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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미국의 3인조 밴드 하임(HAIM)
▲ 미국의 3인조 밴드 하임(HAIM)의 첫 앨범 [Days Are Gone] 커버. 2013 |
하임(HAIM)이라는 3인조 밴드가 있다. 세 자매(다니엘 하임, 알라나 하임, 에스티 하임)로 구성된 미국의 밴드다. 이들은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는데, 하임 가족은 지역 행사에서(LA 출신이다) 여러 곡을 커버하며 무대를 가졌다. 처음에는 무료 공연만 했다. 교회, 학교, 병원 등에서 자선 행사나 재능기부 방식으로 작은 공연을 열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재능이 많은 세 사람을 음악시장은 곧 알아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세 자매는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를 점차 키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세 사람이 함께 정식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음악으로, 혹은 학업으로 바쁘게 지내던 그들은 2012년에 한시적으로 무료 공개 EP를 선보였는데,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후 영국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전에 이름난 밴드의 투어 오프닝을 경험했고, 멤버 각자가 코러스로, 작곡가로, 또 연주자로 활동을 쌓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2013년에 첫 앨범 [Days Are Gone], 2017년에 두 번째 앨범 [Something to Tell You]를 발매하며 하임은 음악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첫 앨범을 냈을 때는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신인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두 번째 앨범을 냈을 때에도 상업적 성과는 이어갔지만 다소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3년 후인 2020년에 나온 세 번째 앨범 [Women In Music Pt. III]는 확실한 변신을 보여줬다.
*HAIM [Women In Music Pt. III] 라이브쇼 https://youtube.com/watch?v=V_eJU6X3_jQ
세 사람은 1970년대 팝 록, 소프트록을 듣고 자란 만큼 음악적 뿌리를 그곳에 두고 있지만, 첫 앨범을 내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음악적 기반에 알앤비를 더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 여기에 첫째인 에스티(Este)는 대학에서 음악인류학을 전공하며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고, 둘째 다니엘(Danielle)은 록 밴드부터 알앤비 음악가까지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음악가와 협업을 해왔다. ‘다양성’이라는 결과는 세 번째 앨범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강렬한 록부터 힙합, 알앤비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번 앨범을 들어 보면, 비로소 세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음악도 변신했지만, 가사 속 메시지도 더 명확해졌다. “Man from the Magazine”에서는 왜 매거진의 남성 구성원(기자, 평론가 등)은 여성 음악가에게 남성 음악가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질문을 하는가 물으며 ‘있는 그대로’ 내용을 썼다. “침대에서도 베이스기타를 칠 때의 얼굴을 하고 있냐”고 질문을 받았던 에스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뭐라고 했지? 침대에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냐고?
이봐, 그게 무슨 질문이야? 내가 정말로 대답하기를 원했나?
어두운 안경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Man from the Magazine 중에서
*HAIM - Man From The Magazine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NqIiYJX1Xw8
남성 록-평론가에게서 받은 무례한 질문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투어까지 성공시킨 밴드를 향해, 세 번째 앨범 “크레딧이 이게 맞냐”, “진짜 연주한 것 맞냐”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이 앨범을 통해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 최초로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는 밴드임에도, 이같은 상황을 계속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남성들은 ‘저 못생긴 것들 끌어내, 저기서 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한다고 했다. 하임의 세 사람은 남성들은 여성이 스스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걸 무서워하기까지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편으로 자신들이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그래미 후보에도 올랐음에도, 매체들이 여전히 ‘여성’ 밴드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남성 밴드를 이야기할 때 ‘남성’ 밴드라고 하지 않으며, 왜 아직도 사람들은 하임을 이야기할 때 ‘여성’ 밴드라고 성별을 반드시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 미국의 3인조 밴드 하임(HAIM)의 두 번째 앨범 [Something to Tell You] 커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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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하임과 비슷한 인지도와 커리어를 가진 남성 밴드가 자신들보다 열 배나 더 개런티를 많이 받는 것을 알게 되자, 에이전트를 해고했다.
하임의 투어 오프닝은 모두 여성 음악가로 채워졌다. 높은 퀄리티와 흥행을 이어가면서, 여성으로 라인업을 채워도 전혀 부족하지 않으며 즐겁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이들은 영국 음악 매거진 NME와의 인터뷰에서 ‘페스티벌은 여성 음악가를 라인업에 더 많이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여성이 록 음악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들은 ‘백인’ 여성이기에 상대적으로 특권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고, 그래서 특별히 리조(Lizzo)와 투어 오프닝을 함께했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임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며 집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 사람은 이번 앨범 발매 이후의 인터뷰들을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음악적 표현도, 사용하는 언어도, 비주얼도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지금까지 업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차별과 백인-남성 록 평론가들의 문제점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했다. 어떤 이는 하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찾아보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하려 하는가 하면, 연주를 의심하는 것에서 나아가 심지어 연주했는지조차 모르고, 앨범 크레딧 한 번 안 살펴보고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하임(HAIM)이 2020년에 발매한, 세 번째 앨범 [Women In Music Pt. III]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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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황당한 경우를 많이 겪어서인지, 2020년부터 유독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거기엔 욕설도 섞여 있었다. 이들은 이제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꺼지라고 말을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며, 여러 매체들에 반복해서 자신들이 겪은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의 앨범에는 분노만 있는 게 아니다. 자매애를 담아낸 보너스 트랙 “Hallelujah”를 비롯해 수록곡들은 밝고 에너지 넘친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두 천사를 만났는데 변장을 하고 있었어요
그걸 깨닫기 위해 (그들을) 한 번 봤죠
그들에게 무엇이든 말하면 그들은 공감해줍니다
이 팔(두 자매의 팔)은 나를 꽉 잡아주죠
내 마음에서 오래된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새로운 눈물은 때가 되면 마를 거예요”
-Hallelujah 중에서
[Women In Music Pt. III]는 음악도 훌륭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 또한 멋지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풀어내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진솔하고 매력적이다. 이제 하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여성’, ‘보컬’ 그리고 ‘자매’라는 점만 부각되었다면, 이제는 연주 실력과 라이브 능력으로 인정 받는다. 더불어 패션에 있어서도 많은 주목을 받는 중이다. 그럴수록 하임은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것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임의 커리어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HAIM - Hallelujah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fpfJFotlENk
[참고 자료]
-호주의 페미니즘 아트 저널 <립 매거진> “걸 밴드 없음: 음악계의 '성차별'에 의해 모욕당한 하임”(알리 반 슐트, 2014년 4월 2일)
-영국 음악잡지 NME “하임이 음악시장에서의 성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다”(루크 모건 브리튼, 2017년 5월 4일)
-영국 공영방송 BBC “하임: 음악 시장은 더 많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2017년 7월 11일)
-미국 인터넷뉴스 <데일리비스트> “하임: 우리는 밴드다, 걸 밴드가 아니다”(멜리사 레온, 2017년 7월 12일)
-미국 공영방송 NPR “하임은 자매애와 작곡에 관해 ‘할 말이 있다’”(노엘 킹 2017년 7월 30일)
-패션지 <로피시엘 옴므> 미국 판 “하임의 페미니즘과 패션”(크리스틴 베이트맨, 2017년 11월 17일)
-미국 패션지 <더블유> “하임 자매들의 미친 한해, 음악에서의 성차별, 그리고 왜 여성이 여성에게 옷을 입혀야 하는가”(캐서린 쿠수마노, 2017년 11월 17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하임: 우리는 어떤 남성 록 밴드와도 정면으로 맞서서 그들을 물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샘 울프슨, 2019년 10월 5일)
-미국 연예지 <버라이어티> “하임과 자매애, [Women In Music Pt. III] 그리고 LA 록 위에 군림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크리스 윌먼, 2020년 6월 17일)
-패션지 <로피시엘 옴므> 미국 판 “하임은 새 앨범에서 성차별, 힘, 그리고 함께 뭉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잭 어빈, 2020년 7월 9일)
-영국 음악잡지 NME “하임: 내 생각에 여성이 최고의 록 음악을 만드는 것 같다”(한나 밀리아, 2020년 7월 10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하임 [Women In Music Pt. III] 리뷰 – 대담하고 활력이 넘치는 앨범”(헬렌 브라운, 2020년 7월 24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하임: 남자들은 '그녀를 무대에서 내려오게 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라는 식이다"(알렉산드라 폴라드, 2020년 7월 27일)
-영국 패션브랜드 네타포르테의 에디토리얼, “커버스토리: 자매애”(2021년 3월 8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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