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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일다의 책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운동장에서 포옹한 죄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다급히 학생 두 명이 교무실에 소환되어 혼나고 있었다. 큰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이유는 싱거웠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이 포옹을 한 죄였다. 사실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이내 ‘이게 이렇게 심각한 일인지’ 지도하는 교사에게 반감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학교 규정에 반하는 것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해당 선생님은 다정하고 단호한 말투로 ‘풍기문란’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였다.

 

풍기 문란(風紀紊亂)

풍기 문란 「001」 풍속이나 규범 따위를 어기고 어지럽히는 일.

 

이럴 수가, 풍기문란이라니. 학교라는 곳은 빠르게 변하면서도 동시에 참 변하지 않는 곳이다. 언제적 용어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 용어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벌점 규정에 버젓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도 꽤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을 사랑/연애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학생들의 스킨십을 지도했던 교사들은 ‘공공장소에서의’ 포옹을 불편해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런데, 학생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학생들은 사귀면 손을 잡고, 포옹하기도 하고, 스킨십을 하면서 산책(데이트)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는 건 ‘연애’를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청소년은 연애를 하되 스킨십을 하지 말라’ 혹은 ‘뭘 하든 안 보이는 곳에서 하라’는 의도를 숨기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연애를 금지한 건 아니니까 학교 측에서는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의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사귀니까 스킨십을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생활하는 학생들이니까 학교에서 그것도 쉬는 시간에 스킨십을 하는 건데 뭐가 잘못된 건지..

 

학생들은 더 예리해서 ‘동성 친들끼리 껴안는 것은 괜찮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다. 동성 친구들끼리의 ‘진한’ 스킨십은 코로나19 상황이 아니고서는 학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는 동성 간의 연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손끝만 닿아도 두 볼이 빨개지고 손편지로 마음을 확인하며 스킨십은 생략한 채 잘 성장하여 짜잔~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랑이라는 큰 세계를 담아낼 수 없다. 게다가 청소년들은 놀랍게도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이다. (계속)

 

≪일다≫ 숨어서 하는 포옹은 괜찮으신가요?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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