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어떤 말에는 주술적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실보다 바람의 효용이 센 병실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주로 그랬다. J언니의 수술실 밖에서,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어둡고 습했던 그의 지층 집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말에도. 다른 누가 아닌, 말하는 자신이 듣고 믿고 싶은 말들. 그런 말들은 꼭 두 번씩 발화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검사 결과를 전하는 J언니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두 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언니의 그 말에도 주술적 기원이 실리지 않았을까. 몽땅 다 거짓말이어서 앞으로 걱정 덜하고 살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몇 번의 경험을 지나온 지금에야 무거운 ..
환청에 대한 도전적 해석, ‘목소리 듣기 운동’아픈 몸, 무대에 서다⑨ 질병 세계의 언어 만들기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아픈 몸이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질병 서사! 지난 몇 년간 이 이야기를 참 열심히 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질병 서사는 당연히 질병을 극복하는 서사가 아닌 건강 중심 세계를 향한 저항 서사다. 연극 는 저항적 질병 서사를 통한 ‘아픈 몸들의 사회적 말하기와 개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아픈 몸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의사나 정책전문가들에 의해 규정되던 식민화된 몸을 벗어나, 스스로 발화하는 몸으로 변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