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눈이 오다 비가 오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필요한 책이 있어 주섬주섬 입은 옷에 비옷을 걸치고 우산을 챙겨서 도서관을 향했다. 지난번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 서가의 책들도 검토해보고, 또 집에서 참고할 책도 빌려와야 하니 말이다. 집에다 필요한 책 모두를 갖춰놓고 일할 처지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동네 도서관을 나의 도서관으로 삼기로 했으니,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을 구하려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나처럼 도시에서 정신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일이 많다고 할 수 없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처럼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니, 도서관까지 책을 구하러 다니는 몸수고는 내게 꼭 필요한 일인 셈이다. 인간이 정신과 몸을 가진 생명체..
일, 놀이, 휴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난 하는 일은 많아도, 소위 말하는 ‘직업’은 없다. 그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공개석상에서, 또는 서류상으로 직업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잠시 머뭇거리며 곤란해 하곤 한다. 일에 대한 질문조차도 돈벌이에 대한 것이며, 그 돈벌이는 일상의 상당부분을 바치는 것이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 돈벌이에 해당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번역가라거나 철학선생이라거나 철학교육프로그램 제작자라고 어정쩡하게 대답하고 만다. 하지만 내 속에는 다른 대답이 있다. 동네 꼬마들이 신기해하며 불러주는 ‘철학자’라든가, 좋은 일상을 고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나 스스로에게 붙인 ‘종합생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