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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④

 

※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떠오른 독일 녹색당에 관한 정보를, 독일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녹색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 중인 김인건, 박상준, 손어진 세 필자가 들려준다. [편집자 주]

 

의석 수 과반이 ‘여성’인 독일 녹색당의 지역 모임에서는…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게 된 야나입니다. 오늘은 ‘극우 정당의 반-페미니즘과 주요 전략’에 대한 짧은 발표를 듣고, 질의 응답 시간을 갖겠어요. 첫 질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짝수 번째 질문 순서는 여성 당원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할 때,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해당하는 여성, 남성, 그 외 성별을 나타내는) 인칭 대명사를 얘기해주면 고맙겠어요.”

 

독일 녹색당 모임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한 멘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 모임 참석자 중에는 여전히 남성이 더 많고, 발언도 남성이 더 자주 더 길게 한다. 독일의 모든 정당에서 여성 당원의 비율이 남성보다 적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각 정당의 여성 비율은 녹색당 41%, 사민당 33%, 기민/기사당 연합 24%, 자민당 22%, 좌파당 21%, 독일을위한대안당 18%이다.

 



▲ 2017-2021까지 독일 의회에 진출한 녹색당 일부 연방의원들. 현재 67명의 연방의원 중 39명이 여성으로 과반을 차지한다. 출처: 녹색당 홈페이지


녹색당 지역구 모임에서는 당의 강령에 따라 대표진, 연방/주 대의원, 구/시/연방의원 등 대의 기구에 여성을 50% 이상 할당하게 하는 ‘여성 할당제’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구 내부 규약에 따라 어떤 선거에서는 여성 할당을 더 높이는 경우도 있다. 가령 베를린 샬로텐부르크 녹색당 지역구 모임은 연방 녹색당 대의원 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대표인단 7인을 선출할 때, 4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을 뽑는다고 미리 결정하고 후보를 받는다.

 

이처럼 여성 당원들의 참여와 발언 기회를 높이려 노력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성별 불평등이 존재하는 독일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2021년 1월 기준, 연방의회 총 709석 중 68.6%가 남성(486명)이며, 여성 의원은 31.4%(223명)에 불과하다. 정당 별로 보면 녹색당과 좌파당만 각각 58.2%와 53.6%로 여성 의원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사민당이 41.8%, 자민당이 23.8%, 메르켈 총리를 배출한 기민/기사당 연합은 20%가 안되고,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은 겨우 10.9%만이 여성 의원이다.

 

1986년 여성 할당제 시작, 다른 정당들에게도 영향

 

창당 당시 녹색당은 정관에 당직과 공직 후보 선출 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동일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포함시켰다. 하지만 의무는 아니었다. 1980년 창당 때부터 1985년까지 녹색당 전국당 운영진의 여성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1983년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녹색당의 여성 의원 비율은 35%(10명)였다. 남성 의원이 18명으로 여성보다 많았지만, 녹색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의 여성 의원 비율이 10%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였다.

 

녹색당의 최초 원내 대표단은 여성 의원 4명과 남성 의원 2명으로 구성되었고, 1984년부터 1985년까지 활동한 두 번째 원내대표단은 6명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었다.

 

1986년 녹색당은 정당 최초로 ‘최소 동석제’(Mindestparität, 정당 내 주요 직책 및 선거인 명단에 최소 50%를 여성으로 채울 것)을 도입한다. 1987년 연방선거에서 42석을 획득한 녹색당은 이 중 25명이 여성으로 과반을 넘었다.(56.8%) 덕분에 전체 연방의회 내 여성 의원 비율이 15.4%로 증가했다.(전체 519석 중 80명)

 

▲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내각의 기민련 소속 장관들. 메르켈은 1991년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BMFSFJ) 장관을 역임했다. 메르켈 내각에서 국방부 장관을 하다 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된 우어술라 폰데어라리엔(Ursula von der Leyen)도 2005년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이들은 여성 할당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당내 50% 할당제를 도입하자고 목소리 내고 있다. 사진 작가: Laurence Chaperon


이후 1990년 연방선거 전에 사민당은 33% 여성할당제를 도입했고(1988년), 좌파당(당시 민주사회당 PDS)은 50% 할당제를 도입했다. 1994년에는 사민당이 40%로 여성 할당제 비율을 높이고, 마침내 기민당까지 30% 여성 정족제(Frauenquorum)를 도입하면서(구속력이 있지 않음) 오늘날에 이르러 전체 연방의원 중 여성의 비율이 30% 이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기업 임원 대다수가 남성인 현실이 바로 ‘위헌’

 

2019년 1월과 7월에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와 튀링겐 주의회에서 녹색당은 사민당과 좌파당과 함께 의회를 여성과 남성 동수로 구성하는 동수제(Paritätsgesetz)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 법이 시행되면 주 의회 선거에서 각 정당은 성비 동일하게 후보자를 배출해야 한다. 그에 따라 여성과 남성 각각의 선거 후보자 목록을 통해 동일한 수가 선출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극우 정당들에서 위헌 소송을 제기해 2020년 7월과 10월 튀링겐 헌법재판소와 브란덴부르크 헌법재판소는 주의회의 결정이 위헌(특정 후보가 배제될 수 있고, 성별 비율이 불균형한 정당은 후보 등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 유권자의 자유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등을 이유로)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브란덴부르크과 튀링겐 주 기민당의 경우 해당 법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지만, 메르켈 총리와 크람프-카렌바우어(Annegret Kramp-Karrenbauer) 등 기민당의 주요 여성 정치인들은 다른 입장이다. 이들은 당내 주요 공직자 및 후보자 중 여성 비율을 2025년까지 50%로 늘리자(2021년까지 30%, 2023년까지 40%)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하지만 당내 반발로 쉽게 결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2001년 독일 재계는 여성에게 더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경영진 내 여성 비율을 높이는 협약을 자발적으로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2010년 독일 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대 독일 기업 내 감독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10%이고 대기업의 최고 경영진 중 여성 비율은 6%에 불과했다. 2010년, 상장기업 여성 할당제 의무화를 이야기하는 레나테 퀴나스트 당시 녹색당 원내대표의 모습. 사진 출처: dapd


녹색당은 정당과 의회 내 여성 할당제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깨뜨리기 위해 ‘기업 내 여성 할당제’를 주장하고 있다. 2020년 11월 기민당과 사민당의 독일 정부는 3명 이상의 이사회를 가진 상장 기업(직원 2천명 이상)의 경우, 반드시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포함하도록 의무화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현재 여성 임원 비율은 7.6%밖에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 지분이 절반이 넘는 기업의 감사회에 여성을 30% 포함하기로 결정했으며, 공공기관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사실 구속력 있는 여성임원 할당제는 2007년부터 녹색당이 주장해온 것이다.(2002년 노르웨이는 세계 최초로 여성임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현재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40%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당시 녹색당 원내 대표였던 레나테 퀴나스트(Renate Künast)는 독일 200대 기업의 관리 감독 임원의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것에 주목하며(200개 회사의 이사 833명 중 여성은 21명), 이것이 바로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녹색당은 상장 기업 이사회에 30% 여성 할당제 의무와 정부 지분 기업의 감사회에 40% 여성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은 녹색당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여성이 어쩔 수 없이 가사와 육아와 같은 무급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유치원(및 교사), 돌봄 서비스, 아빠의 육아휴직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독일 사회의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보다 가사와 육아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유급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적게 하며, 낮은 임금과 낮은 연금과 노후 보장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 2020년 기준 독일 내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는 19%로 유럽 주요 34개국 중 4번째로 높은 수준(EU 평균 14%)인데, 여성과 남성의 시간 당 급여는 약 5유로, 월 급여는 약 2000유로(한화 약 27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독일통계청) 여성과 남성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8시간 이상 차이가 나고(2019년 기준, 여성 30.5시간, 남성 38.8시간), 남성이 여성보다 풀타임으로 노동하는 비율이 높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둔 일하는 부모들 중 남성의 경우 93.6%가 풀타임으로 일하는 반면, 여성은 겨우 33.8%만 풀타임 노동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출처: 뮬하임(Mülheim) 녹색당 홈페이지

 

유럽 성평등 연구소는 노동, 재산, 교육, 시간, 권력, 건강 등 6가지 범주를 기준(추가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도 포함됨)으로 매년 성평등 지수를 발표하는데, 2020년 독일은 67.5로 EU 평균(67.9)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유럽 성평등 연구소 2021)

 

독일 여성은 남성보다 가사와 육아, 친인척 부양, 자원 봉사 등과 같은 무임금 돌봄 노동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다. 돌봄 노동의 성별 격차는 52.4%이고, 자녀가 있는 34세 여성의 경우 110.6%나 차이가 난다.(2019년 기준 여성 5.18시간, 남성 2.31시간) 이러한 격차는 전 생애에 거쳐 불평등한 결과를 야기한다. 여성과 남성의 전 생애 수입은 49% 차이가 나며, 연금은 53% 격차로 매우 큰 격차를 보인다.

 

“아내가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가 되면,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온전히 두 딸을 돌보겠다.”

 

2021년 9월 연방선거를 앞두고 아날레나 베어보크 공동 대표가 녹색당 총리후보로 결정된 이후, 베어보크의 남편이 발표한 내용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 총리가 탄생한다면,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여성 할당제를 비롯해 성평등과 여성 인권을 위해 중요한 법안들이 그 다음 도약을 할 수 있을까?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분석을 하고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베를린의 녹색정치와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필자 소개] 김인건. 대안학교에서 철학 교사를 하다가 독일로 유학,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적 평등을 주제로 석사를 마치고 여행가이드를 하며 통번역, 독일 소식을 한국 언론에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환경과 지속가능한 삶에 관심을 둔 사람들과 움벨트(Umwelt)라는 연구모임을 만들어 번역을 하고 글을 쓴다. 역사 속 사회의 변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이론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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