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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페미니스트, 20대 대선 그리고 이후를 이야기하다 (상)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선거 기간 동안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20대 여성은 어젠다 형성에 뒤처지고 있다”, “‘여자라서 죽었다’, ‘머리가 짧아서 맞았다’, ‘데이트폭력’, ‘교제살인’ 등의 용어만 난무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만 한다” 등 여성혐오의 말을 쏟아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그리고 지난 안희정, 故박원순, 오거돈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진지한 반성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많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실망시켰다. 페미니즘 정당을 내세운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고군분투했지만 양당구도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30 여성들의 표심은 거의 선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도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뒤늦게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추적단불꽃’의 박지현 씨를 전면에 내세우며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지난 권력형 성범죄를 사과하는 발언을 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와 함께 ‘여혐선거’를 이끈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며 선거 코 앞 여성들의 표심이 요동쳤다.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박빙인 결과로 나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당선인이 확정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8.56%,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7.83%를 획득, 승부는 불과 0.73% 차이였다.

 

정권교체를 외친 국민의힘의 순항이 예고되었던 것과 달리 1% 차이도 안 나는 박빙 결과가 난 것에 대해,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2030 여성들의 표가 국민의힘을 막기 위해 민주당으로 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한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독으로 돌아왔으며 차별과 배제, 혐오의 전략은 패했다는 거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선거 이후의 움직임이다. 출구조사 결과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후보 측에 지지와 응원의 후원금 러쉬가 이어지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 2030 여성들의 입당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유독 많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지치게 하고 힘들게 했던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도 정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 이후’를 이야기하기 위해 두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이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등의 집필에 참여한 작가이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인 홍혜은 씨와, 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감독이자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이가현 씨. 홍혜은 씨는 대선 기간 <KBS 열린토론>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의견을 피력했고, 이가현 씨는 ‘이대남’ 프레임에 대항해 ‘여성혐오 정치 아웃’을 외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조직하고 연대 활동을 했다. 2030 여성이기도 한 이들이 바라본 대선은 과연 어땠을까?

 

▲ 인터뷰 중인 홍혜은 씨.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이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등의 집필에 참여한 작가이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일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전반적으로 돌이켜봤을 때 어떤 선거였다는 생각이 드나요?

 

홍혜은(이하 혜은): 전 돌고 돌아 메갈리아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메갈리아가 만들어졌던 그 무렵이요. 무슨 말이냐면, 2015년 메갈리아가 등장하고 이후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 성차별이 문제라는 합의된 분위기가 있었고, “여자도 사람이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쟁을 해 왔단 말이죠. 페미니스트 내부에선 “그래서 누가 여성이고 어떻게 연대할 것이냐”, “성차별 문제는 다른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등의 다양한 논의도 있어왔고요. 근데 ‘청년’의 얼굴을 한 이준석 대표가 나와서 구조적 성차별은 아예 없다고 주장함으로서 다시 논의를 뒤집어 엎은 거에요. 문제를 구조적으로 보아야 정치가 해결해야 할 영역이 되는데, 개개인의 문제라고 해버리면 개인의 영역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리고 선거 막바지에 등장한 ‘일번남’(1번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과 ‘이번남’(2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 프레임 또한 마찬가지에요. 메갈 이후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던 걸 생각하면, (여혐선거 끝에) 굉장히 ‘정상적인 남성’으로 프레임된 일번남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이는 거죠. 저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성차별 구조 안에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인 남성 파트너가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했어요. 둘째를 갖자고 조르는 순간 성별임금격차 구조 안에서 여성이 경력단절이 되는 장면을 보여주잖아요. 이런 식으로 구조적 차별을 알리는 메시지가 사회화되었고, 새로운 사회 단위와 개인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일번남'이 좋은 남성 시민의 표준인 것처럼 조명되면서 좀 힘이 빠졌던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로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그 어느 쪽도 갈 수 없었으니까요. 근데 또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질지 아니까… 복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죠.

 

이가현(이하 가현): 일단 ‘민주당이 민주당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국민의힘엔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저도 ‘일번남’, ‘이번남’ 프레임 보면서 좀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아요. ‘이대남’이라는 프레임에 대항해서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페미니스트 청년 남성)과 함께 남성의 스펙트럼을 조금 더 확장시키고 ‘이대남’에 포함되지 않는 목소리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들이 ‘일번남’으로 포섭되더라고요. 우려스러웠죠. 막상 이제 결과가 나오니까, 혜은 님 말대로 다시 메갈 때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느낌, 한편으로 ‘이제 우릴 막을 사람은 없어!’라는 느낌도 들어요.

 

▲ 인터뷰 중인 이가현 씨. 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감독이자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이며, 선거 기간에 20대 페미니스트 남성들(행동하는 보통 남자들)과 연대 활동을 펼쳤다.  ©일다

 

-선거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혜은: 일번남 이번남 구도였어요. 사실 ‘이대남’이라는 것도 정말 실존인물들을 대변한다기보다 어떤 욕망들을 프레임한 것뿐이잖아요. 근데 그것에 대한 대항세력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결국 일번남, 이번남이 나오면서 그 이대남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는 게 흥미로웠죠. 메갈 때 ‘일베남’ 후려치던 방식이 ‘이번남’으로 갈라치기 하는 걸로 이어지는구나 싶었고요. 다만 이 일번남 이번남을 나누고, 정의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좋은 남성을 만나거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망 구조와도 연결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앞으로 이런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게 된 장면이기도 해요.

 

가현: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대위원장의 등장이죠. 사실 박지현 씨를 보는 마음이 복잡해요. 역할을 잘 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되는 부분들도 있어요. 더불어민주당을 쇄신하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밀어붙이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죠. 세력이 필요하다는 건데, 전 그 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단지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모으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보거든요. 박지현이라는 사람이 정치인으로서 잘 성장했으면 좋겠고, 거기에는 동조만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죠.

 

-박지현 비대위원장 이야기는 뒤에 또 나눠보도록 하죠. 후보들 공약은 어떻게 보셨나요? 꼭 ‘여성공약’으로 낸 것이 아니더라도 페미니스트로서 관심이 간 공약이 있는지 궁금해요.

 

가현: 대부분의 후보들이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에서의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고소 없이 기소는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기소할 수 없고 기소 이후에 그러한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함) 폐지’는 언급한 걸로 기억해요. 사실 가정폭력은 미투운동 때도 덜 드러났던 분야죠. 이걸 폐지 못하면 가정폭력 가해자가 집으로 쉽게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고요. 그나마 이제 이 문제가 많이 이야기되었고, 거기엔 이수정 교수의 기여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새로운 정부에서 꼭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부분은 성산업, 성매매와 관련된 부분은 공통적으로 거의 언급이 안 되었다는 거죠. 이 이야기가 전혀 안 나오는 걸 보고 ‘정말 사각지대구나’ 싶었어요. 페미당도 성평등 공약 정책 질의서를 만들어서 각 후보들에게 보냈는데, 거기서도 빠졌더라고요. 저도 반성했어요.

 

혜은: 심상정 후보의 [주4일제]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주4일제 공약이 나왔을 때, 중산층을 위한 공약이다, 정규직을 위한 공약이다 등의 비판도 있었던 걸로 알아요. 하지만 심 후보 측에서 이야기했던 건 “우리 모두 멈추어야 하는 세계로 향한 변화를 이끄는 것”이었거든요. 기후위기를 위해서도 멈출 필요가 있고, 장시간 노동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멈출 필요가 있다는 거죠. (임금)노동 시간이 길면, 지금 고정적인 관념 안에서의 노동 밖의 노동, 돌봄노동 같은 것의 의미와 가치를 논의하고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면에서 전 이 공약 자체가 페미니스트 관점이 들어갔다고 봤어요. 좋은 공약이라고 생각했고요.

 

▲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보물 중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 후보의 ‘주4일제’ 공약 안내문.

 

여성만을 타겟팅 해서 몇 개의 혜택만 주는 여성정책으로는 근본적인 구조나 환경을 바꿀 수 없어요. 출산 시 남성 파트너의 육아휴직 제공, 이런 것보다 노동시간 자체를 줄이고 노동시간 외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개별적인 여성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 전 주4일제가 진짜 여성공약이었다고 생각해요.

 

-청년공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혜은: 각 정당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청년의 상을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에 차는 공약이 없는 거죠. 우리는 (정당들이 그리는) 청년의 삶을 살기 싫으니까요. 짜놓은 판 위에 그냥 장기 말처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청년을 지원하는 게 청년 정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콩고물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청년정치여야 하는가? 그런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주거 문제, 돌봄 문제가 청년이슈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모든 청년이 그렇진 않죠. 엄마아빠한테 물려받을 집이 있고, 할아버지 아파트 팔면 집이 두 채 생기는 청년이 주거 문제의 당사자는 아니잖아요? 돌봄도 지금 가족 안에서 돌고 있는데, 그런 가족을 재생산할 수 없거나 혹은 그걸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돌봄 문제의 당사자고요. 그런 지점들을 좀 명확히 해야 되는데, 구분을 교묘하게 흐리면서 일종의 ‘청년팔이’를 하는 게 문제의 근원이라고 봐요. 어떤 것이 청년 정책이어야 하는지 논의가 더 되었어야 하는데 참 아쉬워요. 청년을 내세우기만 하는 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고요.

 

▲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그런 의미에서 ‘이대남’ 이야기도 공허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현 씨는 선거 기간에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등을 외치며 남성 페미니스트를 조직하고 연대했잖아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가현: ‘이대남’이라는 게 정말 20대 남성의 목소리라기보다 어떤 프레임이잖아요. 특히 정치권이 이대남을 거론하며 여성들 탓을 하는 것에 좀 반기를 들고 싶었어요. 성범죄 얘기가 나오면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면서, ‘낫 올 맨!’(Not all men, 모든 남성이 그렇지는 않다) 엄청 외치면서, 이준석 대표가 이대남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원한다는 식으로 일반화할 땐 침묵하고, 아무도 ‘낫 올 맨’을 외치지 않는 거죠. 그런 상황이 좀 어이가 없어서 한번 해 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이대남의 스펙트럼을 넓혀서, ‘너희가 대변하고자 하는 이대남은 20대 남성 전체가 아니라 그냥 일부분일 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또한 남성들이 정말 겪는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고요. 특히 군대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논의해보고 싶은 주제에요. 한편으론 저도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지치기도 하고 무력감을 느꼈거든요. 몇 년째 계속 싸워오고 있는 거니까, 남성들한테 ‘이제 당신들도 좀 앞으로 나와서 목소리도 내고 화살도 같이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지금은 좀 지쳤으니까 잠시 선수 교체 같은 느낌으로요. 이후에도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이에요.

 

※(하)편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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