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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홍성은 감독 <혼자 사는 사람들>

 

18살 여름방학, 고독이 밀려왔다. 인간관계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혼자다. 혼자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뇌며 2학기를 맞이했다.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았다. 나의 급변한 변화에 친구들은 편지를 써주었지만, 난 그 다정함을 오지랖이라고 생각했고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쭉 나는 혼자가 편했다.

 

‘혼자’인 영화 속 주인공들에 몰입했다. <아멜리에>(장 피에르 쥬네 감독, 2001)의 아멜리는 어린 시절부터 고독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보다 혼자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적합하다. <아멜리에>의 오프닝 시퀀스는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들을 하는 어린 아멜리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수면의 과학>(미셸 공드리 감독, 2006)의 스테판도 그러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었고 외로웠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아녜스 바르다 감독, 1962)의 가수 클레오는 건강검진을 받고 불안에 떨지만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 고독과 불안에 몸부림치듯 “Sans toi(당신 없이)”를 부를 때 눈물이 흘렀다. 이들과 친구가 된 기분으로 살았다. 나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감독, 2021) 포스터


아멜리는 결국 사랑을 찾아 둘이 되었다. 스테판은 사랑에 실패하고 꿈으로 도피했다. 클레오는 누군가를 만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감독, 2021) 속 주인공 유진아(공승연 분) 역시 혼자다. 하지만 누군가와 둘이 되지도, 그에 실패하지도 않는다. 유진아는 같이,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한다. 나는 감히 유진아와 친구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이 살고 있다는 감각만은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원샷의 진아

 

영화는 콜센터 직원 유진아의 원샷으로 시작한다. 무표정으로 콜을 응대하는 유진아의 바스트 샷, 원 샷은 사실 원 샷이 아닐 지도 모른다. 초점이 맞지 않는 뒤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하루가 보인다. 못된 고객의 전화에 당황하여 눈물을 흘리고, 이에 노련한 상사가 달려와 대신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유진아는 이를 볼 수 없다. 이는 유진아의 원 샷 뒤에서, 원경에서, 초점이 맞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태울 때도 마찬가지다. 포커스 아웃 된 곳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지만 유진아가 홀로 담배를 태우는 원 샷처럼 비워진다. 그렇다. 유진아는 다른 이의 생활에 포커스를 맞출 여력도, 관심도 없다.

 

하루종일 콜을 받아 귀가 아플 법도 한데 유진아는 점심시간에도 퇴근 시간에도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영상을 본다. 홀로 귀가한 불 꺼진 집에서도 목소리들이 들린다. 켜놓고 나간 텔레비전 속 목소리다. 진아는 과연 혼자인 걸까? 진아는 고독을 잘 견뎌내는 사람인 걸까? 하루종일 진아의 귀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어쩌면 복선처럼 진아의 외로움은 깔려있었다.

 

진아의 P.O.V(point of view, 인물의 시점 샷)에는 사람이 없다. 텔레비전 영상, 점심시간에 늘 먹는 1인분의 쌀국수, 그리고 반찬처럼 놓여있는 스마트폰 먹방, 콜센터 모니터 화면, 엄마의 유언 공정 증서, 유류분 반환 포기 각서 등 사물만 보이고 사람은 없다. 과연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 속 실재하는 사람들을 ‘스마트폰’이라고만 칭할 수 있을까. 진아의 고독에는 의문이 많다.

 

영화는 진아의 원 샷과 시점 샷이 톱니바퀴를 맞춰 돌아가듯 안정적으로 순항한다. 고독을 연료로 넣고 일상의 배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항해한다. 직장 상사와 대화를 나누는 투 샷에서도 재빨리 원 샷으로 돌아온다. 보통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촬영할 때, 둘이 앉아 있는 투 샷을 큰 사이즈로 먼저 잡은 뒤, 대화를 듣는 사람의 어깨가 걸리고 대화를 하는 사람이 보이는 오버 더 숄더 샷(over the shoulder shot)을 번갈아 사용하곤 한다. 영화는, 아니 진아는 그조차, 타인의 어깨 한 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의 측면 원 샷을 번갈아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 번 거리를 둔다. 상사의 노즈 룸(nose room, 인물의 코부터 프레임 끝까지의 거리)보다 진아의 노즈 룸을 길게 잡음으로서 진아가 상대를 멀리 두고 있음을 보인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중 진아와 아빠의 모습

 

진아와 아빠와의 투 샷 또한 거리가 멀다. 둘이 아빠 집에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씬이 있다. 진아는 역시 앞 쪽의 텔레비전에 시선이 가 있다. 마치 콜센터에서 모니터 화면을 볼 때처럼 진아는 앞만 보고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거리도 멀어 원 샷씩 찍어 합성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엄마의 유산 처리를 위해 변호사가 와 작은 상에 아빠와 변호사, 진아 셋이 앉게 된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아빠와 변호사가 한 쪽에 앉고 진아가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홀로 앉는다. 변호사와 아빠를 비출 때는 진아의 어깨가 살짝 걸리는 오버 더 숄더 샷을 사용하지만, 진아의 바스트 샷, 원 샷에서는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콜센터 상사와 담배를 태울 때도 모니터를 바라보는 콜센터 직원들처럼 나란히 서서 담배를 태운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 진아의 삶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진아의 프레임 안에, 시점 샷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시점 샷의 변화

 

드디어 진아의 시점 샷에 처음으로 다른 이의 손이 보인다. 바로 옆집 남자가 담배를 끄는 손이다. 이 시점 샷 이후로 진아의 고독한 순항은 방해를 받게 된다.

 

처음 진아의 시점 샷에 온전한 사람이 들어온 것은 바로 새로 들어온 직장 후배 박수진이다. 신입을 교육해야 하는 진아의 파티션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인다. 마주보지는 않지만 꽤 가까운 투 샷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진아는 순순히 내어주지 않는다. 일하는 진아는 마치 수진이 옆에 없는 듯이 다시 원 샷으로 돌아온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중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진아와 수진의 모습

 

수진은 계속 진아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진아는 받아주지 않는다. 점심시간, 함께 식사를 하고자 쫓아온 수진을 찬밥 취급하고 심지어 떨어져 앉아 식사를 한다. 영화는 진아를 야박하게 비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의 고독한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유지해야만 평온한 진아를 그저 같은 앵글로 바라본다.

 

그런 진아가 고개를 돌려 수진을 바라보는 일이 생긴다. 수진이 진상 고객의 콜을 받았을 때다. 수진은 당황하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라는 진아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왜 죄송해야 돼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수진을 진아는 멍하니 바라본다. 처음 누군가를 온전히 보는 진아의 시점 샷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기운이 하나도 없지만 역시 죄송할 일 또한 하나도 없는 수진의 옆모습은 진아가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수진은 얼마 뒤 회사를 나오지 않는다. 그런 수진에게 진아는 전화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어쩌면 자기도 혼자 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진아는 사과를 하지만 억지로 함께하지는 않는다. 진아는 같이, 또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어폰을 끼지 않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버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진아의 얼굴 위로 거리가 비춘다.

 

우리는 같이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오래도록 혼자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은 계속 반대를 했고 나는 술집을 전전하며 매일 혼자 술을 마셨다. 바에 앉아 가장 싼 맥주를 시켜 벌컥벌컥 마셨다. 그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바 옆에 나란히 앉아 콜센터 모니터를 보는 사람들처럼 멍하니 술을 마셨다. 진아처럼 나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몇 년 전, 처음으로 혼자 나와 살게 되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나도 절실했던 나는, 이를 절대 이해 못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야반도주를 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들어왔을 때 불 꺼진 집과 혼자 먹는 밥, 그리고 내가 선택한 고요함들이 나를 충만하게 했다.

 

겨울이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집이 너무 추웠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근처에 사는 따뜻한 친구네 가서 잠을 잤다. 반복되다 보니 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월세는 줄었지만 혼자의 영역 또한 줄었다. 우리는 서로를 불편해했다. 혼자 살던 각자의 존재감은 서로에게 너무 컸고 둘이 있으면 작은 대화든, 집안일이든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중 진아가 집 앞에 서 있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같이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랫집에 이사 온 친구들도 그러했다. 우리는 각자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존중해 주었고, 넷이 한 집에 모여도 말 한 마디 없이 각자 일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나의 시점 샷에도 사람들이, 친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각자가 원할 때는 다시 사물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쭉 주인공인 인물을 따라가면서도 <아멜리에>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는 다르게 인물의 이름 대신 복수를 칭하는 ‘들’을 붙여 <혼자 사는 사람들>을 완성했다. 이는 혼자 사는 유진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혼자 사는 유진아가 혼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을 단수의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복수의 집합 혼자 사는 사람들로 정체화하게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시대다. 맞다 혼자는 편하다. 하지만 온전히 혼자인 것이 불가능한 시대이기도 하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야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홀로 식재료를 살 때도 그것을 심고 키우고 나른 사람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구태여 누군가와 함께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감각을 잃지만 않으면 된다. 내 원 샷 뒤 초점이 나간 원경에 수많은 혼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러자 수많은 혼자들의 시점 샷이 궁금해진다. 당신의 시점 샷엔 무엇이 있나요.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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