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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6)
지연 선배를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다. 볼 일이 있어서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길에 잠깐 만나자는 선배의 연락을 받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길을 나섰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2,3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지만, 이혼 직후 대학원을 다닐 때는 그녀와 곧잘 어울려 다녔다. 선배는 나보다 꼭 12살이 많았고, 당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녀는 남편과 중학생인 아들과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나이에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내가 이혼을 했다는 건 대학원 동료들은 물론, 교수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선배는 달랐다. 선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녀와 가까워지면서야 나는 선배가 남편과 십 수년 전부터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이 갓난 아기였을 때 남편은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 나쁜 버릇을 고치면 함께 살겠다!”고 선언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상태로 살면서, 항상 “이혼은 언제 해도 되잖아” 했단다. 그러면서 남편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온다면, 기꺼이 함께 살 거라는 희망을 내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이혼을 안 한 채 젊은 시절을 보내는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이혼을 원하지 않는 그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어 한 번도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를 통해, 나는 지연선배의 세대와 내 세대가 얼마나 다른지 깨닫곤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12년이라는 간격 속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행동의 차이를 본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답답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어리석게 생각할지 모른다. 앞선 세대 여성들은,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여성일수록 이혼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아이가 있다면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가 이혼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인 것을 보면, 정말 많이 다르다.
물론, 그녀와 다른 것은 세대 차이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별거를 시작하면서 아기를 친정에 맡기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공부를 접고 돌아온 후, 한국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래서 항상 지연선배는 아이와 떨어져서도 잘 살고 있는 나를 대단해했다. 그녀는 많이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참고 유학을 마쳤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난 재혼을 하지 않았고, 그녀도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서로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나도, 선배도, 옛날에는 나누지 않던 각자의 상황을 좀더 편하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녀는 간혹,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까? 너나 내 심정을 알지” 하며, 다르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와 실존적인 문제를 화제 삼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 역시 아무에게나 쉽게 표현하지 않는 생각들을 꺼냈다.
“언니, 저는 아이를 보내면서 새엄마가 문제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걸 알았다면, 아이를 절대로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아이를 키웠다고 좋은 건 아니야. 지금 아들은 그런 나를 고마워하며 잘 챙기지. 그러나 부담도 크게 느끼는 것 같아. 아이에게 이런 부담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를 좀더 많이 낳았으면 좋았을 걸.”
“저는 재혼해 다시 아이를 낳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우습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에요. ‘저렇게 복잡하고 구질구질하게 왜 살지?’하면서, 제가 선택한 삶을 마치 깔끔하고 잘난 것인 냥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내가 바보구나!’ 해요. 재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라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야 생각하게 되요. 너무 바보죠?”
“나도 그래. ‘이런 사람과는 못 살지!’ 하면서 집을 나오면서, 바람 피는 남자와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 같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보였어. 이혼을 안 할 거라면, 그들이 지혜롭지 않았나 생각해.”
“그럼, 언니는 다시 태어나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쩔 건데요? 저는 바보 같은 이 선택을 다시 할 것 같아요.”
“으음, 나도 그럴 것 같다. 하하!”
“하하하!”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만난 그녀는 옛날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살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이 더 늙고 기운이 떨어져야 할까?”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과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는 걸 한눈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뭐 때문에 그런 바보 같은 꿈을 꾸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날도 이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녀도 그랬겠지! 아이를 키우지 않아 자유로웠을지 모르지만, 결국 아이를 잃지 않았느냐고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녀의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선배도 그럴 것이다. 선배도 감히 이런 생각을 표현할 수는 없었으리라. 게다가 내가 선배를 안타까워하는 것만큼,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내 선택과 행동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워 보일까 생각하면서, 속으로 쓸쓸히 웃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선택이 최선이었다. 남편과 관련해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딸과 관련해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면, 또 후회와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일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렇게 자기 수준에서, 자기 한계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세월을 빠져나가겠지. 그렇게 인생을 걸어가겠지.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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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선배를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다. 볼 일이 있어서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길에 잠깐 만나자는 선배의 연락을 받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길을 나섰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2,3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지만, 이혼 직후 대학원을 다닐 때는 그녀와 곧잘 어울려 다녔다. 선배는 나보다 꼭 12살이 많았고, 당시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녀는 남편과 중학생인 아들과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 나이에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내가 이혼을 했다는 건 대학원 동료들은 물론, 교수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선배는 달랐다. 선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녀와 가까워지면서야 나는 선배가 남편과 십 수년 전부터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이 갓난 아기였을 때 남편은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그 나쁜 버릇을 고치면 함께 살겠다!”고 선언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상태로 살면서, 항상 “이혼은 언제 해도 되잖아” 했단다. 그러면서 남편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온다면, 기꺼이 함께 살 거라는 희망을 내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이혼을 안 한 채 젊은 시절을 보내는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이혼을 원하지 않는 그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어 한 번도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를 통해, 나는 지연선배의 세대와 내 세대가 얼마나 다른지 깨닫곤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12년이라는 간격 속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행동의 차이를 본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답답하게 생각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어리석게 생각할지 모른다. 앞선 세대 여성들은,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여성일수록 이혼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아이가 있다면 이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가 이혼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인 것을 보면, 정말 많이 다르다.
물론, 그녀와 다른 것은 세대 차이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별거를 시작하면서 아기를 친정에 맡기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공부를 접고 돌아온 후, 한국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래서 항상 지연선배는 아이와 떨어져서도 잘 살고 있는 나를 대단해했다. 그녀는 많이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참고 유학을 마쳤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난 재혼을 하지 않았고, 그녀도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서로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나도, 선배도, 옛날에는 나누지 않던 각자의 상황을 좀더 편하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녀는 간혹,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까? 너나 내 심정을 알지” 하며, 다르지만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와 실존적인 문제를 화제 삼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 역시 아무에게나 쉽게 표현하지 않는 생각들을 꺼냈다.
“언니, 저는 아이를 보내면서 새엄마가 문제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걸 알았다면, 아이를 절대로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아이를 키웠다고 좋은 건 아니야. 지금 아들은 그런 나를 고마워하며 잘 챙기지. 그러나 부담도 크게 느끼는 것 같아. 아이에게 이런 부담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를 좀더 많이 낳았으면 좋았을 걸.”
“저는 재혼해 다시 아이를 낳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우습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에요. ‘저렇게 복잡하고 구질구질하게 왜 살지?’하면서, 제가 선택한 삶을 마치 깔끔하고 잘난 것인 냥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내가 바보구나!’ 해요. 재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사는 것이 순리라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이렇게 세월이 흘러서야 생각하게 되요. 너무 바보죠?”
“나도 그래. ‘이런 사람과는 못 살지!’ 하면서 집을 나오면서, 바람 피는 남자와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 같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보였어. 이혼을 안 할 거라면, 그들이 지혜롭지 않았나 생각해.”
“그럼, 언니는 다시 태어나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쩔 건데요? 저는 바보 같은 이 선택을 다시 할 것 같아요.”
“으음, 나도 그럴 것 같다. 하하!”
“하하하!”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만난 그녀는 옛날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살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이 더 늙고 기운이 떨어져야 할까?”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과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는 걸 한눈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뭐 때문에 그런 바보 같은 꿈을 꾸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날도 이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녀도 그랬겠지! 아이를 키우지 않아 자유로웠을지 모르지만, 결국 아이를 잃지 않았느냐고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녀의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선배도 그럴 것이다. 선배도 감히 이런 생각을 표현할 수는 없었으리라. 게다가 내가 선배를 안타까워하는 것만큼,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내 선택과 행동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워 보일까 생각하면서, 속으로 쓸쓸히 웃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선택이 최선이었다. 남편과 관련해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딸과 관련해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면, 또 후회와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일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렇게 자기 수준에서, 자기 한계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세월을 빠져나가겠지. 그렇게 인생을 걸어가겠지.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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