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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만나다② 
 

2010년 1월 27일, 이화여대 환경미화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출범식이 열렸다. ©사진 제공- 비정규직 노동을 고민하는 이화여대 학생모임 신바람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이마에 차가운 것이 떨어진다. 올려다본 하늘이 뿌옇다. 가랑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주변 공터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나온다. “진짜 눈이 오네요.” 하필 오늘따라 맞아 떨어진 일기예보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눈이 거세진다. 사람들은 서둘러 앰프를 설치한다. 떨어진 눈이 녹아 앰프를 적신다. 돌돌 말린 현수막을 펼치자, 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공공노조 서울 경인 공공서비스 지부 이화여대 분회 출범식.’ 4시가 되자 일을 마친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인다.
 
눈은 이제 비로 바뀌었다. 학생문화관 건물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총무과 교직원들과 업체 소장, 반장이 나와 있다. 비를 피해 로비로 들어간 노동자 몇 명이 그들과 마주치자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학생들이 그녀들을 쫓아가 붙잡는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선 조합원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뒤늦게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그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가슴 조마조마”하며 모여서 만든 노동조합
 
출범식이 있기 2주 전, 신복기 씨는 A 대학 강의실을 찾았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이화여대 학생들이었다. 눈과 귀가 많은 이화여대를 피해 잡은 장소였다. 모임 장소와 시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첫 모임이었다. 이 날 모인 이가 겨우 여덟이었다. 그 자리에 공공노조 서울경인 공공서비스 지부(이하 서경 지부) 활동가가 나와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했다.
 
“가슴을 졸이면서 모였는데, 오겠다는 사람들이 다 안 온 거야. 덜컥 겁이 났지. 노조(민주노총 서경지부) 쪽 사람이 말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안 믿어지더라고요. 해고당하는 그게 무서워 가지고. 그래도 어쩌겠어. 하긴 해야지.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꼴이 되지.”
 
신복기 씨는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강의실을 나서는 그녀들의 손에 노동조합 가입서가 다섯 장씩 들렸다.
“처음에 용지 받아가지고 왔는데 책임감이 생기더라고. 다 받아야겠다 싶은 거야. 그렇게 8명에서 30명이 된 거지.”
 
여덟 명은 서른 명이 되었고, 서른 명은 오십 명이 되었다. (2월 5일 현재 120명이 넘어섰다.)

 
“우리도 이 나이 먹어서 권리가 없어 너무 억울한 거 많았어. 얼마나 쉬쉬하고 했는지 몰라. 그런데 딱 판단이 왔어. 우리에게 기회가 온 거다. 기회가 왔을 때 하는 거다. 약자들이 어디 가서 말 한마디 하면 큰일 나잖아? 이리저리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고.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는 거지.”
 
입 단속을 했다. 노동조합 가입은 비밀에 부쳤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학교와 용역 업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의 맘고생이 시작되었다.
 
인터뷰를 위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최인자씨(가명)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밖에서 발소리만 나도 심장이 뛰어. 내가 노조 하고서 며칠째 잠을 못 자. 이게 보통 일이야? 창피하고 앞장 서야 하고. 우리 신랑은 절대 하지 말라고. 피도 모자란데 하다가 쓰러진다고. 한번은 반장님이 부르데. 학생들이 휴게실 오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노동조합은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데. 떠보는 거지. 가입한 조장들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가지고 가만히 있는 거라. 했다 안 했다 말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지 어떡해? 심장이 두근두근 하더라니까.”
 
“못 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세요”
 
이화여대분회의 상급 단체인 서경 지부는 전전긍긍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 교육했다. 부당노동행위란 노동조합 가입 활동을 방해, 간섭을 하여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지부가 나누어준 유인물에는 진한 글씨로 ‘노동관계조정법 81조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처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반장이나 소장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가입하면 잘라버리겠다’ 하면 ‘그건 법에 걸리는 거다’ 라고 딱 말씀하세요. 아셨죠?”
 
서경지부 유인나 조직 차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들은 “2천만 원, 징역 2년!”을 외친다. “외워, 외워” 그러면서 몇 번이나 그 대목을 중얼거린다. 그러나 법은 멀리 있고, 관리자는 가까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이은덕씨(가명)는 휴게실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말한다.
“노조가 좋은 건 다 알아, 누구나가 다 아는데……. 하다 짤리면, 이 연세들이 다 어디 나가서 딴 것을 한다는 건 그렇잖아. 젊은 거시기 같으면 여기서 짤려도 무슨 상관이야? 다른데 가서 하면 되지.”
 
“노동조합 한다고 해고하는 건 법을 어기는 거예요.”
학생의 말에 그녀는 역시 고개를 젓는다.
“해고를 한 번에 시켜뿔면 괜찮은데 달달 볶아서 죽일 텐데 그걸 어떻게 해? 못 나서는 우릴 불쌍히 여기세요.”
 
그녀의 말처럼 이미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경험해왔다. 관리자에게 입바른 소리했다가 일이 많은 건물로 옮겨지거나 ‘뺑뺑이’라 불리는 상시적인 전환배치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감히 노동조합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토요일에 나와 일해도 특근 수당은 구경도 못했다. 일이 많다고 부르면 집에 갔다가도 다시 나와야 했다. 돈을 적게 받아도 일이 많아도,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하니까’ 하며 안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에게 물었다.
“노조 생기고 뭐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낙엽 쓰는 일 고되다. 사람 좀 더 썼음 좋겠다’라는 말이 물꼬를 트면서 식대 지급, 임금 인상, 주 5일 근무 등 무수한 바람들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 조영순씨(가명)가 조용히 말한다.
 
“우리 권리만 조금 찾자는 거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일대일로는 소장님과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럴 때 노조의 힘을 빌려서 부드럽게 해 나가자는 거예요. 처음부터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이 맘 편하고 서로들 여기 와서 일하겠다고 하면 이화여대도 좋은 거 아니에요?”
 
“감히 할 수 없던 얘기를 하니까 힘이 나지”
 
출범식 당일,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이화여대 분회’의 출범을 알리는 노동조합 측 공문에 이화여대 측에서 답변을 보내왔다.

“이화여대 소속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인광’과 ‘동서기연’ 용역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로, 이화여대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출범식을 허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학내 공간 사용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용역업체와 1년 계약을 맺어 일하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길게는 30년 넘게 이화여대에서 청소 노동을 해 온 이들이다. 학교 직고용으로 일을 하다 55세에 정년퇴직을 하면 용역업체로 소속을 옮겨 청소 일을 계속하는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이화여대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다.
 
학교 측은 노동조합 출범식을 알리기 위해 학생들이 붙인 플래카드마저 철거했다. 학생들이 항의하자 총무과 직원은 지정된 장소에 붙이지 않아 철거했다고 답변했다. 지정된 장소에 붙인 플래카드는 왜 떼었냐는 질문에,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학내 어느 곳이든 출범식을 알리는 선전물은 다양한 이유로 하루를 넘기기 못하고 사라졌다.
 
출범식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다만 장소가 실내가 아니라 비 내리는 광장이다. 이마저도 앰프를 설치하지 못하게 막는 교직원들과 실랑이 끝에 가능했다. 조합원들의 손에 얇은 1회용 우비가 주어졌다. 우비를 입어도 금세 옷이 젖는다.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온다. 찜질팩을 허리에 둘러도 뼈가 시리다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웃음을 멈출지 모른다.
 
“어떠세요?”
“떨려. 그런데 좋아, 설레.”
 
연세대, 고려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등 다른 대학 환경미화 노동자 200여 명이 노동조합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다. 사람들이 끝도 없이 오는 걸 보고 그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휴게실을 방문하며 노동조합 출범 과정을 지켜보았던 학생들도 자리를 채웠다. 이들을 대표해 국문학과 양진선 학생이 앞으로 나와 연대의 말을 건넨다.
 
“이제 누구도 우릴 뭐라 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출범하게 됐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이 장갑은 아까 선전전 할 때 조합원 한 분이 주신 겁니다. 이 추운 날씨에 저에게 장갑을 벗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합원 분들과 저희 학생들이 이렇게 믿고 함께 하는데 세상에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신복기 분회장을 비롯해 발대식 전날에 노동조합 분회 임원으로 선출된 이들도 마이크를 잡는다.
“학생들한테 너무 고마워요. 학생들 때문에 귀가 열렸어요.”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똘똘 뭉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겠습니다.”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가 울려 퍼진다. 출범식 마지막 순서다. 2000년 초 비정규직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노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는 곳엔 항상 이 노래가 들렸다. 그리고 오늘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자, 그녀들이 이 노래를 부른다. 아직 가사를 외우지 못해 비에 젖은 가사집을 언 손으로 부여잡고 부른다. 짧은 직선을 그으며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얀 우비 입은 이들이 일제히 오른손을 들어 팔뚝질을 한다.
 
“감히 할 수 없던 얘기를 하니까 힘이 나지. 일이 너무 많아 힘들고 아프다 해도 누구 하나 이야기 해주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어. 노조하고 나니까 그 소리 할 수 있는 게, 너무너무 당당한 것 같아.”
출범식 장소를 정리하며 최인자씨(가명)가 말한다.
 
“이제 조합원들과 다 함께 가는 거죠. 우리 똘똘 뭉쳤다니까. 왜 뭉쳤냐면, 너무 너무 비를 맞고 했는데, 고려대 분회장님이 그랬잖아요. 우리는 그래도 허술하나마 강의실을 빌려 줬다. 그런데 여기는 이름 있는 명문 학교에서 이렇게까지 대접을 해야 하느냐, 그 소리를 듣는데 제가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솟아, 너무너무 우리가 무시당하는 구나. 거기에서 우리가 분노한 거예요. 우리가 똘똘 뭉친 거예요.”
 
“오늘이 제일 좋아, 제일 재미있어”
 
신복기 분회장이 말을 거든다. 출범식이 끝낸 그녀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상기돼 있다. 이명희씨(가명)는 출범식 도중 딸에게 전화가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 출범식 잘 되고 있어? 하더라고요. ‘잘 되고 있긴 한데 밖에서 쫓겨나서 해서 걱정이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딸이 ‘걱정하지 마, 엄마. 오히려 더 잘 된 일인지 몰라.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면 학교가 망신이지. 뼈 속에 물 들어간다고 죽지 않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 그래서 ‘나는 괜찮은데, 다른 데서 지원 나오신 분들이 걱정이야’ 했죠.”
 
그녀는 야무진 표정을 짓는다.
“학교 총무처에서 나와 서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거예요. 저렇게 평소에 막강하게 느껴지던 사람들이 그냥 우릴 지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조합 출범식이 대단하구나 했어요. 우리 같이 힘없는 미화노동자들이 하는데, 저 사람들이 지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힘이 나더라고요.”
 
그녀들을 이끌고 학생문화관 지하로 간다. 학생들이 대동제나 행사를 하고 나서 주로 뒤풀이를 하는 장소다. 막걸리와 보쌈이 준비되어 있다.
 
“학생들 뒤풀이 하고 나면 치우시기만 했지, 이렇게 학교에서 놀아보신 적 없으시죠?”
“없지, 없어.” 대꾸가 빗발친다. 막걸리 잔이 돌아가고 흥에 들뜬 조합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오늘이 제일 좋아, 제일 재밌어.” 몇 주 전 인터뷰를 했던 강미혜씨(가명)다.
 
그날 물어본 말이 있었다.
“여기서 일하시면서 재미있는 일 같은 거 없으셨어요?”
그녀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글쎄, 뭐. 없어. 청소하는데 재미는…. 그냥 일하다가 가고 그거지.”
 
그런 그녀가 “오늘이 제일 좋아, 제일 재밌어”라고 외친다. 체구도 작고 말도 조용조용하던 그녀가 쩌렁쩌렁 목청을 울리며 “언니들 고맙다”고, “하면 된다”고 외친다. (희정)  이어진 기사 보기-> “박봉에 죽어라 일해도, 한 마디 못했어”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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