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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은 ‘자위’, 여학생은 ‘월경’에 대해 묻는다

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생물학적 성차를 넘어서


 

1년 전쯤 한 중학교에서 1, 2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성교육 수업을 하기 전 익명으로 사전 질문을 받아보았다. 청소년 당사자들이 현재 성에 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렇게 ‘기획’까지 함께하는 선생님은 드문 편이다. 학생들이 쓴 수십 장의 쪽지를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신 선생님의 성의와 열정에 응답하고자, 받은 질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며 주제별로 정리했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궁금해하는 내용이 달랐다. 남학생의 대부분은 발기와 자위, ‘야동’에 대해 질문했다. 발기가 너무 자주 되어 걱정이라거나 발기 횟수와 정력의 관계, 자위에 대한 걱정, ‘야동’의 중독성이나 법적 규제 등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여학생들의 질문에서는 월경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았다. 그 외에는 임신이나 연애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남녀 공통적으로는 성관계에 대한 질문이 조금 나왔는데, 특히 여학생의 경우에는 성인과의 성관계에 대해 질문한 것이 눈에 띄었다.


3년 전, 한 남자중학교 성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자신이 가진 성별에 대한 생각이나 주위에서 들어본 성 고정관념을 쓴 것.


여학생과 남학생의 궁금증이 왜 이렇게까지 다를까?


학생들의 질문을 펼쳐 놓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첫째, 청소년들은 왜 ‘성’을 몸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게 됐을까? 성을 ‘몸의 문제’로 한정해서 인식하면 무엇을 놓치게 될까. 실제로 많은 성교육이 신체와 관련된 지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성을 몸과 일치시키는 관점은 성기(혹은 생식기)의 기능과 존재를 과하게 집중시키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몸 바깥’과 관계 맺지 않고, 몸 안팎을 통합적으로 사유하지 않는 성담론은 자칫 ‘본능’과 연결되기 쉽다.


그런데, 성욕은 과연 본능의 영역일까?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로서의 ‘성욕’이 학생들의 성별에 따른 질문의 편차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몸-성기-본능-성욕으로 귀결된 성담론은 남학생에게는 ‘충동’을, 여학생에게는 임신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성을 ‘통제’와 ‘안전’이라는 틀 안으로 끌어들인다.


둘째, 남학생들은 발기와 자위 등 자신의 ‘성욕 해소’가 왜 성에 대한 최우선 관심사가 됐을까?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성욕의 실천 여부가 정상성과 ‘남자의 능력’을 상징한다고 보는 학생들의 생각은 사실 많은 성인 남성들이 성이나 섹스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다른 중학교에서 성교육을 했을 때, 1학년 남학생이 ‘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남자가 여자 몸을 만지는 것’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는 그 학생의 직관이 놀라웠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적 권력의 주체와 대상이 누구인지 청소년들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자위하는 여학생은 없을까? 여학생들은 누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남녀공학에서 수업을 할 때,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더라도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 비해 성에 대한 표현을 적극적으로, 솔직하게 하기 힘든 현실이다. 자위나 ‘야동’ 이야기가 나오면 남학생들은 웃으며 떠들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과시하기까지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2년 전, 한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여학생이 쓴 성 고정관념 관련 내용.


이럴 땐 성별 분리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지는데, 학교 수업의 조건상 그렇게 탄력적으로 이뤄지기가 힘들어 아쉽다. 정해진 수업 일정과 예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은 교육권을 갖고 있다 해도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누리는 것은 다시 ‘성별화’된다.


넷째, 그렇다면 여학생에게 허용되거나 실현 가능한 성적 욕망과 표현은 존재할까? 월경에 대한 지식은 보건이나 생물 시간에도 자세히 배운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성교육 시간에 ‘의학적’인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다. 생리적 기능 외에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몸을 연결시켜 바라보고 경험할 기회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녀’가 성적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성적으로 대상화될 때뿐이다. 성적 컨텐츠를 모아놓은 사이트에서 ‘여고생’이나 ‘여중생’ 키워드는 늘 상위권에 랭킹되어 있다. 청소년과 성인 간의 연애나 섹스에 대해 된다/안 된다를 말하기 전에, 왜 남학생들은 여학생에 비해 성인과의 연애나 섹스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지, 10대 여성에게 성과 연애의 현실적 조건이 어떠한지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이분법적이고 불균형한 성 규범을 주입하는 사회


성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철저히 이분법적인 성별 체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질서에 따라 섹슈얼리티를 이해하고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미 학생들에게 내면화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불균형한 인식을 45분의 수업으로 해소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십대들이 성에 대한 ‘다른’ 생각과 상상을 허용받은 적 없는 상태에서, 강사가 무엇이 ‘옳다’고 주입한들 그것은 주입식 훈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만 익숙한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를 바라며 수업을 준비했다. 만약 학생들이 일찍부터 체계화된 젠더 감수성 교육을 받으며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었다면, 성별 간 질문의 편차는 줄어들었을 것이고 성을 상상하는 스펙트럼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2020년 한 중학교 성교육 시간에 여학생들이 여성으로서 많이 들어본 말에 대해 쓴 내용.


청소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할 때 가장 강조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성 고정관념 깨기’이다. ‘여자답다’, ‘남자답다’는 통념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면서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우리가 가진 개별적이고도 다양한 잠재성을 탐구해보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성’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성별’(또는 ‘여자와 남자’)이다. 성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 다른 두 부류가 있고, 그 중 하나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연애와 섹스에 대해 상상할 때도 이성애 커플 관계를 떠올리며, 거기에 남녀의 성역할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아이들이 보내는 일상적인 공간이 얼마나 젠더화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n번방’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이 사회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제한된 수업으로 이들의 젠더 감수성을 기르기에는 한계가 많다. 아이들의 일상을 둘러싼 가정과 학교, 미디어에서는 과연 이분법적 성 규범을 벗어난 외모나 행동을 얼마나 수용해주고 있는가? 성역할 고정관념은 수업 바깥의 공간들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학습되고, 대물림되고 있다.


2020년 한 중학교 성교육에서 학생들이 성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필요한 실천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쓴 내용.


몇 년 전, 한 남자중학교에 성교육을 갔을 때 담당교사가 수업 전에 “남학생들이니까 짓궂어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여학교에서나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이었다. 남성에게‘만’ 이 같은 특성을 부여할 때, 폭력이나 괴롭힘을 장난으로 치부하게 되고 결국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짓궂음’이 성장기 ‘소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일로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이들이 자라면서 성에 대한 태도를 왜곡되게 만들 뿐 아니라 주변에 피해자를 양산한다.


반면, 여학생의 경우에는 외모에 통 관심이 없어도(“여자 맞냐”), 외모에 큰 관심을 보여도(“누구 보여주려고 꾸몄냐”) 모두 비난의 요소가 된다. 여학생 교복 상의 안주머니에 틴트를 넣을 작은 주머니를 디자인해 판매하면서, 정작 입술을 붉게 칠한 여학생들을 비난하는 사회의 이중잣대가 여학생의 성과 몸에 대한 주체성과 통제력을 기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는 동등한 성적 존재로서 존중받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기울지 않은 평평한 곳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성에 대해 말하고 서로 듣고 묻는 장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생물학적 성차를 넘어,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성교육이 우리의 삶과 일상 곳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글쓴이: 달리. 페미니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배우는 사람이었지 가르치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지방/농촌 지역 여성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청소년 젠더교육에 관심갖게 되었고, 다양한 주제로 전국적인 강의 활동을 하는 중. 1년 1시간짜리 강의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인생에 1분이라도 성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백명 중 한명이라도 눈 마주치며 들으면 대성공이라는 낮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수업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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