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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돌봄을 감당하는 이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논의 장 열려
지난 여름 알려진 청년 간병인 강도영 씨의 사건은 돌봄에 관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일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미래가 창창한’ 등의 말과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22살의 청년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죽음에 대해 법원은 강도영 씨에게 책임을 묻고,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아들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강도영 씨와 아버지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세상의 끄트머리까지 내몰렸던 내막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반전되었다. 이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목소리를 냈지만, 2심에서도 징역 4년형은 유지되었다.
법원은 강도영 씨에게 죄를 선고했지만,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강도영 씨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왜 홀로 떠맡아야 했을까? 그를 구제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일까? 제도가 있었는데도 이용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용하지 못하는 제도는 유용한 것인가?
▲ 12월 20일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병원비백만원연대’는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청년간병인 강도영,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는?>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병원비백만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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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병원비백만원연대’가 <청년간병인 강도영,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는?>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회에서 간병과 돌봄을 둘러싼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병원비백만원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된 토론은 유튜브(채널: 내만복)로 동시 생중계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그리고 월세, 통신비, 공과금…
강도영 씨 사건을 심층 취재하여 내막을 알린 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기자는 “병원비가 백 만원만 나왔어도 이런 비극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참고: 기획연재 -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셜록, 2021년 11월 1일)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은 강도영 씨가 21살이었을 때로 “당시 강도영 씨는 군 입대를 위해 대학을 휴학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이천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그 병원비는 삼촌이 지불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도영 씨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였고, 병원비는 점점 부담이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결국 강도영 씨는 “아버지의 생명에 이상이 생겨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약 7개월 동안의 병원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를 퇴원”시킨다. 그 7개월 동안, “월세 30만 원을 못 내서 월세가 밀리고, 통신비를 못 내서 전화와 인터넷이 끊기고, 가스가 끊기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집주인에게 돈 10만원을 빌려서, 통신비부터 해결”했다. “전화와 인터넷이 가능해야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도영 씨는 생계비를 마련하는 것조차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병원비 때문에 아버지를 집을 데리고 왔지만 “음식물을 투입시켜줘야 하고, 대소변을 처리해 줘야 하고, 욕창 방지를 위해 자세도 시간마다 바꿔줘야 하는 아버지의 간병”을 혼자 해낼 수가 없었다. 돈도 벌고 간병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지친 “강도영 씨는 간병을 포기”하게 된다.
박상규 기자는 “강도영 씨가 직접 아버지의 사망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그를 체포했을 당시 당시 집이 쓰레기장과 같은 상태였다”고 했다. “강도영 씨가 굉장히 깊은 우울증에 빠져 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거다. 경찰 조사에서 강도영 씨는 “초기에 변호인이라던가 어떤 ‘어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고, 돈이 없어 아버지를 돌볼 수 없었다고 모든 걸 다 자백”했다.
박 기자는 “(3심이 남았지만) 지난 선고 결과를 바꾸긴 많이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며, “돈이 없고 사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누워서 생활하는 아버지를 지키기 못했다는 이유로 살인자가 되는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청년은 왜 보건복지상담센터 대신 알바몬에 접속했을까?
청년 간병인으로서 겪은 경험을 담은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2019)의 저자 조기현 씨는 강도영 씨 사건을 보고 자신이 10년 전 스무 살의 나이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봐야 했던 일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10년이면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뀐 건데, 왜 이렇게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2심 재판도 방청했다는 조기현 작가는 “법원에서 강도영 씨가 복지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죄처럼 언급이 된 점에 놀랐다”고 했다. 왜 보건복지상담센터 129에 전화하지 않았을까, 홈페이지 접속을 안 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강도영 씨가 밀린 통신비를 내고, 보건복지상담센터가 아니라 알바몬 홈페이지에 접속해 알바를 구하려고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복지 서비스 신청이 바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기현 작가 또한 “당장 현금이 없어서 주민센터에 찾아가도, (지원금 등 신청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또, 정말 긴급해서 전화를 하는 건데 “진단서 등의 서류가 있어야 하고, 그럼 병원에 가서 또 어떤 검사를 해야 하고, 여기에 또 돈이 들어가는 일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대나 20대도 부모 등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아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기현 작가는 “교육복지사(학교사회복지사) 확대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초중고에 13% 정도 교육복지사가 배치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 학교에서도 복지서비스를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돌봄의 가치를 알고, 돌봄을 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돌봄에 대한 가치평가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돌봄교육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봄 사회’ 청사진 그려야 한다
조기현 작가는 “간병을 맡게 되는 청년들 다수가 어머니가 부재하거나, 어머니가 아픈 경우”라는 지점도 짚었다. “여성에게 무급으로 부과되었던 돌봄의 방식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반성과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 이슈를 간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건 ‘돌봄’에 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회복지나 건강보험 제도라던가 여러 가지 발전시켜 오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오지 않았다”는 거다.
양난주 교수는 “간병이 필요하다는 건, 환자 혼자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긴 하지만 “대상을 다 쪼개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장애인일 경우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로 가야 하고, 65세 이상 노인일 경우 노인 장기요양으로 가야 하고, 독거노인일 경우 노인 맞춤 돌봄으로 가야 하고…” 이렇게 대상을 한정한다는 건 “장애인, 노인 등이 아닌 경우는 혼자서 생활할 수 있다, 혹은 그 사람 옆에 돌봐줄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한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즉 “이 사회의 가족구성이 ‘4인 가족’이라는 낡은 통념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1인가구는 옆에 돌봐줄 사람이 없다. 2인가구 또한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상대를 돌봐야 할 상황이다. 양난주 교수는 “가족끼리 잘 돌볼 수 있고, 자발적으로 잘 이뤄진다면 다행”이지만, 돌봄의 무게가 점점 더해질 때 그 “돌봄의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이 가족 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박시영 간병시민연대 활동가 또한 “가족 내에서 사적돌봄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형제자매가 많았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지금 청년들은 형제자매가 없거나 한 명인 경우가 대다수다. 부모를 간병하거나 돌봐야 할 때 독박돌봄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시영 활동가는 이런 일들은 결국 “간병파산으로, 그리고 ‘간병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짚었다.
커뮤니티 케어, 병원비 상한제, 서로를 돌보는 사회로
개인이 홀로 돌봄의 책임을 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제도의 변화와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토론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양난주 교수는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된 누구든, 공공전달체계가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서울시 돌봄SOS(wis.seoul.go.kr/hope/center/guide.do) 사례를 언급했다. 그리고 “사회복지제도를 신청할 수 있는 당사자를 이웃, 담당 공무원 등으로 넓히고, 신청하는 곳을 일원화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시영 활동가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커뮤니티 케어(https://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6645) 확대” 방안과 더불어 “병원 내 간호인력 확대”를 주장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는 “환자를 ‘돈벌이’로 보는 병원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의료사회복지사를 병원에 의무화하는 방안”과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을 제안했다. 또한 서로서로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세입자의 월세가 밀렸을 때 집주인이, 그리고 가스나 전기 등의 체납을 확인할 수 있는 공기업 공무원이 체납자의 생계곤란을 ‘신고’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청년 간병인 경험을 털어놨던 조기현 작가는 “병원비와 간병비 백만원 상한제”와 “커뮤니티 케어 확대”는 물론 “커뮤니티 케어를 관리할 수 있는 케어 매니저도 마련되어야 하며, 청년 간병인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했다.
강도영 씨와 같은 청년 간병인 뿐만 아니라, 돌봄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끝내 도움을 얻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반복해서 들려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더한 상황이다. 청년 간병인들, 돌봄을 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 삶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향한 논의와 대책이 시급하다. 박주연 기자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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