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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27) 태풍이 지나간 다음  
 
도서관 건물 옆 길바닥에 스트로브 잣나무가 동강난 채 누워 있었다. 지난 태풍 ‘곤파스’의 흔적이다. ‘곤파스’는 온 동네 나무들을 거침없이 훑고 지나갔지만, 그 어떤 나무보다 스트로브 잣나무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도서관의 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몸집에 비해 뿌리가 너무 빈약해서 세찬 바람을 견뎌내지 못한 탓일까?
 
벌써 태풍이 지나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도서관 주변 곳곳에는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이 아직도 작은 무덤처럼 쌓여있다. ‘곤파스’가 나무에게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 동네를 지나갈 즈음에는 이미 힘을 많이 잃어 더는 강한 태풍이 아니었지만, 거리의 간판을 떨어뜨리고 창문을 박살내고, 지붕을 날려 보내는 등 도시 전체를 불안과 공포로 움츠려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난 도서관에 간 김에 지난번 읽다가 반납한 어네스트 지브로스키2세의 <잠 못 이루는 행성(코기토, 2002)>을 다시 빌려왔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인간을 두렵게 하는,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지구, 그 지구의 이야기가 불현듯 궁금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 
 

▲ 어네스트 지브로스키2세의 <잠 못 이루는 행성>(코기토, 2002) 표지
 
한 번의 자연 재해로 문명이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섬뜩하다. 오래 전 화산폭발로 완전히 소멸해버린, 에게해의 미노스(크레타) 문명이 그렇다. 실내의 프레스코 벽화로 미루어 보건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예술이 번창했던 사회, 남녀가 평등하게 살았던 평화로운 사회였다. 그런데 그토록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가 한 순간에 화산재 아래 파묻혀버린 것이다. 자연은 참으로 냉혹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토록 놀라운 재난을 일으키니 말이다.
 
그렇다고 자연이 악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 인간은‘끈적거리는 행성 내부물질 위에 떠다니는 단단한 물질의 얇은 판’위에서 살아간다. 이 판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 아래로 움직이며 표류하기를 계속한다. 바다도 이 불안정한 판 위에서 이리저리로 떠밀려 다닐 뿐이다.
 
그리고 이 지구라는 행성은 축을 따라 쉼 없이 놀라운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에 세찬 바람도 일으키고 폭우를 퍼붓기도 한다. 지구가 이렇게 도는 동안 수많은 소행성들(직경 1km 이상의 물체)을 포함한 외계 물체들이 지구 주변을 지나간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 의하면, 하루에도 지구를 통과해가는 물체가 5천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지구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만이 지구를 독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체들과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이들은 인간보다 더 짧은 생을 살면서 더 빨리 진화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태풍, 홍수, 산사태, 소행성 충돌,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재해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일 뿐이다. 재난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운명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인간은 탄생 순간부터 그 운명을 나름대로 감당해 왔다. 생명의 진화와 문명의 발전이란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인간이 무시무시한 자연재해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한 세기도 안 되는 수명, 지구물리학적 시간에 비할 때 턱없이 이 짧은 수명 덕분이라는 저자의 진화론적 해석이 흥미롭다. 긴 시간 간격을 놓고 발생하는 자연재해에 비할 때 인간 개개인의 수명은 너무나 짧지만, 번식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라서 진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개인에게 자연재해는 목숨을 요구하는 잔인한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 전부가 겪어내야 하는 재해가 아니라면, 누군가는 살아남아 진화하고 문명을 이어갈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인간 개개인을 챙기지 않는다. 아니, 자연은 인간 자체에 무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관심한 자연 앞에서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에게서 받은 것을 이용해 제 살 길을 찾는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멸종의 길을 갈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싶다. 인간이 자연의 예외적인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
 
도시가 자연을 더 두렵게 만든다
 
언젠가부터 인간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복종하기보다 자연을 마음껏 정복하고 굴복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역사 속에서 자연재해를 멋지게 제압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인간이 건설한 도시문명은 많은 사람을 한 장소에 모아 긴 시간 머물게 함으로써, 자연은 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물론, 자연이 어리석은 인간에게 화를 내고 벌을 주는 인격적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즉, 인간이 집을 짓고 댐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한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자연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강력한 태풍 때문에 집을 잃었다고 한탄하면서, 태풍을 집의 파괴 원인으로 삼지만, 이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해석이다. 오히려 집과 바람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집이 무너졌다고 해야 정확하다. 집의 존재 자체, 도시라는 공간이 세찬 바람, 강렬한 폭우, 심각한 지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간은 종종 무시한다.
 
전염병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병원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구밀도와 유동성이 필요한데, 교통이 발달하고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는 그것이 변이를 일으키고 진화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 된다. 도시가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새로운 전염병이 생겨날 기회도 그만큼 증가한다. 결국,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전 인류를 멸종시킬 만한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인간의 도시문명은 자연을 극복한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바로 그 문명으로 인해 인류가 자연의 무대에서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정확한 일기예보는 불가능하다  
 
▲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Kompasu)>의 위성 사진  © 기상청      

 
인간이 지금껏 자연정복에 이용해 온 과학도 자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서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나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수 주일이 지나 미국 동부해안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생각해 보라. 이 개념은 태풍, 지진, 화산폭발과 같은 거대한 자연현상이 초기의 작은 변화에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현대과학은 자연의 복잡한 연쇄작용을 관통해 자연재해를 야기하는, 초기 상황의 작은 교란을 포착해낼 능력이 없다. 따라서 자연재해의 예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얼마 전 한반도에 충격을 주었던 태풍 ‘곤파스’만 해도 속도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태풍경보를 제때 발령하지 못했다며 다들 기상청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인간이 전 지구적 차원의 기상 변수들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고, 변수가 늘어날수록 측정시간도 길어져 제때 예보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컴퓨터도 대기분자의 위치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 태풍처럼 세밀한 예측이 필요한 경우, 아무리 최신 장비를 동원한다 해도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든 자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일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비만 날아도 바람이 달라진다면, 건물 몇 채만 짓고 부숴도 바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자연바람과 인공구조물의 그 복잡한 상호작용을 어떻게 낱낱이 파악할 수가 있겠는가. 과학의 한계는 분명하다.
 
인간은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지만, 그 질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저자와 같은 과학자는 과학의 발전을 통해 최악의 자연재해는 어느 정도 비껴갈 수 있으리라 낙관한다. 다만 현재의 과학으로는 힘들고, 자연재해처럼‘재현 불가능한 복잡한 현상’을 위한 새로운 과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과연 지적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지적 성장이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과학과 도시문명이 인류를 자연재해로부터 지켜주지도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도리어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길을 막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 인류 문명 전체가 결국엔 미노스 문명의 운명과 같이 한 순간에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 인류가 밤잠을 설쳐도 부족할 판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은 홍수, 가뭄, 태풍, 지진, 화산폭발 등으로 아우성이다. 이 위협적인 자연 재해 앞에서 지금 우리 인간은 새로운 과학을 찾아 나서기에 앞서, 자연의 작은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윤리적 성찰부터 서두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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