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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④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 탐색하기

 

성적 행위를 하기 전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럼 뭐 계약서라도 쓰란 말이냐?’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동의를 구하거나 합의를 하는 것이 과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실제로 계약서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진행 중인 릴레이 토크쇼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에서 그 ‘도발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세번째 ‘응용’ 편 패널과 사회자들. 왼쪽 위 시계 방향으로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홍승은 작가, 희정 작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


9월의 마지막 날 저녁, 온라인으로 열린 행사엔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전문의,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가 사라졌다> 등을 쓴 희정 르포작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쓴 홍승은 작가 그리고 80여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릴레이 토크쇼 첫 번째 ‘관계’ 편(관련기사: 성관계에서 ‘합의’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https://ildaro.com/9069)과 두 번째 ‘주체’ 편(관련기사: 나의 섹스에 사회적 선입견과 통념이 관여하고 있다! https://ildaro.com/9109)에 이어 마지막 ‘응용’ 편이 진행되었다.

 

‘적극적 합의’를 논의하는 마지막 토크쇼답게, 성적 행위에서 적극적 합의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실천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성매개감염, BDSM, 폴리아모리를 주제로 놓고,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고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성적 행위와 관계 만들기를 위해 어떤 합의가 일어나는지 솔직한 이야기가 오갔다.

 

성관계 전, 성매개감염 검사지 교환은 ‘유난’인가요?

 

성적 행위에서 서로의 욕구를 반영하고, 존중하는 적극적 합의를 위해선 상대방과 섹스에 대한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는 건, 앞선 두 번의 릴레이 토크쇼에서 계속 강조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섹스 이야기’ 중 빠져선 안 되는 게 ‘성매개감염’과 관련된 것이다. 흔히 ‘성병’으로 통용되지만 그 단어가 가져오는 편견과 오해, 낙인을 피하고자 ‘성매개감염’(STI,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윤정원 전문의가 설명했다.

 

시대의 ‘동향’을 살피고 성교육을 위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종종 데이팅 어플에 들어간다는 윤정원 전문의는 “최근 2~3년 사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있다”고 했다. 데이팅 어플에 접속했을 때 보이는 프로필 사진과 정보에 성매개감염 검사지를 올려두거나, 가다실9(자궁경부암 백신)를 접종했다는 등의 정보를 기입해 두는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보들이 거짓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이렇게 상대방을 위하는 사람이고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이, (연애 시장에서) 가산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전히 성매개감염이 굉장히 금기시 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하지만 윤정원 전문의는 그런 흥미로움 속에서 “찝찝함도 발견했다”고 했다. “자신은 ‘깨끗하다’거나 ‘바이러스-프리(없음)’라는 표현들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성경험이 있는 사람 100 중 90명이 성매개감염을 경험할 만큼 흔한 일”이지만, 그런 현실이 드러나기보다 “성매개감염에 대한 낙인”이 더 강조되는 일이 많다.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세번째 ‘응용’ 편에서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의 발표 중. ‘성매개감염’(STI,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진단을 받았을 때


성매개감염에 대한 낙인이 강화되고 오해와 편견이 쌓이다 보면,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검사 자체도 꺼리게 된다. 검사를 받지 않으면 (무증상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성매개감염이 더 드러나지 않게 되고, 결국 그것이 더 많은 전파를 불러오기도 한다. 검사와 진단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져야 되는 건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다.

 

윤정원 전문의는 성매개감염 진단을 받으면 “놀라고, 당황하고, 충격 받고 또 분노스럽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내가 문란한 탓이라거나 죄를 지었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콘돔을 쓰고, 정기검진을 받는 등의 예방을 했는데도 걸릴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감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고 완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매개감염 진단이 나온 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며, “내가 내 몸을 타인과 친밀하게 공유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윤정원 전문의는 “진단 사실을 파트너/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트너가 없는 경우엔 “당분간 성적 활동을 안 하거나 자위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진단 사실을 알리고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적어도 섹스를 하기 전,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전. 그러니까 상대를 감염위험에 빠뜨리기 전”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상대방 또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정원 전문의는 특히 “술이나 약에 취하지 않았을 때, 전화나 문자 말고 대면으로,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장짜리 합의문이 과하다고요?

 

성적 행위에서의 ‘합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논의에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bdsm이다. ※BDSM이란 Bondage(구속, 속박) Discipline(지배, 징계) Sadism(가학) Masochism(피학)의 약자로, 당사자들이 합의하에 신체적인 통제나 가학-피학적 성적 행위를 하며 만족을 느낀다.

 

bdsm이라고 하면 ‘변태’라거나 ‘이상성욕자’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bdsm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있다면 bdsm이 다양한 합의를 거친 후 이뤄진다는 걸 파악할 수 있다. bdsm 성향자들을 만나 <일다>에 그들의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는(관련기사: <이상성욕자? 선량한 변태들의 목소리> 시리즈 https://ildaro.com/8337) 희정 작가는 bdsm의 이야기를 통해 “안전한 관계와 합의의 의미를 찾아가 보자”고 했다.

 

흔히 “‘일반적’인 성관계를 한다고 했을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주로 남성들이) “상대에게 묻는 말인 ‘좋았어?’”다. 희정 작가는 “사실 이럴 때 ‘별로였다’는 말을 하기 쉽지 않다”며 “상대가 상처 입을까 봐, 나와의 관계가 흐트러질까 봐,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될까 봐 등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거다. “‘별로였다’는 말을 들을 걸 걱정했다면, (행위가 끝난 후) ‘좋았어?’라고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게 좋아?’라고 물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희정 작가가 ‘좋았어?’라고 묻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참가자들의 온라인 채팅 창도 뜨거워졌다. 많이 겪어본 일이라는 듯 동의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정말 그걸 왜 묻냐’는 한탄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그만큼 성적 행위에서 ‘소통이나 대화 없음, 혹은 합의 없음’은 일상적이다.

 

희정 작가와 인터뷰를 한 여성 bdsm 성향자 또한 “남성들하고 ‘일반적’인 연애를 했을 때가 (bdsm 플레이보다) 더 위험했다”고 했다. 상대 남성이 “‘해도 되지?’ 묻지 않고, 일단 눕히는” 식의 행위를 했지만, “이 때 싫다고 하면 ‘날 사랑하지 않니?’ 이럴 것 같아서…” 싫다는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세번째 ‘응용’ 편에서 희정 작가의 발표 중

 

그렇다면 bdsm은 무엇이 다른가? 플레이를 하기 위해선 “일단 내가 이걸 좋아하고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난 ‘여길 때려주는 게 좋아. 이게 나의 쾌락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고, 그걸 정확히 상대에게 전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통이나 아픔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계속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정확히 말해야” 하는 거다. 그래야 “협상을 할 수 있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어떤 행위를, 어떤 수위에서, 그리고 언제까지 할 것인지. ‘행위 중지’를 선언하는 세이프워드(safe word)도 정하는” 합의를 해야 하다 보니, 어떤 이는 합의할 내용이 담긴 21장짜리 계약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희정 작가는 중요하게 봐야 하는 건 “합의 내용이 이렇게 방대하고 많다는 점”이라기보다 “이 합의에 동의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긴 시간에 거쳐 상대와 대화를 해야 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bdsm의 합의 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적극적 합의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며 “단지 의사소통의 스킬이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계,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독점하지 않는 관계’의 연애 계약이란?

 

보통 ‘다자연애’라고 인식되는 폴리아모리(polyamory)에 대해 ‘합의된 비독점 관계’라고 설명한 홍승은 작가는 ‘정상연애’라 일컬어지는 독점 연애에서 “언제 연애의 룰이 합의된 적 있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저 독점 연애를 하고, 이성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가지는 ‘이상적인 상’을 강조할 뿐 독점적 연애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행위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승은 작가는 “(독점적) 연애 계약서가 있다면 거기엔 제1조 배타적 성기 독점권, 제2조 모든 관계의 우선권, 제3조 연락 빈도와 행동 통제권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독점성 안에 내포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정말 서로 합의해서 진행하는 거라면 상관 없지만, 내가 선택한 적 없는 통제나 감시, 단속이 ‘사랑의 증거’로 쓰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세번째 ‘응용’ 편에서 홍승은 작가의 발표 중


그런 문제 의식을 가졌던 이들이 “사랑의 혁명, 사적인 혁명”으로서 폴리아모리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폴리아모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 홍승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여전히 고민 중인 합의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3명의 파트너와 관계를 맺고 있는 홍승은 작가는 각각 파트너와의 관계가 다 다르며, 그에 따라 합의하고 있는 부분도 다르다고 했다. 또한 그 합의의 내용 또한 고정적이지 않고 갱신이나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합의가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소통 안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관계의 유동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게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비독점 관계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질투나 소유의 감정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신뢰를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폴리아모리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랑과 연애라는 게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책임과 돌봄이라는 노동이 필요하기에, 그 부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꼭 폴리아모리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이런 고민과 실천, 노력은 독점 연애관계, 혹은 다른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홍승은 작가는 “사실 우리 모두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사랑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 관계에서도 협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관계들 또한 “‘연애’라는 이름으로만 한정 짓지 않으려고 공부하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홍승은 작가는 “함께 해방될 수 없다면, 내 자유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다음의 질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는 누구와, 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까? 그 관계는 평등할까? 평등하지 않다면 어떤 노력이 서로 필요할까? 그리고 그게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린 어떤 사회적 의제로 이야기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 ‘독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계속 안고 살아갈 생각이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좀 흔들리더라도 함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일다] 박주연 기자 ildaro.com

 

*영어보다 성교육!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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