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춘신의 생활문학’ (8) 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출렁대는 양은주전자 주둥이로 막걸리가 찔끔거린다. 흙먼지 내려앉은 무릎을 타고 종아리를 거친 막걸리가 고무신에 고인다. 양조장 지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뛰다시피 걸었다. 땟국물이 흐르는 찐득거리는 검정 고무신에 한 모금 나도 한 모금. 신작로 한길 가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양은주전자를 내려놓고 쉬어가는 참이다. 고무신 가득 흙을 퍼 담아놓고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왕자표 운동화에 새겨진 ..
“선생님, 저 그날 독후감 일곱 개 다 쓰고 잤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예슬이가 말했다. “일곱 개를 다? 정말 대단한데!”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그렇죠! 아마도 전 천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요.” “내가 봐도 그래. 예슬이는 천재임에 틀림없어! 참, 수진이 지난 주에 못 나온 게 혹시 방학숙제 때문?” “그건, 아닌데…….” 지난주에는 수진이가 오지 않아, 지민이, 예슬이와 수업을 했었다. 아래층에 살고 있어, 할머니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수진이가 오늘은 뭘 하느라고 공부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알려주신 터였다. 난 이유는 묻지도 않고 알겠노라고 대답을 드렸었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예슬이가 내일이 개학이라는 사실과 독후감 숙제를 오늘 내로 일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