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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을 꿈꿔보자 
 
사실 ‘읽기’는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문자는 인간지성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것 중 하나이다. 선별적으로 글을 읽는다면 글 읽기는 성장에 대단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를 과용한 결과 글 읽기는 우리 삶을 압도해버렸다. 직접 체험하는 데 써야 할 시간을 다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중 상당수는 글 읽기에 중독되어 있다. 읽는 습관이 지나쳐서 우리의 실제 삶을 질식시키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 동안 읽기에 중독된 경험이 있던 올더스 헉슬리는 이를 ‘병’이라고 불렀다. (윌리엄 코프스웨이트 『핸드메이드 라이프』 4. 배움과 가르침 중에서)
 
우리 집에서 동네 도서관으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데는 보통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나 보다. 물론, 횡단보도 앞에서 빨간 불에 붙들리거나 이웃사람을 도중에 만나거나 가로수와 공원의 나무들이 새 잎을 달거나 꽃봉오리를 터트리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나의 도서관 나들이 경로는 대체로 이렇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 후, 동 입구까지 대개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간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빠져 나와 정문을 통과해, 우리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회화나무 길을 조금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도로를 왼편에, 상가건물을 오른편에 두고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금방 도서관 앞 광장에 이른다.
 
도서관 유리문을 힘껏 열고 들어선 건물 1층에는 어린이 자료실과 일반 자료실이 있다. 빌린 책을 반납하거나 필요한 책을 대출한 다음,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편이다.
 
도서관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좁다란 공원 길로 이어진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도로를 면하고 걷지 않아도 된다. 보행자 전용길이기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 사이 길에는 벚나무와 중국단풍나무가 교대로 나란히 서 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도로 위로 걸쳐 있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를 지나면 우리 아파트 울타리가 나타난다. 이 울타리와 초등학교 사이를 잠시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아파트 후문이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길의 조합이 바뀐다. 평소와 달리, 보행자 길로 갔다 도로가 길로 돌아오기도 하고, 시간에 쫓길 때에는 도로가 길로만 다니기도 한다. 자동차 매연과 소음을 피하고 싶은 날에는 보행자 길만 이용하기도 한다.
 
도서관, 일터와 놀이터인 집의 연장
 
시립 도서관을 걸어서 다니다니, 얼마나 행운인지! 이렇게 가까이 도서관을 두고 살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다. 살다 보면, 이처럼 합리적 계산 없이도 더러 좋은 일이 생겨난다.
 
게다가 도서관이 꼭 필요했던 터였다. 새로 이사한 집 책장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더 이상 책을 꽂을 자리도 없었다. 여기저기 책이 필요할 만한 곳을 수소문해서 책을 나눠주고, 또 나눠줄 만한 책이 아니면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기도 했지만, 새로 책을 구입하기에 책장은 여전히 비좁기만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책장을 구하지 말고-사실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파트 단지에 내다 놓은 낡은 책꽂이를 주워 와도 된다-, 가지고 있는 책꽂이 분량만큼만 책을 품고 살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 결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도서관 덕분이다. 책 소유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나의 도서관 나들이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어느덧 도서관은 일터와 놀이터를 겸한 우리 집을 그대로 연장해 놓은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최근 몇 년간의 동네 도서관 나들이는 초등학교 시절 만화방 나들이, 중학교 시절 서점 나들이와 닮은 것도 같다. 온갖 책을 즐겨보면서도, 특히 만화책에 빠져 있었던 나는 방과 후면 거의 매일 출석하듯 학교 앞 만화방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만화방 출입을 금한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학교 근처 서점을 참새 방앗간으로 삼았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그 어떤 만화방도, 서점도, 헌책방도, 도서관도 이전만큼 내 일상의 중심이 되어 주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절, 행복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지금 내게 도서관 나들이는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주로 일에 필요한 참고도서를 구하기 위해 그곳을 찾아가고 있지만, 집이 일터이다 보니, 낮 시간의 즐거운 외출이 되기도 한다.
 
동네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직박구리를 비롯한 온갖 새들도 만나고, 새순이 돋고 꽃이 부풀고 열매가 맺는 것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도 느낀다. 또 시간이 있으면 공원을 몇 바퀴 천천히 산책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공원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책도 펼쳐 든다. 햇살을 쬐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배드민턴을 치거나 농구를 하는 청소년,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나 애견까지 데리고 다 함께 바람 쐬러 나온 가족 등, 사람구경도 재미나다. 운이 좋은 날엔, 공원 놀이터에서 그네도 탈 수 있다. 이렇게 도서관과 집을 오가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은 진행형이다.
 
또, 도서관에서는 대출을 위해 미리 작성해 둔 목록을 참고해서 서둘러 책을 빌려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책장 하나하나를 찬찬히 둘러보며 보물찾기라도 하듯 ‘흥미로운 책이 없나?’ 이것저것 꺼내 들고 들춰본다. 그러다가 특별히 시선을 잡는 책이 있으면 잠시 눌러앉아 책 읽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 순간, 내게 도서관은 행복한 놀이터로 변한다. 도서관 나들이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의 씨앗을 얻어
 
책을 읽다 보면 한 줄의 글, 한 단락의 글이 생각의 단초가 된다. 잠자던 생각을 일깨워, 작은 생각이 크게 자라도록 부추긴다. 때로는 깊고 심오한 사고로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상상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기도 한다. 또 궁금증,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전에는 미처 접근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생각이 사방으로 촉수를 뻗는다.
 
생각의 단초는 다름 아닌 생각의 작은 씨앗이다. 그 씨앗은 조금씩 잎, 줄기를 달고 큰 나무로 자라길 소망한다. 얼마나 정성껏 돌보고 키우느냐에 따라 꽃도 피우고, 열매도 영그는 튼튼한 나무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비실거리는 허약한 나무가 될 수도 있다. 또, 씨앗에서 제대로 싹도 틔워 보지 못한 채 영영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썩어 없어져 버리기도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잘 자라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고사해버릴 수도 있다.
 
아무튼 무수한 책을 햇살, 비, 흙을 삼아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키워내서 마침내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의 숲’을 꿈꾸며 ‘생각의 씨앗’을 돌보고 키우는 일, 쉽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생각의 씨앗은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속에도 삶에서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귀중한 씨앗들을 줍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통째로 얻는 수도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도서관 나들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과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을 통해 내가 얻어낸 ‘생각의 씨앗’이 무엇인지, 그 씨앗을 키워 어떤 나무로 키워 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함께 ‘생각의 숲’을 꿈꿔 보자. 다만, 생각이 삶의 성장 동력이길 멈추고 생생한 삶을 질식시키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은 항상 중요하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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