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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17) 루이보스와 부부젤라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한동안 보리차와 커피만 마시다가 간만에 녹차와 루이보스차를 한꺼번에 만들었습니다. 막 우러난 녹차의 푸른 빛깔과 루이보스차의 붉은 빛깔이 곱고 맑게 대조를 이룹니다.
 
이 두 가지 차를 앞에 함께 놓고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한 친구를 떠올립니다. 저는 녹차를, 그 친구는 루이보스차를 서로에게 선물하였습니다. 그녀는 ‘붉은 덤불’을 뜻하는 루이보스가 자라는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그녀, “내 팔을 빌려줄까?”
 
▲ 루이보스 차(오른쪽)와 루이보스 꽃(왼쪽)    ©  위키피디아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첫날, 출신 지역 별로 일어나 단체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순서가 되자 다른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과 함께 일어난 그 친구는 아무래도 피부색 때문에 눈에 확 뜨였습니다. 그 중에서 유일한 백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집에 그녀가 살았습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환영파티가 끝난 후 이웃인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발이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굽이 좀 있는 구두를 맨발에 신고 춤을 계속 추다가 발이 퉁퉁 붓고 살갗이 벗겨진 탓이었습니다.
 
계속 뒤처지자 그녀가 제게 다가와 팔을 내밀었습니다. “내 팔을 빌려줄까?”그녀의 팔에 의지하여 뒤뚱뒤뚱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집에 거의 다 와 언덕길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자 머리 위에 풀잎조각을 지고 앞만 보고 가는 개미들의 신기한 행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기영차 이고지고 기나긴 밤길을 얼마나 가야 하는지, ‘잎꾼개미’라고 불리는 농사짓는 개미들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낯설지만 지극히 자연스런 이 풍경 앞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구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누구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두 사람이 내는 소리는 밤과 숲 속으로 나직하게 울렸습니다.
 
끔찍한 인종차별의 역사, 진실과 화해를 구하다
 
▲ 고문의 재연,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청문회 광경  © George Hallet/ South African History Online    

 
그 친구와 저는 자주 만나지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가까이 살았지만 과가 달라서인지 오다가다 스칠 뿐 섞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하고 나서 열린 어느 토론회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나라가 겪은 역사적 경험을 화두삼아 발언하기를 원했지만 발언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해진 토론 시간의 제약 때문에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습니다.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하면 과거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 분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48년 이래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지배했던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에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해방회의가 다수당이 됨으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해 백인 정권 하에서 일어난 악랄한 만행과 엄청난 인권침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설립된 기구가 바로 진실화해위원회입니다. 일반적인 수사절차와 사법절차만으로는 과거사 청산이란 과제를 적절히 수행할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1995년에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백인 정권 하의 인권침해사례를 수사하고 보상과 명예회복 방식을 정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을 듣고 가해자의 사면 여부를 심사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선별된 일부 사건은 방청 가능한 청문회 형식으로 공개되어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내전과 독재 등으로 인한 비슷한 과제를 짊어진 다른 여러 국가들이 설립한 각종 진상조사위원회들 중에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는 특히 성공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데, 총 7천112 건의 사건이 심사되었고 그 중에서 849명의 가해자가 사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읽은 관련 논문에 따르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또한 엄연히 존재합니다. 위원회가 다룬 사건에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의 고위직 관리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위원회와의 관계에서 상호보충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법원이나 검찰 같은 일반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진실화해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성취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과연 진실이 추구되었으며 화해에 도달하였느냐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사실적 진실을 축적하는 데에는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공통의 내러티브나 공통의 이해를 창출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진실화해위원회의 많은 긍정적인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흑백 인종 간에도 흑인들 내부에서도 화해가 바로 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치유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단지 때때로만 들어맞았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용서하겠어.”
  
▲ 눈물 짓는 피해자, 진실화해위원회 청문회 광경  © Iris Films/ South African History Online    

 
수업시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담은 기록영상물을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밤길을 가던 흑인 젊은이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알고 보니 구체적인 증거나 조사도 없이 폭력조직이나 반정부정치조직의 일원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인한 혐의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서 사살한 것입니다.
 
이 흑인 젊은이를 살인한 백인 경찰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출두하여 자신의 행적을 털어놓고 사면을 구합니다. 희생자의 어머니는 경찰이 뒤늦게 공개한 자신의 아들이 쓰러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당시의 증거기록영상을 보다가 몸을 덜덜 떨며 울부짖고는 마침내 기절합니다.
 
또 다른 사건의 희생자의 어머니는 백인들에게 빌붙어 흑인동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신자’와 맞닥뜨립니다.
 
“넌 백인에게 흑인을 팔았어. 네 동포를 판 거야. 네 영혼을 판 거나 다름없어. 넌 수치스러운 일을 한 거다.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어. 그러나 난 너를 용서하겠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용서하겠어.”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교회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고 했지만, 결국 용서에 이른 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2010년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서커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나딘 고디머 ©  William Campbell (
www.achievement.org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한창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나딘 고디머가 월드컵 개막 얼마 전인 이 달 초에 한 영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현지 분위기에 대해 “월드컵에 대한 엄청난 열광이 있는 한편 동시에 끔찍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다”면서 이를 “기이한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빵과 서커스가 필요해요. 이건 큰 서커스에요. 즐겨야죠. 그런데 빵은 어떻게 되었나요?"
 
나딘 고디머는 백인이지만 백인 정권의 무자비한 흑인 학살 등을 목도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의 반인간성을 직시하고, 비합법정치조직이었던 아프리카민족해방회의에 참여하여 아파르트헤이트 반대투쟁에 몸담았던 용감한 여성입니다.
 
월드컵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좋은 일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나딘 고디머는 “(월드컵 개최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이득이 생길지 계산하기 어렵다”면서도 “경기장을 지을 돈이면 오두막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딘 고디머는 투쟁과 타협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한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서 자국의 미래를 낙관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국가의 현 상태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대단한 나라에요. 많은 것들이 있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절대적으로 이기심 없이 다 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극복할 수 있었듯이 현재의 문제들을 의연히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부부젤라 그리고 먼 북소리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지금, 중계방송으로 경기장 관중들이 전통 나팔 부부젤라를 불며 소란스런 응원을 하는 광경을 지켜봅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본 또 하나의 장면이 기억 속으로 이어집니다.
 
학교 뒤 숲 속 호숫가에서의 캠프파이어, 밤이 깊어지자 북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춤을 춥니다. 북소리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이 점점 불 가까이로 모여듭니다. 불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원이 되기도 하고 줄이 되기도 합니다.
 
둥둥둥 북소리가 심장소리처럼 점점 더 빨라지고 춤사위는 한층 거세지며 입에서도 짐승 소리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불 가까이로 다가가면 숨이 막히고 북 가까이로 다가가면 귀가 먹먹해집니다.
 
구경꾼이 중얼거립니다. “야, 대단한데, 근데 대부분 아프리카 친구들이야.” 갑자기 코스타리카의 숲이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춤추는 아프리카 친구들 속에 제 이웃인 그녀가 있습니다. 팔을 높이 쳐들고 공중으로 발길질하며 동료들과 거침없이 어울리는 그 모습으로부터 야생의 기운이 넘실거립니다.
 
구경꾼이 한 번 더 중얼거립니다. “음, 그렇지, 그녀도 아프리카 사람이니까.” 북소리가 멈추고 막 정지한 그녀의 곁에 다가가자 흙냄새, 풀 냄새, 땀 냄새가 훅 하고 진하게 끼쳐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 사람인 것입니다. 이전 글보기-> 아르헨티나, 물 아래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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