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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메이 올코트 "작은아씨들"

19세기 여성작가 루이자 메이 올코트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서구의 여성 작가들 가운데 명성을 획득하여 이른바 ‘고전’의 범주에 올라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대중소설과 고전의 경계에 서 있는 소설들을 많이 써내면서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다.
 
비록 당대에는 ‘감상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격하되었지만 이들의 소설에는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꽤 많다.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로 나가서 글을 쓰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만큼 이들의 여성의식과 사회의식은 남달랐다. 그러나 대중소설작가인 만큼 타협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족에 헌신하는 삶과 자아에 대한 열망 사이

<작은 아씨들>로 유명한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코트 또한 그러했다. 그녀는 이상은 높았지만 가족 경제에는 전혀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 경제를 책임졌던 헌신적인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브론슨 올코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주입식 교육 대신 소크라테스 식의 대화 지향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깨닫고 이를 실현하려고 애쓴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가 몇 차례 설립한 학교들은 번번이 문을 닫아야만 했으며 그 결과 가족들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실생활에서는 무능했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네 딸들은 마치가의 소녀들처럼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루이자는 바느질 등 허드렛일부터 연극배우, 하녀, 가정교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브론슨 올코트는 딸들을 개방적으로 키웠으나 동시에 순종적이고 착한 성품의 여성상을 강요했다. 게다가 금발머리가 갈색머리보다 더 천사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미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갈색머리였던 아내와 둘째 딸 루이자의 강하고 고집스런 기질을 꺾으려고 애썼다. 루이자는 그런 아버지의 믿음에 따라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루이자는 <작은 아씨들>의 둘째 딸 조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성미가 급했으며, 무엇보다도 글을 쓰고 싶어했다. 조가 꿈꾼 비극적이고 멜로드라마적인 세계는 루이자가 실제로 꿈꾼 세계이기도 했다. 그녀는 고딕소설이나 로망스와 같은 강렬한 감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작은 아씨들 (Oxford Children's Classics)

따라서 그녀의 소설에서는 늘 두 가지 요소들이 깔려있다. 가족에 헌신하는 도덕적인 삶에 대한 믿음과 강하고 열정적인 여성 자아에 대한 열망. 이 두 가지는 때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론에서는 하나로 합쳐졌다.

루이자가 17세 때 처음으로 쓴 소설 <아주 특별한 사랑>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순정만화 같다. 가난한 고아라는 ‘천한’ 신분이지만 아름답고 착한 성품을 지닌 에디스는 갖은 시련을 겪은 끝에 자신이 귀족의 신분임을 알게 되며 사랑까지 획득한다. 착한 에디스 주변에는 에디스 만큼이나 착하고 자상하며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지닌 남자와, 그와는 반대로 에디스의 미모 때문에 그녀를 노리는 건방지고 미숙한 남자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공식을 따르는데, 그 공식은 소녀지향적인 세계관을 대변한다. 즉 선한 감정을 베풀 줄 아는 감성적인 소녀 에디스가 아픔을 지닌 선량한 남자의 과거를 치유함으로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공식이다. 사랑, 신분상승과 존경할 만한 성품까지 갖고 싶어 하는 17세 소녀 루이자의 세계는 현대를 살아가는 소녀들이 꿈꾸는 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작은 아씨들>과 소녀들의 세계

소녀들이 가정적인 여성이 되어가는 다소 구식의 틀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씨들>이 현대에서도 여전히 인기를 끌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여러 차례 각색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소녀적인 기질들을 골고루 나누어 갖고 있는 마치가 자매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흥, 크리스마스, 그래,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어디 있담.’ 조는 융단 위에 누워서 투덜거렸다.”
 
<작은 아씨들>의 서두를 장식하는 인물은 둘째딸 조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사과를 먹으며 글쓰기를 즐기는 '톰보이(tomboy)'이자, 드레스의 등을 태워버려서 벽에 기댄 채 파티를 구경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조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당대 소녀들이 좋아할 법한 주체적인 여성상을 대변한다. 반대로, 귀엽지만 허영심 많고 귀가 얇은 넷째 딸 에이미는 갑작스런 행운으로 인해 부유한 삶을 누리고픈 소녀들의 또 다른 꿈을 보여준다.

소녀들의 성격뿐만 아니다. 마치가의 풍경은 그 자체로도 여성들의 공동체가 지닐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푼돈조차 아끼면서 열심히 노동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가정경제에 쉽게 편입하기 쉬운 여성들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또한 ‘조의 뜨개질바늘이 내는 달각거리는 소리, 메그의 오래된 포플린 드레스, 베스가 신성하게 다루는 낡아 버린 피아노, 에이미의 석고상’과 같은 아이템들은 여성독자들에게 일상적인 친밀감을 환기시키는 물건들이다. 이들이 자만과 허영심에 빠져서 모험을 했다가 실패하고, 또 성장하는 모습은 소녀독자들의 성장패턴과 유사하다.

루이자 메이 올코트 "사랑스런 포리"

루이자는 마치가 소녀들의 세계를 긍정한다. 여성참정권운동의 열렬한 옹호자이기도 했던 루이자는, 부유한 로리와 그의 할아버지가 부러워할 만한 속성을 '아버지 없는' 마치가에 불어넣었다. 로리와 그의 할아버지는 (루이자의 아버지 브론슨 올코트가 강조한 바 있는) 가정에 헌신하는 순종적인 모습보다는, 오히려 네 명의 자매들이 지닌 영속적인 자매애와 감성적인 모습들, 그들이 지향하는 도덕적인 세계를 부러워한다.

이는 루이자의 다른 작품 <사랑스런 포리>(원제: An Old-fashioned Girl)에서도 변주된다. 도시적인 유행을 잘 따라가지 못해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고 살지만, 야무지고 성실하게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폴리의 모습과 폴리가 만나는 여성예술가집단의 모습이 그것이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서 이들의 감성은 어른들의 세계로 편입되면서 서서히 퇴색된다. 조에게 기댔던 베스의 죽음, 그리고 메그의 결혼은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다소 비극적으로 처리됨으로써 이들 세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물론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는 메그의 결혼에 대해 “나는 내 자신이 메그와 결혼해서 그녀를 가족 안에 계속 두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말한다. 이런 조의 결심을 존중하기 위해서 작가는 독자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조가 로리의 구애를 애써 거절하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어머니는“옳아, 조. 불행한 아내나 신랑감을 찾으려고 뛰어다니는 처녀답지 않은 여자들보다는 노처녀가 훨씬 낫지”라고 말하면서 조의 마음을 지지한다.

이처럼 <작은 아씨들>은 헌신성과 희생의 미덕, 그리고 가장에 대한 맥 빠진 향수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녀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아이템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자매들의 공동체에 나름의 장점을 부과하는 정치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루이자가 썼던 많은 소녀취향의 소설들은 이후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출현한 소녀독자들과 그녀들이 소비한 이른바 ‘소녀들의 학교 이야기’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로맨스의 환상에 대한 비판

유작 "치명적 사랑"

루이자는 초기에는 여러 가지 필명으로 대중소설을 쓰면서 돈을 벌었다. 그녀의 대중소설에는 여성운동이 막 태동했던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유혹적이고 범죄를 저지르는 여자주인공들이 주로 등장했다.
 
물론 <작은 아씨들>의 성공 이후에는 출판사들의 요청에 따라 아동문학에 전념하게 된다. 그녀 스스로 ‘도덕적 유아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착하고 올바른’ 아동문학은 강한 기질의 소유자인 루이자의 구미에 맞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은 아씨들>의 후속작에 대해서도 루이자는 “출판업자들은 몹시 성미가 고약하고 늘 그러듯 작가들에게 자기 나름의 방법을 따르도록 하기 때문에 나의 작은 아씨들은 자라서 매우 어리석은 방식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라며 자조적이고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1994년이 되어서야 알려진 그녀의 유작 <치명적 사랑>은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지금 독자들의 시선에서는 다소 어색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지만, 사랑과 연애에 대한 루이자의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고딕소설이나 로망스에 끌렸다는 그녀의 말처럼, 루이자는 열정적인 여주인공을 상대의 감정에 무심하고 소유에 집착하는 악인형 남성과 사랑에 빠지도록 설정, 치명적인 상태로 몰아간다. 이는 당시에 유행했던 ‘센세이션 소설’의 기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치명적 사랑>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잡지사에서 퇴짜를 맞았는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유를 원하는 여성의 상태와 이혼 남녀의 양육권 문제, 여성 공동체의 문제 등 지금도 여전히 관심을 끄는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딴 섬에서 고립된 채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18세의 소녀 로자몬드는 마치 <제인에어>의 제인처럼 자유를 갈망하다가 돈 많고 나이가 많은 템페스트에게 속아서 그의 정부가 된다. 그러나 템페스트에게 본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자몬드는 그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끝까지 템페스트의 사랑을 거부한다.
 
<제인 에어>처럼 일반적으로 이런 관계가 설정될 경우 여주인공이 어떻게든 상대 남성을 구원해서 정상적인 관계로 이끌어 가는 반면, 작가는 그 관계가 좋지 못하다고 질타하면서 여주인공을 탈출시켜 버린다. 또한 템페스트의 본부인과 로자몬드가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퇴폐적이고 집착적인 악인형 캐릭터를 다소 일방적으로 단죄해 버렸다는 점에서는 매력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이자가 <치명적 사랑>에서 똑부러지게 설파한, 악인과의 흥미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로맨스적인 세계관이 결코 여성들에게 좋을 것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몽적인 주제는, 대중로맨스들이 판을 치는 지금의 세태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싶다. 김윤은미/  일다 www.ildaro.com 

[여성문학 시리즈 보기]  추리소설의 세계와 여성  |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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