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가난의 관계를 생각하며 산행동무였던 이웃화가가 도시를 벗어나 멀리 이사를 갔다. ‘가난이 무서워’ 도시를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닌 듯했다. 시골에 간다고 해서 그녀가 가난을 벗어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도시에서 가난한 것이 무서워, 아니 도시에서 가난하면서 행복하기 힘들어서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도시에 머물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큰 돈을 벌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생존할 만큼은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도시 삶을 선택함과 동시에, 그림 그릴 여유도, 자연과 벗하는 한가로운 삶을 살 기회도 박탈당하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가 실패한 삶은 ‘도시에서’ 생존할 돈을 마련하면서..
구매력에 의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시대 매일 매일 흘러나오는 뉴스 중 태반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이거나 충격적인 것들이다. 예컨대, 일가족이 승용차 안에서 분신자살을 했다거나 자식을 죽이고 자기도 독약을 먹었다거나 하는 뉴스들 말이다. 그런데 그 죽음의 이유는 ‘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신용카드는 자살만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살인’도 부추긴다. 폭력에 저항할 힘이 약하다고 판단되는 여성들은 신용카드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젊은 남성들에게 두드려 맞고 목 졸림을 당하고 급기야 살해되어 암매장까지 당한다. 그뿐인가, 그 얄팍한 플라스틱의 지배력은 엄청나서, 소녀들에게 소위 ‘원조교제’를 하게 만들고 젊은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감행하게 한다. ‘몸’을 팔아서라도, ‘장기’를 팔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