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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보도에서 강조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下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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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헌장 제50조에 따르면,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에선 그 어떤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혹은 인종적 선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올림픽의 메시지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제 그 조항이 필요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에게도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 올림픽 헌장 제50조는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어떤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메시지도 허용하지 않지만, 이제 그 조항은 도전을 받고 있다. 그 누구보다, 선수들이 변화하고 있다. (출처: pixabay)

 

그런 의견에 따라,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여전히 메달 수여식에서는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게 불가하다는 제한은 있지만,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나 기자 회견 등에서는 정치적 의사를 밝히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독일 여성 필드 하키팀 주장인 니케 로렌츠(Nike Lorenz)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요청한 ‘경기 중 무지개 양말과 무지개 밴드를 착용하는 것’이 허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들은 올림픽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큰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 관해 기사를 쏟아내는 국내 언론들에서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보도가 많지 않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 도쿄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밴드나 양말 등에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출처: pixabay)


경기 전, 여자축구 선수들이 한 쪽 무릎을 꿇은 이유

 

지난 7월 21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여자축구 조별리그 G조 1차전 시작 전, 스웨덴과 미국 선수들은 모두 한 쪽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대전이었던 영국과 칠레의 경기 전에도 양측 선수들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호주와 대결을 펼친 뉴질랜드 선수들도 경기 전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이 선수들이 한 쪽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준 건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2016년 9월 1일, 미국 프로 풋볼 선수인 콜린 캐퍼닉이 경기 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기립하지 않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은 것(take-a-knee)에서 시작된 이 시위 행위는 미국 내 계속되어 온 인종차별 문제, 특히 흑인을 대상으로 한 경찰들의 과잉 폭력 진압 사건에 항의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많은 운동 선수들이 이 행동에 동참했다.

 

원래라면 올림픽에서 이런 행동이 금지되고 징계의 대상이 되지만, 이번에는 규정이 완화되어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번 한 쪽 무릎 꿇기에 동참한 영국 여자축구 선수팀 주장 스테프 호턴은 “여성 축구 선수 팀으로서, 모든 형태의 차별에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와의 연대 위한 핑크 마스크

 

펜싱 에페 남자 단체전에 미국팀이 참가하던 7월 30일엔 핑크 마스크가 등장했다. 이 핑크 마스크는 성폭력 피해생존자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4명의 선수 모두 핑크 마스크를 쓴 게 아니라 3명이 핑크 마스크를, 나머지 한 명은 검정 마스크를 썼다는 점이다.

 

혼자 검정 마스크를 쓴 선수는 앨런 하지치로, 그는 동료 여성 선수들에게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한 일로 고발당했다. 그의 성범죄를 폭로한 선수는 한 명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대학 시절에도 유사한 일로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앨런 하지치가 대표팀에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다른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동료 선수들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도쿄에 왔다. 대표팀 선발 권한이 있는 미국펜싱협회는, 앨런 하지치를 여성 선수들과 떨어뜨려 놓고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머물게 하지 않겠다, 연습 때도 여성 선수들 근처에 못 가게 하겠다는 등 ‘안전 계획’을 세웠다는 핑계를 댔다. (참고 기사: “Protected Again And Again”: How A Fencer Made It To The Tokyo Olympics Despite Sexual Assault Allegations, BuzzFeed News, 2021년 7월 23일자)

 

▲ 2016년 리우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기도 한 미국 여자 펜싱 선수 이브티하즈 무하마드(Ibtihaj Muhammad)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핑크 마스크가 성폭력 피해생존자와의 연대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핑크 마스크를 쓴 남성 펜싱 선수들을 응원했다. (출처: 이브티하즈 무하마드 트위터)

 

이에 분노한 선수들이 자신들의 뜻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지지하는 핑크를 선택한 것이다. 동료들에게 동료로서 인정받지 못한 앨런 하지치는 결국 경기를 뛰지도 못했다.

 

이 사태는 ‘백인 남성(과 그들의 잘못)’에게 무한히 관대한 스포츠계의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을 뿐 아니라, 차별에 대항하는 정치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IOC의 징계를 받고 선수 경력이 끊기거나 그에 버금가는 어려움을 겪었던 비백인(특히 흑인) 선수들과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했다.

 

‘정치적 표현 금지’ 관행에 도전하는 선수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8월 1일, 여전히 IOC가 금지하고 있는 시상대 위에서도 정치적 표현이 나왔다. 미국의 육상 여자 포환던지기 선수 레이븐 손더스가 은메달을 받고 난 후 시상대 위에서 자신의 머리 위로 손으로 큰 엑스(X)를 그리는 시위 행동을 한 것이다.

 

레이븐 손더스는 “이 엑스는 억압 받는 모든 사람이 만나는 교차점을 의미”한다고 밝히며, “나의 흑인 동료들, LGBTQ 커뮤니티 동료들을 위한 것이며, 또한 이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레이븐 손더스는 커밍아웃한 여성 동성애자이며,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우울증과도 싸워 온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 미국 여자 포환던지기 선수 레이븐 손더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메달을 뺏으려면 뺏어봐라, 난 어느 경계도 뛰어넘는 사람”이라며 먼저 IOC에 선전포고(?!)를 했다. (출처: 레이븐 손더스의 트위터)


레이븐 손더스 선수의 이런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국내 언론들도 내용을 보도했지만, IOC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거나 “메탈을 박탈 당할 위기에 놓였다”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사회의 차별과 낙인에 저항하고자 한 레이븐 손더스의 용기가 아닐까? 더 나아가 IOC가 오래된 관행으로 유지하고 있는 올림픽 헌장 제50조를 폐지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선수들의 열망에 보답하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뜨거운 승리의 순간들만큼이나 뜨거운 목소리가 담긴 선수들의 메시지가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올림픽 그리고 올림픽 보도에도 더 큰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길 바란다. (박주연 기자) 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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