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은행나무의 수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서 삶의 경이를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짚신벌레, 뱀, 나무에게서 누가 경이로움, 경외감, 존경 따위를 느낀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이들도 경이로운 존재이며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조안 말루프 아르고스, 2005) 그날 밤 나는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집어들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혹감, 분노, 두려움이 뒤엉킨 복잡한 심리상태를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 어쩌면 책을 읽고 싶었다기보다 기도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날 심은 은행나무가 그렇게 처참한 ..
집 근처 겨울 산에서 매서운 겨울추위가 한풀 꺽인 요즘, 다시 집주변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눈 내린 다음날엔 나무도 길도 산도 온통 은빛으로 반짝였는데, 며칠 지나 들러보니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남쪽 사면에 자리 잡은 삼림욕장에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로 벌써 봄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입구 쪽 나무들은 이고 있던 눈을 털어내고 한결 몸이 가벼워 보인다. 길 위를 두텁게 덮고 있던 눈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시작부터 미끌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지 않아도 되니 몸도 마음도 부담 없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간다. 부산스런 사람들, 말 없는 나무들 약수터에 물 길러 온 사람들, 함께 놀러 온 가족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는 등산객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산책나온 노인들, 산의 초입부는 사람들로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