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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관점에서 돌아본 아프가니스탄 20년, 그리고 현재

 

올해 4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이 정식 철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탈레반이 각지에서 침공을 추진, 8월 15일에 아프간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여성들의 인권이 1990년대 수준으로, 혹은 그 이상 악화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운동가들과 연대하며 현지 상황을 전해온 일본의 기요스에 아이사 무로란공업대학 대학원 교수는 아프간의 지난 20년을 젠더 관점에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 2017년 9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필자 기요스에 아이사 무로란공업대학 대학원 교수. RAWA와 연대하는 모임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기요스에 아이사 교수는 탈레반에 맞서 싸워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단체 ‘아프가니스탄 여성혁명연합(RAWA)’과 연대하는 모임을 꾸렸고, 『평화와 젠더 정의를 요구하며-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의 등불을』(고분샤, 2019)과 『펜과 재봉틀과 바이올린-아프간 난민의 저항과 민주화로 가는 길』(주로샤, 2020) 등의 저서를 펴냈다. 다음은 기요스에 아이사 교수의 글 전문이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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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만’ 때리면 되는가?

 

2001년 10월 초순, 미군과 영국군 등은 21세기 ‘대 테러 전쟁’을 선포하며 최초의 대규모 군사행동으로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시작했다. 미국은 자국에서 일어난 9.11 동시다발테러의 범인을 알 카에다로 단정하고, 구 탈레반 정권이 알 카에다를 은닉하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을 ‘보복’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은 ‘테러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미군에 대한 급유를 목적으로 인도양에 해상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으로 이 공격에 가담했다. 한국도 미군의 요청을 받아 수송 및 의료지원을 목적으로 아프간에 파병했다.

 

미국은 공격을 개시한 시점부터 탈레반 정권이 억압하고 있는 여성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대 테러 전쟁’의 목표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군사행동을 한층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탈레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온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단체 ‘아프간 여성혁명연합(RAWA)’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시작하는 전쟁을 막아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전쟁은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낼 것이며, 아프간 역사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외국의 침략과 개입이 결국 탈레반과 같은 근본주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지적은 적중하여 당시 미-영군의 침공으로 수많은 아프간 여성이 죽거나 다쳤고,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20년 후인 올해 미군 철수와 함께 빠른 속도로 탈레반이 수도를 비롯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할 수 있을 만큼 근본주의 세력은 저변에 확대되었고 힘을 키워왔다.

 

▲ 2013년 5월 파키스탄 라호르핀디에 있는, 아프간여성혁명연합 RAWA가 운영하는 헤와드고등학교 수업 풍경. 학생들은 모두 아프간 난민이다.  ©기요스에 아이사

 

이 공격 이전의(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은 국제사회에서 거의 잊힌 존재였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싶다. 9.11 충격 등으로 인해 아프간은 갑자기 국제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2003년 봄 이라크전쟁이 시작될 때까지의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 후에는?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아프간의 ‘복구지원’에 거액의 돈을 쏟아부었지만, 그 사실을 포함해서 시간의 경과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은 사람들의 의식에서 다시 사라져갔다.

 

잊힌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를 다시 한번 소환한 것이 올 8월 15일 탈레반에 의한 카불 함락 소식과, 철수하는 미군과 함께 필사적으로 출국을 시도하는 수많은 아프간 사람들이 쇄도한 카불공항의 모습이다.

 

세계 주류 언론들이 ‘여성의 인권’과 연관지어 탈레반을 보도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시기이다. 그러한 보도를 지켜보면서 20년 전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주장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국제사회가 ‘탈레반을 때리기 위해’ 여성의 인권을 다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자유 박탈을 포함하여, 젠더에 기반한 폭력의 요인과 구조를 비가시화시킬 수 있다. 또한 2001년의 군사 공격과 이후 복구지원 하에서도 계속된 미군 등에 의한 군사행동에 대한 검증과 자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역시 우려되었다.

 

외부의 적으로 인한 보수화, 근본주의 세력 키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젠더에 기반한 폭력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구 탈레반 정권하의 가혹한 여성억압 정책들-대표적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과 취업을 대대적으로 제한한 것-만이 요인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회 근저에 가부장적 사회규범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적 젠더관은 탈레반과 다른 이슬람 제 세력(1979년부터 10년간 계속된 구 소련 대항운동의 중심을 담당하고 소련군 철수 후에는 격렬한 내전을 일으킨 세력), 또 이들 세력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 2015년 9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여성의 문해·직업훈련을 하고 있는 여성단체의 수업 모습.  ©기요스에 아이사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때그때의 위정자 하에서, 혹은 내전 시대의 상이한 세력의 충돌 속에서, 외국군(1979년 구 소련군와 2001년 미군 등)의 군사 침공 시마다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더해졌다. 취약한 위치에 높인 다른 사회적 소수자-대표적으로 하자르 같은 소수민족이나 힌두교도 같은 비무슬림 아프간인 등-도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

 

무엇보다 가부장적 사회규범이 외국군의 군사 침공과 주둔에 의해 강화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깥에서 무기를 든 군대가 찾아오면, 내부 커뮤니티와 거기에 사는 가족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보수화된다. 그 방식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불어 아프간에서 외국군에 의해 자행된 군사행동이 탈레반의 탄생, 그리고 탈레반의 부활로 연결되는 토대를 형성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프간 여성들이 또다시 잊혀지지 않도록

 

2001년의 군사 공격에 의해 구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후, 국제사회는 오랜 전란으로 황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 복구지원을 명목으로 신정권 수립을 부채질했다. 임시정부 지도자로 선출된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부터 아슈라프 가니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는 교육과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액의 지원금을 아프간에 투입해왔다. 그것은 심각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일부 여성들-도심부와 지방/시골에서 여성들의 권리는 편차가 크다-이 제한된 것이나마 자유를 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년간의 변화를 법적으로 살펴보자면, 아프간은 여성차별철폐조약에 비준(2003년)했고, 법 아래서의 성평등한 권리를 명기한 헌법(2004년)을 제정했고,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법(2009년) 제정도 이루어졌다. 또 이들 법을 추진하는 다수의 여성단체가 설립되었다.

 

▲ 2015년 9월 카불에서 문해·직업훈련을 하는 여성단체 사무실에서. 넓은 복도를 활용한 임산부용 건강워크숍 모습이다.   ©기요스에 아이사

 

다만, 아프가니스탄에는 RAWA 같이 40년 이상에 걸쳐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며 싸워온 단체도 있으며, 탈레반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RAWA를 포함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탈레반의 재집권에 저항하는 싸움에 착수했고, 국제사회를 향해 관심과 연대의 손을 내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 20년의 변화는, 제도적으로 본다면 젠더평등 정책이 현격하게 진전된 듯 보인다. 실제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아프간 여성들은 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여왔다. 하지만 그 내실이 어떠한가를 살펴본다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제도와 일상의 문화 간의 격차가 크고, 특히 인구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지방/시골은 변화가 더디다. 무엇보다 그 이유는 구 북부동맹(과거에 결성된 반-탈레반 네트워크)의 이슬람 제 세력 출신자들이 계속해서 정권의 중추를 맡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그러한 정권을 지원해왔다. 젠더 관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복구과정을 검증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하다.

 

동시에, 지금의 현실에 저항하기 시작한 아프간 여성들이 고립되는 일이 없도록, 또다시 아프간의 여성들을 비롯한 억압받는 이들이 국제사회에서 잊히지 않도록,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투쟁에 끈기 있게 동행하는 활동을 벌이기를 요청한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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