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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잘 사는 세상을 원해』

나는 몇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바가 있다.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글은 문제가 되지 않다가, 여성이 남성을 공격하는 글을 쓰면 낙인 찍히고 ‘남성혐오’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꼭 남성과 여성의 구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주류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를 비방하거나 억압할 때는 그것이 괜찮게 여겨지다가도, 소수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주류의 논리를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그것이 문제가 되곤 한다.

 

우리의 언어를 갖자, 페미위키의 시작

 

메갈리아는 2015년 말이 되자 커뮤니티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유저 수가 급감했고, 여러 파생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메갈리아만큼의 화력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말, 나는 몇 사람들과 함께 페미위키를 만들었다.

2017년, 여성주의 정보집합체 페미위키 1주년 네트워킹 파티 때의 모습. ©페미위키

페미위키의 출발에는 계기가 있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두 번째 기폭제가 된 강남역 여성표적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로, 나는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요지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었다. 검거 당일,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였다. 범인은 범행장소에서 남성 7명을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죽였다. 범인이 말한 대로, 죽일 사람을 여성으로 고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성차별과 이어진 증오 범죄가 아니며, 범인이 앓고 있던 조현병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과는 상관이 없는, 개인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라는 말은 그리 낯설지 않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말하는 뉴스 기사는 드물지 않다. 반면, 남자친구나 남편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분명히 성차별적인 면이 있다.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와중에 그들은 나의 의견을 반박할 논거로 나무위키 내용을 들고 왔다.  나무위키에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보다 범인의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들은 위키 사이트는 ‘중립적’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이 사건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러 일을 겪었던 나는, 오히려 나무위키의 편향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만든다고 해서 그 내용이 꼭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는 않다. 사회에 성차별이 만연해있으면, 성차별을 내면화한 여러 사람들이 같이 만든 내용은 성차별적이 된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성차별적이지 않은,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정보를 모아두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른 관점의 정보가 모이고 전파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인식을 뿌리부터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 명이 모여 얼마 안되어 위키 사이트를 오픈할 수 있었다. 강남역 여성표적 살인사건에 대한 논쟁은 이때까지도 온라인 상에서 계속되고 있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논쟁을 하다가 페미위키의 문서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난다. 메갈리아가 그랬듯, 우리의 언어가 하나씩 생기는 느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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