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읽고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22쪽) ▲ ‘살롱드마고’에 입고된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난다, 2021) ©달리 절망은 익숙하고, 희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죽음은 매혹적이고, 삶은 지긋지긋한 숙제 같았다. 우울했던 10대의 그늘을 안고 입학한 대학 신입생 시절, 공강 시간을 때우러 혼자 학교 도서관에서 죽치곤 했다. 볕도 잘 들지 않고 먼지가 쌓여 퀴퀴한 시집 코너에서 최승자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우연히 펼친 그의 시는 첫 장 첫 구절을 읽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동..
삼일절과 세계여성의날 사이, 기억해야 할 여성들[페미니스트의 책장] 곰밤 『이 세상에 만약 남자가 업다면』 곰밤 저 『이 세상에 만약 남자가 업다면』(뉴트미디어, 2019) 표지 “이 세상에 만약 남자가 업다면”이라는 책 제목에서 맞춤법이 어색한 건 1929년 2월 1일 잡지 에 실린 여성주의자 허정숙의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단발 여성이 열 손가락에 꼽힐 때’ 주세죽, 고명자와 함께 과감히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물놀이를 하던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세상에 남자가 업고 여자만 산다 하야도 우리 생활상에는 하등 문제가 업슬 것이다. 현재 사회제도나 경제조직으로 보면 여성은 남성의 지배와 보호를 밧지 안으면 살지 못할 것 갓지만은 만일 남성이 모도 업서지고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