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덕을 보는 건 여자가 아니라 기업『세탁기의 배신』 서평 에세이 초유의 최장 장마를 보내자니 빨래 시름이 깊어진다. 빨래야 세탁기가 한다지만 말려 나오는 것은 아니니, 여름이라 더 자주 나오는 빨래 건조가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세탁물 건조 고민을 하는 내게 지인이 내놓은 선선한 해결책은 건조기였다. 건조기는 남의 나라 얘기인 줄 알았던 내게, “여태 그걸 안 쓰냐”며 밉지 않은 잔소리를 한 지인은 건조기의 장점을 입이 마르게 칭송했다. “건조기 쓰고부터 우리 애들은 집이 호텔인 줄 안다니까. 수건을 한 번 쓰고 버려. 널 걱정 건조 걱정 한 방에 해결. 진짜 좋아. 전기료 얼마 안 나오니 당장 사요.” 전기료가 얼마 안 나온다는 말에 잠깐 팔랑귀가 된 나는 건조기를 검색해 보았다. 알고 보니 몇..
신사임당 동상 앞에서 이이효재 “조선조 사회와 가족”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찾아가 할 말을 잃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십 년이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 더욱 싱싱하고 원기 왕성했다. 건물에도 ‘싱싱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하늘 아래 우뚝 선 그 위용은 기억보다 더 거칠 것 없었다. 이건 되레 당황스러울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는 몸처럼 건물도 그렇다고 여겨 적당히 빛바랜 호젓함을 상상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학교는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도 붉은 벽돌에 이끼 하나 끼지 않았으며 양 옆에 신축 건물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 서 있는 나는 작게 느껴졌다. 검은 재킷에 회색치마를 입은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