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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차우진의 노래 이야기 (5)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일종의 농담이었다. 개그맨이 90년대 인기 가요와 뮤직비디오 패러디를 위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든 경우였으니까. 만약 UV가 미니홈피에 저렴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걸로만 끝났다면 사후적인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앨범이 나왔다.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신곡도 나온다. 마침내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제대로 말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진지하다. 여전히 이들에게는 (개그의 연장으로서) 뮤직비디오가 중요하지만 음악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수록곡을 관통하는 정서나 방법론 같은 것들을 살펴보게 된다. 여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90년대의 감수성을 환원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음악들이 모조리 연애에 실패한 남자의 자조란 점이다.
 
90년대? 뭘 모르고 ‘쿨’한 척에 바빴지
 
▲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수록된 UV의 디지털 싱글 앨범 <Do You Wanna Be Cool?> 

 
“Intro”는 솔리드 풍의 알앤비로 시작된다. 물론 이 ‘인트로’의 역할은 이 앨범이 개그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다. “솔로 준비 하냐? UV하니까 좋냐?”로 이어지는 유세윤의 멘트는 이 프로젝트가 결코 음악적인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개그의 일환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시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999”가 듀스의 비트를 빌려오고 “~구”로 이어지는 아련한 라임을 구사할 때 이건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결과물이 된다.
 
앨범에 사용된 ‘싼티’나는 미디를 비롯해 긴장감 없는 내레이션마저 20여 년 전 청춘들이 하나쯤 구해 듣던 ‘X세대 인기가요’를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999”와 “집행유애”는 듀스와 룰라를, “Game”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식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집어넣은 마지막 곡 “쿨한 나”는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그러니까 90년대는 ‘쿨’의 시대였다. 그때는 ‘찌질하다’거나 ‘간지난다’거나 같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게 ‘쿨’해 보이던 시대, 사랑도 이별도 진로도 인생도 어쨌든 ‘재미’가 우선되어야 그럴듯해 보이던 시대였다. 그래서 UV가 ‘쿨’이란 단어의 뜻을 ‘찌질한 것’으로 비틀 때 그 시대의 노스탤지어가 함께 환기된다. 그때는 뭘 모르고 쿨한 척 하느라 바쁜 시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연 후에도 ‘드럽게 달라붙는’ 남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 노스탤지어를 좀 더 뜯어보면 또 다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연락하지 말자고 해놓고 드럽게 달라붙은 남자’의 이야기다. “난 쿨하지 못해 / 넌 쿨해 넌 참 좋겠다 그래 참 좋겠다 / 나만 울어 너는 웃어 나는 울고 너는 웃어”로 이어지는 가사는 실제 연애의 과정이야 어쨌든 관계의 종말 이후의 장면만 보여준다. 연애가 끝장난 뒤에 남자는 상처받았고 또 좌절했다. 하지만 여자는 돌아서서 웃는다. 물론 남자가 그걸 확인한 건 아니다. 실제로 그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잘 지내는 거라고 상상할 뿐이다.
 
이 망상은 마침내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녀의 흔적들을 통해 확신으로 바뀐다. 미니홈피 음악이 바뀌었어, 친구들과 그새 여행을 갔어, 혹시나 해서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너무 잘 지낸데……. 뭐 이런 식이다.
 
그가 새벽에 문자하고 전화하고 미니홈피를 배회하면서 ‘드럽게 달라붙는’ 건 사실 그녀보다 더 많이 사랑해서다. 그걸 쿨하지 못하다고 단죄할 수 있는가. 유세윤은 그렇게 묻고 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는 진지하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웃는 건 그의 진지한 질문이 정작, 개그맨이라는 정체성 아래로 감춰지기 때문이다.
 
▲최근 발매된 UV의 디지털 싱글 <연예인 D.C> 

 
최근에 공개한 “연예인 D.C”란 곡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유세윤은 ‘나도 연예인이랑 사귀어봤어’라고 운을 뗀다. 귀가 솔깃하다. 그런데 이 노래는 “쿨하지 못해 미안해”보다 더 직접적이다(여자 목소리가 등장한다!). ‘너 요즘 잘 나가더라 / 나랑 같은 방송 할 정도로 말야 / 좀 떴어 그래 좀 떴어 / 너 연기 때려 치고 노래하니 좋니’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여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어머 유세윤씨 안녕하세요.’라는 이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는 사뭇 재수 없게도 들린다. 당황한 유세윤이 ‘아, 네...’라고 대답하자마자 여자는 ‘방송, 잘 보고 있어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하고 사라지는데 이 과정은 온전하게 ‘성공을 위해 연인도 배신한 여자’의 내러티브를 재현한다. 요컨대 이 노래는 여성을 자본주의 욕망과 대치시켜놓고 산업화 이전의 낭만주의에 젖은 남성을 배신하고 도시로 떠난(혹은 다이아몬드를 선택한) 고전적인 시나리오를 반복한다.
 
성찰하지 않는 남자, 노스탤지어에 기대다
 

이때 상처받은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뿐이다. 그 옛날 그녀(보통은 소녀)는 순수하고 순진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사라지고 없다. 그녀의 진정성은 무엇 때문에 사라졌는가. 혹은 누가 그녀로부터 그걸 빼앗았는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속적인 건 분명하다. 왜냐면 남자는 실연에 상처받을 만큼, 세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시나리오가 남자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자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엔 오직 남자를 버리고, 상처 입히고, 떠나서 성공한 여자에 대한 얘기만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이별 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모른다는 점에서, 이건 ‘사실’이 아니다. 그냥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남자는 성찰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어떤 것’을 재구성할 뿐이다. 그게 ‘노스탤지어(nostalgia, 향수)’다.
 
노스탤지어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시대가 변했다. 90년대에만 해도 실연당한 남자가 여자 집 앞에 가서 울부짖고 회사 앞에 찾아가는 일 정도는 관대하게 넘어가줬다. 그게 범죄일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미니홈피를 들락거려도, 새벽 3시에 ‘자니?’라고 문자를 보내도 스토킹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수 있다.
 
애초부터 남의 입장을 생각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그렇게 자라온 남자들은 연애에서도, 실연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이 사랑에 쉽게 상처받고 좌절한, 요컨대 코너에 몰린 남자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어쩔 줄 모른다. 세상은 이 마초들에게 점점 각박해지고 좌절한 마초는 언젠가 좋았던 시절, 그게 실제로 있었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지금보다 좋았을 것 같은 어떤 시간’을 그리워한다.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UV는 바로 그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이건… 농담이 아니다.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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