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여덟째 이야기 마을 진입로에 한들거리던 코스모스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흰 날개를 펄럭이며 논 위를 날던, 다리가 길고 가는 새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붉고 희게, 또 더러는 분홍으로 빛나던 꽃들의 자리는 추수하고 널어놓은 누런 나락들 차지가 된 지 오래고, 한동안 텅 비어 있던 논은 이제 시꺼먼 거름을 뒤집어쓰고는 양파 밭으로 변신하려 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이, 겨울이 이미 우리 동네 입구까지 와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내 등을 떠미는가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건 꼭 이 무렵이다. 슬슬 월동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인 건 둘째고, 그보다는 추위에 약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따뜻한 어디론가 달아날 궁리를 하는 마음을 지켜봐야 하는 탓이다. 이럴 땐 서점에 가도 꼭 여..
가을 지리산 종주 이야기 천왕봉으로 가기 위해 첫날밤을 치렀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더부룩한 속을 탄수화물로 채웠건만 끝끝내 햇발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스름한 하늘이 몇 줄기 햇빛으로 찬란하게 갈라지는 풍경은 볼 수 있었다. 예상보다 몸이 가벼웠다. 다리는 땡땡하지 않았고 사뿐사뿐 걸을 수 있는 몸이었다. 단 배낭의 무게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첫날 화엄사 계곡을 오르던 것에 비해선 분명 길은 수월했다. 들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랄까. 새빨간 단풍잎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는 그녀들 둘째날 코스는 노고단에서 돼지령, 임걸령 샘터, 반야봉, 노루목,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총각샘, 명선봉을 거쳐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