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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읽다] 양육자들과 읽은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②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아들 성교육이 사회를 바꾼다 미투(#MeToo) 확산, 성평등한 성교육의 중요성 부각 초딩 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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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이의 귀에 물이 들어갈까 씻기는 것조차 겁이 났다는 윤정 씨. 효율적으로 살아온 일상이 육아로 인해 멈추자 매일 엄청난 양의 쿠키를 구웠다는 영은 씨. 의지와 노력만으로 성취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깨달으며 세상살이에 겸손해졌다는 은경 씨. 그리고 그들의 말을 오도카니 듣고 있는 내가 있다. 자녀도 없으면서 용감하게 이 대화에 동참했다.

 

세 사람이 말한 육아는 낯설면서도 낯설 것이 없었다. 효율과 비효율로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돌봄은 물론 그 무엇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그 책임을 다해 열심히 사느라 외로웠다. 이들은 이날 내게 ‘애 가진 것이 죄’라고 하지도, ‘세상 살며 자식은 한 번 낳고 볼 일’이라고도 하지도 않았다.

 

다만 돌봄이 지닌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육아휴직 1년을 했는데, 본인도 그러더라고요. 초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고립감을 느낀 건 처음이다. 초등학교 다니고부터 사람을 계속 만나왔는데, 이제 집에 아이와 혼자만 남은 거죠.”(권영은)

 

이 고립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들은 신기하게도 내내 움직였다. 자신의 선 자리를 이동시키거나 자신이 연결된 공간을 확장했다. 양육의 책임을 말하면서도, 이들이 양육자의 위치에만 머물지 않기 위해 애를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윤정 씨와 함께 어린이책을 읽고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


“자녀와 결코 하나의 관계로만 맺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자만이 아닌, 연대자로, 서로 성장하고 책임지는 관계로 여러 측면이 얽혀 있는 것 같아요.”(허윤정)

 

나는 되물었다. “연대자요?” 낯선 이야기였다.

 

‘연대자’로서의 양육자

 

윤정: “같이 성장하는 관계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한데. 첫째랑 저는 성격이 되게 다르거든요. 저는 성격이 따뜻하지 못하고, 사실관계로 딱딱 ‘그건 아니야’ 말하는 편인데. 아이는 다정하고 공감을 원하는 편이라 저와 부딪혀요.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 맺음 하려다 보니 생기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저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도 저를 배려해줘요. 사랑한다는 마음이 자기 방식대로의 배려를 낳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 성장하는 거 같아요.”

 

(지)은경: “육아를 하면서 저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아이랑 있으면 제 모자란 면을 들키잖아요. 그걸 아이가 따라하기도 해요. 미안하고. 속상하더라고요. 더 고치려고 노력하고. 아이가 나에게 피드백을 주면 ‘아, 이러면 안 되는구나.’ 요즘은 바로 사과를 해요. ‘OO아.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어. 앞으로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할게. 너도 소리를 지르지 말고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서로 이렇게 반성합니다. 어, 이런 걸 아이와의 연대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품는다. 연대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서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동등한 권리를 지닌 사람으로 만날 때야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양육의 손길이 필요한 자식과 양육자인 부모 관계에서 가능한 일일까.

 

윤정 씨는 경험자로서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존재들에게 연민과 애틋함을 느낀다고 했다.

 

“경쟁 사회를 살아오며 느낀 환경의 차이, 성별에 따른 차별,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외로움 등을 겪어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관련된 뉴스나 주변 소식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그는 걱정과 보호라는 이름 아래 자녀들을 통제하지도, 너희들을 위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 하지도 않았다.

 

“저는 사회적으로 어떤 이슈가 생기면 아이들과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이야기를 나눠요. 가령 차별금지법 같은 경우, 저도 우리 아이들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한편 혐오를 줄여나가야 할 당사자이기도 한 거잖아요. 책을 통해 당사자로서 고민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는 거예요. 그렇게 저는 이 아이들에게 연대를 하고 있는 거고요.”

 

당사자 간의 ‘연대’라는 표현은 그가 고심 끝에 찾아낸 태도일 것이다. 당장 동등할 순 없어도 같이 걷는 일이 시작됐다. 관계와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겠다. 부모의 자리(위계)가 있으나, 그 또한 움직인다. 어쩌면 평등이란, 상대를 ‘동등하게 대하려는’ 노력에 앞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일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사회구성원인 자녀에게 느끼는 연대감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의 감각으로 전환된다. 이는 영은 씨의 ‘투쟁’과 맞닿는 부분이다.

 

영은: “육아를 하며 시야가 더 열렸던 거 같아요. 아이가 못 걸어가는 곳은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거고. 청각 장애인과 아이에게는 큰 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그간 제가 놓치고 지나쳐 왔던 세상에 대한 연대감이 더 크게 생긴 것 같아요.”

 

▲ 은경 씨, 아이와 함께


은경: “제가 대학생 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는 분들이 지하철 철로에 휠체어를 묶고 투쟁하셨거든요. 그때 얻어낸 결실(지하철 엘리베이터)을 제가 이렇게 누릴 거라 생각 못 했어요. 그래서 정말 감사했어요. 유모차를 미는 사람은 이동권에 있어서 약자라고 생각해요. 그게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의 권리와 겹치는 거죠.”

 

그렇게 나와 타인의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이 자신과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내가 낳은 ‘타인’과 관계를 통해 익힌 일이겠다.

 

관계를 만들고, 서로를 키워나가는 ‘노동’

 

그럼에도 이 연대감이 ‘보호’로만 흐르진 않을까 경계한다. 나의 아이가 예쁘니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마음이, 그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여겨지는 존재를 향한 적개심으로 드러나는 일을 종종 접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들어서기도 한다.

 

‘애정과 보호’, ‘연대와 배제’가 긴밀히 얽혀 있는 육아라는 행위를 복잡한 심정으로 더듬는다. 그때 영은 씨가 말했다.

 

“이 아이는 물론이고, 나조차 어제보다는 세상을 사는 데 어려움이 조금 더 적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에요. 그럼 우리 아이에게 좋고. 다른 아이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를 구원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나를 구원한다?”

 

“과거의 나. 차별받던 나. 모르고 넘어갔던 나. 그리고 미처 알지 못하고 가해를 했을 나. 그때의 나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의 나는 덜 상처 주고 덜 상처 받고 잘 지냈으면 좋겠고. 싸우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라 여기고 있어요.”

 

무엇이? 세상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내가, 두려움을 직면하는 내가, 누군가를 올곧게 책임지려고 애쓰는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한다.

 

▲ 양육자이자, 그 자신으로 세상과 투쟁하고 있다는 영은 씨


“엄마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하게 자란다는 글을 읽을 때마다 뭔가 죄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 173쪽)

 

이제야 나도 책 속 인물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육아를 하는 존재는 ‘엄마’만이 아니다. 또 양육이라는 행위는 ‘양육자’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이자 ‘나’의 연대자인 자식 또한 양육이란 행위의 동료이자 주체이다. 돌봄을 받기만 하는 대상은 없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양육자들이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게끔 사회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말했다. 여기서 ‘사회’는 오직 국가 제도와 복지 지원책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는 기록노동을 육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하지만, 기록자가 건강하고 평온해야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은 맞다. 상대와 눈 마주치고 귀 기울여 관계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할 순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기록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말하는 이(인터뷰이)도 애쓰기 때문이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오직 기록의 ‘대상’이 아니다. 그 역시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내는 동료이자 공동 작업자이다. 그렇게 인터뷰이와 나의 위치를 이동하며,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도 서로에게 의미를 주는 기록물을 만들어간다.

 

육아라는 노동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손을 빌려 나의 평온을 만들어가는 일. 양육자와 양육 받는 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애쓰는 일. 그렇게 서로를 지키고 돌본다.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가 사라졌다』(공저) 등을 썼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고,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책을 읽고 감상을 공적인 지면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기록을 읽다> 연재를 통해 기록 글(르포르타주, 구술 등)을 읽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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