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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하는 기후위기>③ 기후위기X여성청년

 

지난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여성X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행사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5명의 여성들이 강의한 내용을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일다 - https://ildaro.com/9180

 

▲ 이경은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은 충남 금산에서 살면서, 농촌에서 새로운 가능성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제공)

 

“청년 여성에게 농촌은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해 보려 한다. 그 전에 대안적 공간이 무엇인가? 묻게 된다. 대안적 공간이 있다는 건, 원안적 공간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원안적인 공간은 어디인가? 한국 인구의 91.8%가 살고 있는 도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표한 ‘2020년 도시계획현황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6.7%에 불과한 도시 지역에 대다수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다.) 청년층으로 가면 이 수치는 더 높고, 특히 청년 여성에게서는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면 대안적 공간으로서 농촌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선택하지 않을까? 당연히 원안이 더 좋기 때문이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보기에 도시가 더 좋다. 인프라, 일자리, 문화, 커뮤니티 모두 도시가 농촌보다 더 잘 갖추어져 있다.

 

농촌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의 농업 정책이 사람들의 탈농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등을 통해 주식인 쌀 시장이 개방되며, 소농 위주의 한국 농업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대규모의 이농을 유도하는 한편 농업을 규모화, 전업화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농촌을 많이 떠날수록 도시는 노동자를 확보하고, 농업은 규모화되며 생산성이 커진다고 판단했다. 농촌의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도록 이것이 문제시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지방 소멸’이라는 말과 함께 지방 소도시들이 사라져간다는 위기감이 퍼졌고, 농촌이 소멸하면 도시도 공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농촌의 인구가 문제로 떠올랐다. 농촌이 특히 청년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며, 농촌에 대한 담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도시의 청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모든 인프라가 도시, 특히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에 그동안 청년들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고, 집값도 엄청나게 비싼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주거 환경에 살면서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사람들 틈에 밀려가다 ‘정말 여기밖에 살 곳이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던 청년들에게 농촌은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농촌의 폐쇄적 관계망 속 청년 여성의 위치

 

그래서 농촌에 살면 무엇이 달라질까? 우선 주거 환경은 농촌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집값이 이유라면 농촌까지 올 필요는 없다. 중소도시라는 선택지도 있기 때문이다.

 

농촌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가 좁다는 것이다. 물론 헬스장에서도 내가 가는 미용실 사장님과 마주치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을 슈퍼에서 만나게 되는 일도 흔하지만, 그보다 농촌에서 지내게 되면 훨씬 촘촘하게 구성된 관계망을 마주치게 된다.

 



▲ 이경은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이 9월 15일 열린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모습. (여성환경연대 제공)

 

지역 사람과 외지인이 철저하게 구분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개 안 되는 초중고등학교 인맥을 뒤져보면 누가 누구의 집 자식이고 평판은 어떤지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사를 가려고 해도 집주인이 지역 사람이면 주변의 누군가는 알게 된다. 이렇게 촘촘한 관계망이 농촌에서의 청년의 삶을 가능하게도 하고 불가능하게도 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관계망이 워낙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바로 이 특징이 청년 여성의 침투를 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왜냐면 지역 사회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관계망의 구조에 대해 환멸과 실망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농촌 지역에서 만난 청년들, 여성들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농촌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 굉장한 실망과 함께 무기력의 정서가 팽배했다.

 

농촌의 남성 사회는 학창 시절과 가업을 승계한 농업이라는 경험 세계를 공유하면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자원을 독점하고, 토착적인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촘촘한 관계망으로 인해 농촌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아주 표면적인 현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보게 되면, ‘별 수 없구나’하고 사회적으로 체념과 무기력의 정서가 형성된다. 청년 여성이 침투할 수 있는 곳은 이 남성중심적인 농촌의 중심 세력이 아니라 관계망의 외곽이다. 이곳에는 대안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촌의 관계망을 비집고 틈새 만들기

 

하지만 개인이 침투한다고 해서 농촌 사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집단을 구성하고 새로운 레이어, 층위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층위는 중심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어야 하고, 또한 중심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 농촌으로 이주한 청년들은 이 층위를 중심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구성했다. 결국 이렇게 형성된 커뮤니티는 지역에서 자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속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들과 지역사회는 서로 만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정책의 결과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된 농촌에서, 청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정책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책이란 것은 하나의 기조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어서, 소외되고 착취된 공간인 농촌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원사업은 농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또 그에 대한 반성도 일어나고 새로운 주체를 찾는 움직임도 있다. 이것이 농촌에 청년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올해 초에 진행한 ‘모여라, 금산’ 시즌1 참가자들이 마을경관가꾸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제공)

 

일례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협동조합을 구성해서 행사 기획, 공간 운영, 상품 개발 등을 한다. 이들의 활동은 처음에는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역 사람들은 이들을 놀고먹는 애들이라고 보거나,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철없는 이들로 보았다. 이들의 활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농촌의 문화 활동을 촉진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과 결합하면서부터다.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등을 지원하는 조직들이 농촌 주민들의 활동의 조직화를 촉진하면서, 이미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소득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모범적인 사례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때로 지역에서 행사나 공간 기획 등을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청년 그룹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여성주의적인 기조를 명확히 하면서 지역의 정책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젠더 정책에 대한 주민참여기구인 젠더 거버넌스에는 청년들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성과를 내고 또 우수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이 틈새가 넓어지고 청년들이 형성하는 층위가 넓어지면, 무기력한 농촌 사회에도 이를 지지하는 청년들의 층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농촌은 청년 여성에게도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진행 중인 과정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변화이다. 그래서 청년 여성이 농촌에서 살기로 한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성의 세계에서 살기로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 도시보다 여러모로 살기 어려운 농촌이지만, 어떤 이들은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농촌으로 모여든다.

 

농촌에서 가능성을 탐색하는 사람들

 

지속가능성이 낮은 사회가 되어버린 농촌, 변화를 간절히 필요로 하지만 변화로부터 멀리 있는 사회인 농촌은 기후위기가 닥친 이 세계에서도 가장 먼저 무너지기 시작하는 곳이다. 만약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농촌은 20년 뒤에는 상당량의 생활 기능이 망가진 텅 빈 사회가 될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농촌 공간은 도시의 쓰레기를 버리고, 각종 위험한 것들을 생산하고 운반하는 그런 지역, 공간으로 속절없이 더 빠르게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농촌 사회는 절망에 가까운 무력감 속에서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

 

그래서 농촌은 어떤 가능성이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농촌 사회에서 청년이 형성하는 층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무너지는 미래 앞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변화를 향해서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이 형성하는 층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이들이 탐색하는 가능성이 지역사회의 설득력을 얻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농촌이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내가 제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시대가 마주한 이 변화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공간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농촌에서 살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었다.

 

현실의 불편함과 불안을 마주하면서도, 상상력과 실천 속에서 힘을 갖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농촌에 모여들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농촌에서 청년 여성이 구성하는 층위는 두터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두터운 층위가 형성되고 또 지역사회와 관계망이 형성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가능성의 세계는 현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이경은.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 ‘서울의 경계’라는 이름처럼,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그 경계를 적극적으로 넘으며 살아오고 있다. 여성주의 활동과 농촌 활동을 번갈아 가며 해 왔다. 언젠가는 이 활동들이 겹쳐지고 수렴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다 - https://ildaro.com/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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