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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책장] “당위가 아니라 의지로” 살아가는 선녀 이야기

 

*이 리뷰는 웹툰 『계룡선녀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실

 

높고 가파른 계룡산의 중턱에서 주막 모양의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커피 메뉴의 이름은 ‘사슴의 눈물’, ‘참새의 아침식사’, ‘안돼요 공주님’, ‘검은 물’... 이런 식이다. 커피에 파리가 빠져도 바꿔주기는커녕 손가락으로 파리를 건져내 살려보내는 괴팍한 할머니 바리스타, 장사가 잘 될리 없을텐데 손님은 붐빈다. 불쾌한 의문 속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이내 이해하게 된다. 왜 모두가 이 할머니의 커피를 다시 찾는지 말이다. 할머니의 정체는 선녀,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탐랑성, 이름은 선옥남이다. 물과 초목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커피를 잘 만들 수밖에.

 

▲ 돌배 작가의 웹툰 『계룡선녀전』 1화 "계룡산커피숍1" 중에서


『계룡선녀전』의 돌배 작가는 제주도 여행을 하다가 고추 말리는 할머니를 보고 이 설정을 떠올렸다고 했다. 평범히 소일거리에 열중하는 할머니에게서 선녀의 그림자를 발견한 순간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구조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조립되기 시작한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훔친 걸까? 사슴은 순수하게 나무꾼을 도와주려고만 했던 걸까? 사냥꾼은 왜 사슴을 쫓았을까? 돌배 작가의 안온하고 고운 그림체 안으로 이야기가 스미면서 『계룡선녀전』은 가려져 있던 선녀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가 본 것이 왜 진실이라고 믿지?” (4화)

 

<선녀와 나무꾼>은 금기가 중심이 되는 전래동화이다. 나무꾼은 아이를 셋 낳기 전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사슴의 경고를 무시해 선녀를 잃는다. 나무꾼의 처지가 안타까웠던 누군가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사슴이 나타나 나무꾼에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두레박의 위치를 알려주고, 나무꾼은 다시 선녀와 만난다. 그런데 나무꾼과 선녀가 재결합하기를 원치 않았던 누군가가 또 이야기를 덧붙인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나무꾼에게 선녀는 천마를 빌려주고 절대 내리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나무꾼은 집으로 돌아간 후 어머니가 끓여준 팥죽을 먹다가 천마의 등에 흘리고, 뜨거워 날뛰는 천마로부터 결국 떨어진다. 땅에 남겨진 나무꾼은 닭이 되어 하늘을 보며 매일 울부짖었다 한다.

 

전래동화를 그대로 따라갔을 때 독자는 나무꾼을 연민하게 된다. 그런데, 나무꾼은 정말 불쌍한가? 뜯어보면 그는 결혼에 실패한 비자발적 독신이며, 한 여성을 고립시켜 강제로 결혼을 종용한 납치범이자 사기범이다. 이 설화에서 발견되는 것은 나무꾼의 모순된 인간성과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결혼에의 의지다. 사슴은 구해주지만 고향을 잃은 여성은 돌려보내주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호의에 나무꾼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강제로 맺어진 인연은 오로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금기로 유지된다. 금기로 지켜질 수밖에 없는 인연은 얼마나 허약한가.

 

#인연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지. 모든 것은 굴러가는 인연의 바퀴를 따라 움직이니, 한치 앞도 못내다보는 우리들은 그저 이끌려지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이상하지. 자꾸 미련이 남는 게” (35화)

 

반면, 『계룡선녀전』은 ‘인연’이라는 주제에 집중한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만나고 또 어떻게 헤어지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떠도는 미움과 그리움과 사랑은 또 무엇인지. 사람이 한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 말이다. 한 번 강하게 맺어진 인연이 시간을 뛰어넘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돌배 작가는 나무꾼의 캐릭터를 선량한 방향으로 비튼다. 선계에 속한 탐랑성 선옥남과 파군성 바우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파군성이 파적을 당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파군성은 나무꾼으로 환생하고 선옥남과 지상에서 만나 결혼한다. 불행하게도 나무꾼은 ‘의문의’ 사고로 죽고 선옥남은 나무꾼의 환생을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

 

『계룡선녀전』의 인물들은 영속하고 반복된다. 선옥남처럼 몇백 년 살아가는 존재도 있는가 하면, 수명을 다하고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이도 있다. 환생은 다음 기회다. 환생 이전의 존재와 이후의 존재는 본질을 공유하지만 엄연히 다른 독립된 주체로 취급된다.

 

▲ 돌배 작가의 웹툰 『계룡선녀전』


『계룡선녀전』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죽지 않는 존재(기다리는 사람)와 환생한 존재(돌아온 사람)는 어떻게 서로를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 돌아온 사람은 떠나기 전의 사람과 같지 않다. 죽지 않는 존재는 지금껏 쌓아올렸던 기억과 내면의 서사를 유지하고 있지만 환생한 존재는 분절되어 있다. 따라서 먼저 알아보는 쪽은 ‘죽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전래동화의 구도는 역전되어 있다. 선녀가 나무꾼을 찾는다. 잃어버린 남편의 환생을 찾으러 선녀는 먼 길을 떠나 서울로 당도한다.

 

선옥남의 고민은 인간계에 대한 책임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계에 머무를수록 선녀의 힘은 약해진다. 선녀의 힘이 약해질 때 인간 세상과 선계의 이치도 흔들리게 된다. 북두칠성이 흐려지면서 사람들은 길찾이별을 잃고 탐욕과 시기, 미움과 괴로움이 넘쳐나게 되었다. 인간 세상은 이제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신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선옥남은 얼른 남편을 되찾아 날개옷을 찾고 하늘로 돌아가려 한다. 별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동시에 선옥남은 사랑하는 남편이 그립다. 선녀로서의 당위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의지가 겹치고 충돌한다.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에서도 말했듯,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다. 선옥남은 잃어버린 인연이 제시간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만큼 강인한 사람이면서, 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인연을 찾아나서는 용기 있는 인물이다. 인연은 당위와 의지 사이에 있다. 헤어짐의 운명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살아있다. 인연의 바퀴를 굴리면서도 미련의 자국은 남는 것처럼.

 

#복수

 

“그 때 나는... 그저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 뿐인데. 왜 그랬소?” (41화)

 

엇갈린 인연 사이로 『계룡선녀전』은 한 꺼풀의 이야기를 더 겹쳐놓는다. 나무꾼과 사슴은 총 3번의 환생을 거친다. 최초의 그들은 한 마을의 추녀와 여자아이였고, 선계에서는 선인이었으며, 각각 나무꾼과 사슴으로, 이후에는 이원대학교 생물학과 연구원 김금, 교수 정이현으로 환생한다.

 

파군성이 파적당한 이유는 그의 동료 거문성 이지 때문이다. 바람을 다스리는 파군성과 불을 다스리는 거문성은 둘도 없는 절친이다. 이지는 거문성으로 환생하기 이전, 한 마을의 가난한 여자아이였고 마을 사람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불타 죽는다. 복수심에 가득 찬 이지는 선인의 힘으로 인간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다. 이지는 절친 파군성에게 자신의 복수를 도와달라 하지만 바우새는 이지의 제안을 거절한다. 선인이 인간의 이로움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대로 행동할 때 오법통이라고 하는 병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지의 증세는 심각해져 간다. 이지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바우새는 이지의 잘못을 고발하고 함께 파적 당한다.

 

▲ 돌배 작가의 웹툰 『계룡선녀전』 1화 "계룡산커피숍1" 중에서


이지는 기억을 지닌 채 사슴으로 환생하게 된다. 죄를 저지른 사슴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물 한 모금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사냥꾼에게 쫓겨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사슴을 구해주는 것은 나무꾼이다. 그러나 증오와 배신감을 간직한 사슴은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국 나무꾼을 죽이게 된다. 파군성 바우새는 바람처럼 상처입은 사람을 향해 늘 달려나가지만, 거센 복수의 불길에 휩싸인 거문성 이지를 더욱 타오르게 만들 뿐이다.

 

복수는 인연을 갈라놓는다. 인연을 되찾으려는 선옥남에게 복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누가 증오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는 걸까? 누군가의 증오와 복수심을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계룡선녀전』의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어쩔 수 없는 순간과 고칠 수 있는 순간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지는 이미 잘못을 저질렀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재회

 

“너의 굶주림을 위로하기 위해 온 우주가 너를 위해 움직였단다” (46화)

 

거문성(사슴의 전생)은 탐랑성(선녀의 전생)을 연모하면서 동시에 질투했다. 탐랑성은 자기에게 없는,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거문성은 파군성(나무꾼의 전생)에게 모질었다. 자신을 동정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했기 때문이다. 정이현(사슴의 환생) 역시 김금(나무꾼의 환생)에게 자주 쏘아붙였다. “넌 왜 항상 당하고만 사냐? 맞으면 때리고, 억울하면 화내고, 그렇게 살아야지.” 라면서.

 

이지의 기억을 되찾은 정이현은 계룡산을 불태운다. 선옥남과 기억을 되찾은 파군성, 김금이 와서 설득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때 북두성군의 동생 남두성군이 나타나 정이현을 과거로 데려간다. 과거의 장면에서 한 추녀가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달려간다. 추녀는 도토리죽을 든 채 죽었고 파군성으로 환생했다. 파군성이 언제나 자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정이현은 증오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 멈추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계룡산에 비가 내리고 선옥남은 물의 힘을 뿌리며, 파군성이 바람으로 비를 퍼뜨렸다. 이지가 내뿜은 불길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거문성 이지는 복수에 집착하면서도 복수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김금은 한 번 더 정이현에게 달려가 그를 안았고, 선옥남은 그 둘을 함께 끌어안았다. 복수심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정이현을 위로해주는 동료들은 사실 곁에 있었다. 김금은 홀로 있는 정이현에게 늘 말을 걸고 찾아와 주었으며, 선옥남이 만든 커피는 정이현의 불면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눈앞에 놓인 인연을 알아보지 못하면 둘러둘러 갈 수밖에 없다. 이지는 먼 길을 돌아 자신의 인연과 재회했다.

 

#의지

 

“네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위로서가 아니라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가거라” (48화)

 

선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단순히 환생한 남편만은 아니었다. 잘못된 길을 선택한 친구를 되찾은 것, 친구들과의 갈등에 직면하고 해결해내는 모든 과정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 과정이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선녀 선옥남의 의지가 잃어버린 인연의 제자리를 찾아놓았다.

 

어쩔 수 없는 일과 고칠 수 있는 일을 구별하는 방법은 명확하지 않다. 방법을 찾다가 좌절할 수도 있고, 쉬운 선택을 해버릴 수도 있다. 그때그때마다 요령껏 헤쳐나갈 수밖에 없겠지만 나의 의지가 길잡이가 되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계룡선녀전』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것, 그 한계가 서로를 찢어놓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만의 의지를 다지는 순간 다시 만날 수 있는 때가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위가 아니라 의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선녀는 계룡산 어디쯤에서 커피를 볶고 있다고 한다.

 

※필자 소개: 노창석. “유니브페미 활동가. 책을 만들고 글을 씁니다. 소하연이라는 이름으로는 시를 씁니다.”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기획으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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