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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의 여성수난극, ‘여성 할례’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4) 버자이너 다이얼로그 ⑥

                                                                                                                 <여성주의 저널 일다> 공숙영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코스타리카를 함께 다녀온 친구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NGO 활동을 하게 되어 최근에 현지로 떠났습니다. 이 친구는 코스타리카에서 아프리카 지역 출신 친구들과 친밀하게 지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니 몸에 잘 맞는 옷을 골라 입은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친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일을 주로 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그녀가 희망과 용기와 지혜를 갖고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잘해내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직면하는 위험 중에서 이른바‘여성할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코스타리카에 함께 다녀온 또 다른 친구 덕택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내내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억압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 친구는 언론에서 이 문제를 접하고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기회 닿는 대로 다른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곤 했습니다. 저 역시 질문을 받았지만 관심과 지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견해를 표명하기는 어려워서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정말 끔찍하구나.”
 
그때 친구는 ‘할례’를 당한 아프리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사막의 꽃(원제: Desert Flower)>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꽃, 비밀을 털어놓다
 
 
▲ 와리스 디리의 책을 토대로 한 영화 <Desert Flower>의 스틸사진 © 출처: DAUM 영화 

와리스 디리(Waris Dirie, 1965~)는 에티오피아와의 국경에 인접한 소말리아  사막 지역에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름 ‘와리스’는 소말리아 방언으로 ‘사막의 꽃’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열세 살 나이에 나이든 남성과 억지로 결혼해야 할 위기에 처한 와리스는 집을 떠나 친척을 찾아다니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우연히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기에 이릅니다.
 
성공한 모델로서 바쁘게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의 오래된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중간에 기자는 녹음기를 끄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해요. 끔찍해요. 요즘에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 끔찍한 일이란 바로 ‘여성할례’입니다. 그녀의 책 <사막의 꽃>에는 와리스의 언니가 먼저 ‘할례’받는 광경과 와리스 자신이 ‘할례’받는 광경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기를 절제당하는‘할례’를 받을 때 와리스의 나이는 다섯 살 정도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위 쪽을 보았다. 마치 바위 위에서 가축을 도살한 것처럼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잘려나간 내 살, 내 성기가 바위 위에서 가만히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고 있었다. (중략)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자 할 일이 있었다. 누워 있는 동안 매일 생각한 일이다. 집시 여인이 나를 칼질한 순간부터 몇 주 동안. 그것은 바로 내 성기가 잘려나간 그 바위로 돌아가서 살 조각이 남아 있나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프리카 먹이사슬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는 독수리나 하이에나가 먹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역할은 썩은 고기를, 사막의 고된 삶의 음울한 증거물을 깨끗이 먹어치우는 것이다.”
 
‘할례’행위 자체의 끔찍함에 더하여 그 후에 일상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통 또한 엄청납니다. 성기 외부의 돌출된 부위를 다 잘라내고 소변과 생리를 위한 최소한의 ‘구멍’만을 남기고 다 꿰매버린 결과, “남겨놓은 구멍이 너무 작아서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졌기 때문”에 소변보는 데에만 십분 가량의 시간이 걸립니다.
 
생리가 시작되자 생리통은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닥쳐옵니다. 작은 구멍으로 생리혈이 원활하게 나오지 못해, 자궁 안에 고이는 피의 압박으로 심한 통증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픔이 덜할까 고민하던 나는 사막으로 되돌아가서 나무 밑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파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나무막대기를 가지고 파고 또 팠다. 어느새 구멍은 내 하체를 묻을 수 있을 만큼 깊게 파였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서 모래를 채웠다. 땅 속 구멍은 시원했다. 마치 얼음찜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낮의 더위가 가실 때까지 그렇게 하고 쉬었다. 매달 생리가 시작되면 나는 땅을 파는 방법을 이용해 고통을 견디어냈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여성성기절제 반대 캠페인을 위한 포스터 © Amnesty International  

나중에 성인이 된 와리스는 런던에서 수술을 받아 꿰매진 성기를 복원합니다. 정상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게 되고 생리통도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하여‘할례’를 받기 전으로 원상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할례의 경험은 아직도 나를 못 견디게 괴롭힌다.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건강상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나는 나에게 금지된 섹스의 즐거움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몸이 온전치 못한 불구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얼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절망적이다.”
 
그녀는 ‘할례’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깨닫고 고심 끝에 자신이 ‘할례’받았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합니다.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할례를 받게 된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낸다면 내가 당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이유는 찾지 못하고 분노만 더해갔다. 나는 평생 담아두고만 있던 나의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할례’가 자신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점 또한 자각한 와리스는 ‘여성할례’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나는 ‘피해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너무 무력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집시 여인이 날 난도질했을 때 나는 바로 피해자였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그리고 반대 운동에 앞장설 수도 있다.”
 
오랜 여성억압의 산물, 여성 성기 절제
 
문화적이고 관습적인 이유로 여성 성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현상을 오늘날 국제사회는‘여성 성기 절제'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또는 'FGC(Female Genital Cutting)’- 라 부르고 있습니다.
 
여성의 성적 쾌락을 억제하고 ‘혼전순결’을 보전하려는 목적을 가진 여성 성기 절제는 수천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 등 서양에서도 이루어졌는데, 20세기에 들어서도 미국에서 자위행위를 막기 위해 다섯 살 먹은 어린 여자아이의 음핵(클리토리스)을 절제했다는 의료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인구기금(UNFPA)을 포함한 10개의 관련 국제기구는 2008년에 ‘여성 성기 절제 폐지하기(Eliminating Female Genital Mutilation)’란 제목으로 합동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성명서에 따르면, 여성 성기 절제가 관습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에서 여성 성기 절제는 여성이 사회구성원이 되는 데에 필요한 ‘통과의례’이자 성인이 되는‘성인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여성들은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불명예가 되고 배척당할까봐 순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성기를 절제하지 않은 여성은 결혼하기 어렵다는 관념이 팽배해있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의 이민자 집단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전통을 부활하기 위해 딸들에게 성기 절제를 시키고 있어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잘리고 봉합된 ‘버자이너’ 
 

▲ 여성 성기 절제 반대시위, 케냐 © MYWO (케냐의 여성건강권단체)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조사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9세 이상의 소녀와 여성 중 9천1백5십만 명이 성기 절제를 당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매년 3백 만 명의 소녀가 성기 절제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국가별 자료에 따르면 15세에서 49세 사이의 여성 중에서 에티오피아(2005)에서는 74.3%가, 수단 북부(2000)에서는 90%가, 소말리아(2005)에서는 97.9%가 성기 절제를 당한 상태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유엔아동기금 및 유엔인구기금과 공동으로 여성 성기 절제의 실태조사를 하여 절제 부위와 정도에 따라 여성 성기 절제를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와 수단, 에티오피아의 경우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여성 성기 절제가 이뤄집니다. 와리스의 사례에서 이미 본 바와 같이, 음핵과 음순을 포함한 성기 외부를 모두 도려내고 작은 구멍만 남겨 놓은 후 질 입구를 실로 꿰매어 봉합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기가 절제된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이 칼로 봉합된 여성의 질 입구를 열어서 성교를 한다고 합니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의 폭력
 
코스타리카 학교에서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에 출연한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무대 위에서 그녀들은 당당하고 즐겁게‘버자이너’를 외쳤지만 자국에서 어떤 일을 보고 겪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인해 연약한 ‘보지’를 잘리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부디 그녀들이 그러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훼손당하지 않은 자신의 몸을 갖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어서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다/ 공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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