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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파업과 성희롱 집단소송>(中) 호텔롯데 법인을 고발하다

 

호텔 직원들이 수년간 일상적으로 당한 성희롱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특급호텔에서 벌어진 성희롱> 타이틀을 달고 보도됐다. 이 말이 덧붙여졌다. <사상 최대 성희롱 집단 소송>

 

2000년 7월, 롯데호텔 성희롱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노동부 진정과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간다. 노동부에 진정을 넣은 사람이 327명이다. 파업에 참가한 여성 조합원이 600여 명이었으니, 절반이 넘는 수였다. 이 중 270여 명은 집단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도 함께한다.

 

피해자들이 요구한 손해배상액은 총 17억6천만 원. 소송 대상에는 가해자 12명의 상사뿐 아니라, ㈜호텔롯데와 관리 책임이 있는 대표이사 4명도 포함됐다.

 

▲ 롯데호텔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노동부 고발과 손해배상 법정 소송에 들어간다. 당시 KBS 뉴스 영상 중 캡쳐. (출처: KBS)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는 언론

 

법정 소송을 지원하던 노조 활동가는 피해 사례가 너무 많아, 엑셀 파일로 진술을 정리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기억했다. 이토록 많은 사건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호텔 안에서 ‘문제’로 여겨진 적 없었다.

 

롯데호텔 측은 알려진 바 없으니 ‘없던 사실’이라 했다. 경미한 사안을 노조가 부풀려 ‘회사 잡는’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음모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당시 회사의 주장에 맞서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박정자 씨는 이리 답했다.

 

“예전에도 성희롱이 상부에 보고된 적이 있어요. 피해자가 진짜 큰 마음 먹고 밝힌 경우인데, 가해자는 그대로 두고 피해자만 열악한 부서로 옮겨졌어요. 그런 경우가 발생하니까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죠.” -<롯데호텔은 성희롱 천국> 한겨레21, 2002년 8월 16일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이동시켰다. 의아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인터뷰를 진행한 언론인과 논객들은 다른 것을 궁금해했다.

 

“근데 회식 때 어쨌기에 그런 거죠?(웃을 때가 아닌데 모두 웃음)”

 

다른 질문도 비슷했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십시오.”

“임OO(가해자)의 사례는? 낱낱이.”

 

낱낱이 듣길 원했다. 여성들이 ‘말하기도’ 싫어 ‘없던 일’처럼 여겼다고 말한 사건을 반복해 물었다. 특정 언론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당시 많은 언론이 ‘어떤 성희롱을 받았는가’에 주목했다. ‘어떤’을 말하지 않고는 처벌과 대책을 언급할 수 없는 것처럼 굴었다. 끈덕지게 묻고 대답을 들은 후에는 가십 취급이었다. 당사자들이 말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270여 명의 집단소송, 책임회피는 끝났다

 

호텔 측에서 성희롱 사건이 드러난 까닭을 ‘파업’ 때문이라 한 것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일을 멈추는 파업이 아니었다면, 매일 마주치는 사람을, 그것도 상사를 고소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파업 이전에도 이미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리며 가해자와 분리를 요청한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회사는 사건을 알린 피해당사자를 ‘치웠다’. 그렇게 문제를 숨겼다. 하지만 2000년 호텔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 소송을 하자, 더는 숨길 수 없게 됐다. 27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소송 대상으로 ㈜호텔롯데 법인을 지목했다.

 



▲ 2002년 11월 26일, 서울지방법원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있어 ㈜호텔롯데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를 보도한 MBC 뉴스 영상 중 캡쳐. (출처: MBC 뉴스)


2년 후인 2002년 11월, 서울지방법원은 롯데호텔 측과 가해자들에게 총 2천7백만 원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행위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 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상 ... 회사가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이는 야유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 적절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인정된다.> -서울지방법원 2002년 11월 26일 선고 판결문 중

 

일부이긴 하지만, 직장 내 성희롱에 있어 회사의 책임을 법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닌 판결이었다. (법원은 임원이 주관한 회식에서 벌어진 성희롱은 회사 책임을 인정하나, 지배인이 주관한 회식엔 회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판단을 했다.)

 

노동부도 호텔롯데 법인에 법정 최고액인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 8조 위반에 따른 것이다. 법은 사용주가 직원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호텔은 1999년 법으로 의무화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 고발을 한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호텔은 예방과 관리는커녕 제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성희롱을 암묵적으로 묵인해왔다.

 

5년 후면 나갈 직원들

 

1990년대 들어와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며 ‘직장 여성’들도 늘었다. 이들의 직장은 ‘더 고분고분하고, 친절할’ 것이라 기대되는 성별을 고용하면서 조건을 붙였는데, 그것은 ‘미혼’이었다. 결혼하면 회사를 ‘나가야’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정규직일지라도 여성들은 5년 이상을 버티기 힘들었다. ‘임시직’ 성격을 벗을 수 없었다. (1999년, 여성 평균 근속년수는 4년이다.)

 

기업은 5년 뒤엔 ‘나갈’ 직원에게 비용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에 시간과 돈을 쓰려하지 않았다. 교육만이 아니다. 인사관리 방식, 작업시설, 비품 등 직장의 모든 기준은 ‘남성의 몸/감각’에 맞춰져 있는데(주방 싱크대가 여자 키에 맞춰져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 ‘돈 들여’ 변경하거나 고려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롯데호텔 집단 소송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러다가 ‘더 큰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기업명과 함께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가고 소송비용까지 들어간다.

 

“이 사건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거죠. 기업에서 1년에 한 번씩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했는데, 다들 할 생각이 없던 거잖아요. 롯데호텔 문제가 알려지면서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잡힌 거예요. 그때부터 노동조합(민주노총)에서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서로 확인하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거죠.” (임혜숙 당시 금속연맹 여성국장, 롯데호텔 성희롱대책위 활동가)

 

임신해도 나가지 않는 여자들

 

‘문제’가 되자 기업은 그제야 해결의 시늉이라도 보인다. ‘문제’가 수면에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입을 막으려 한다. 성희롱을 없던 일 치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사건’이 많아도 말하고 제기되지 않으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수년을 롯데호텔은, 아니 많은 기업과 일터는 여성들을 ‘물갈이’하며 문제가 없는 척 버텼다. 하지만 ‘나가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성희롱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지 파업 중이라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파업이 언젠간 끝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일터로 돌아가 가해 상사의 얼굴을 봐야 한다. 그럼에도 롯데호텔 여성 직원들이 집단 소송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가지 않고 버텨준 여성들 덕분이었다.

 

“큰애를 1998년에 낳았는데, 선배 언니들은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그만두는 거였어요. 근데 1995년 이후부터 약간 변화가 생겨서. 이제 결혼을 하거나 임신해도 계속 다니는 분위기? 그만둬라. 이러지는 않았던. 저희가 과도기였던 거 같아요. 아마 다른 사무직군들은 그 당시에도 결혼하면 나가야 했을 거예요.”

 

김금주 현 롯데면세점 노조 위원장은 당시 근무환경을 이리 기억한다. 오래 다닌 여자 선배들이 없었다.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세 가지 관문을 넘기가 힘들었다. 파업을 진압하러 온 경찰들마저 임신한 여성을 보고 “집에나 있지” 하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1990년대 중후반이 되자 ‘그만두지 않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났다. 출근을 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무엇이 이유건 버텼다.

 

아무리 입을 막아도 말하는 여성들이 있고, 아무리 내보내려 해도 나가지 않는 여성들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어느 직장이건, 임신해도 그만두지 않던 선배를 원망하다가 본인이 임신을 하면 저 선배가 ‘눈칫밥’ 먹으며 버텨준 덕에 자신도 다닐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거였어요. 임신하고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그런 것이, 나중에 보니.”(김금주)

 



▲ 이후에도,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노동자의 임신, 출산 권리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피해자는 “어린 계약직”이 다수

 

2000년 당시, 롯데호텔(과 면세점)에는 근속년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 직원들이 있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자, 이 ‘선배 그룹’들은 대책위를 만든다. 이들이 피해의 ‘정점’에 놓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성희롱 피해 진술서를 가득 채운 이는 오히려 나이가 어리고 근속이 짧은 계약직 직원들이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인사권은 가해자들의 강력한 무기였다.

 

“성희롱을 비롯한 대다수의 범죄는 호락호락한 상대를 대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이때 호락호락하다는 것은 개인의 취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 위치와 관계를 의미한다. 조직 내에서 인사권을 쥔 상사가 성희롱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계약직, 나이가 적은, 여성이 성희롱에 더 자주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건 구조의 문제다.

 

“남성 근무자가 다수일수록,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할수록, 작업속도가 빠르고, 저녁 근무가 많을수록,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일터일수록 성희롱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송민수)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도 분명하게 직업 환경의 문제이다.

 

“처음에 진술서를 받을 때 피해자들이 어린 계약직들로 나타났단 말이에요. 이거 터뜨려서 우리만 다 잘리는 거 아니냐는 두려움이 굉장히 많았어요. 모여서 회의를 했죠. 그래서 우리도 선배로서 함께 책임을 가지고 다 소송인으로 가자고 한 거죠. 이런 사업주와 간부를 이제까지 방치한 우리도 책임이 크니까요.”(박정자) -<롯데호텔은 성희롱 천국> 한겨레21, 2002년 8월 16일

 

단지 선배가 후배를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었다. 버티며 자기 자리를 힘겹게 유지한 여성들이 이제 ‘직업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것이다.

 

‘계약직 여성’들이 보이다

 

“파업 성과요? 내가 노동자라는 걸 알았다는 거? 그게 제일 큰 거 같아요.” (최미숙. 당시 롯데호텔 파업 참가자. 현 롯데면세점노조 회계감사)

 

이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이 ‘일하는 사람’ 즉 노동자임을 자각했다고 했다. 내가 ‘오래’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일터를 바꿔나갈 주체임을 깨달은 것이다.

 

자각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 본인만이 아니다.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는 관리자의 눈에도 ‘일하는 사람’을 보게 만든다.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도 서로를 보게 만든다. 롯데호텔 파업 3일차,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회사의 문제를 알리는 대자보로 썼던 날, 그렇게 모여 앉았을 때 정직원 여성들의 눈에도 ‘계약직 여성’들이 보였다. 그리고 함께하기로 했다.

 

롯데호텔 노조는 74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일터로 복귀하며 ‘3년 이상 계약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사측과 합의한다.(애초 노조의 요구는 2년 후 전환이었다.) 이후 4년 사이 약 400명의 계약직이 정규직원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下편에 이어집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

-송민수, <직장 내 성희롱은 왜 발생하는가? 그리고 피해자들은 어떤 어려움에 처하는가?>, 월간 노동리뷰, 2018년 3월호 

-<롯데호텔 파업 백서>, 민주노총, 2000

-정경은, <롯데호텔 비정규직 150명이 파업에 동참한 까닭>, 월간참여사회, 2000년 09월 외  관련 기사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싸우고 견뎌내고 살아가는 일을 기록한다.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등을 썼고 [회사가 사라졌다』(공저)를 출간했다.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의 전모를 밝힌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41234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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