업재해’로 조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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