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다] 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10) 치매
※일다의 기획 연재 <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는 여성들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질병 및 증상에 대한 이해와,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체활동의 효과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박은지님은 체육교육과 졸업 후 퍼스널 트레이너와 운동처방사로 일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체육연구소에서 신체활동이 우리 몸에 미치는 생리학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병, 치매
우리 집 현관열쇠는 7자리 숫자의 비밀번호를 눌러서 열리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처음에는 네 자리 숫자만 누르면 되는 열쇠였다. 그런데 작년에, 엄마가 혼자 계실 때 모르는 사람이 비밀번호를 틀리지도 않고 눌러서 집에 들어왔던 적이 있다. “띠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엄마는 가족이 들어온 줄 알고 “왔어?” 하면서 방을 나섰는데 개들이 맹렬하게 짖어댔다고 한다. 그 기세에 움찔했는지 침입자는 곧 황급히 나간 모양이었다. 엄마가 현관에 도착했을 땐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켜지는 등만 훤하게 켜져 있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전해 듣고 가족 모두 놀라 열쇠를 바꾸고(네 자리 숫자에서 일곱 자리 숫자를 누르는 것으로) 정기적으로 비밀번호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가 집에 혼자 계실 때 밖에서 또 누군가 몇 차례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무서운 마음을 누르고 “누구세요!”라고 외쳤는데, 밖에서 아빠가 “응, 나야” 하고 대답했다. 비밀번호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계속 눌렀다 지웠다 반복하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아빠 건망증 때문에 못 살겠다”고 웃으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셨지만, 나는 속으로 ‘혹시 치매 초기증상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두려웠다. 두 분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사소한 건망증이 충분히 생길 수 있지만, 혹시나 치매가 아닐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아빠를 지켜봤는데 그 뒤론 별다른 사건이 없어 일단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 늘 마음 한쪽이 불안하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치매가 무섭다. 육체를 잠식하는 다른 병들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차라리 더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치매에 걸린 상태로 목숨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가진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나가 급기야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병, 치매. 치매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앗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과거까지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병이다.
뇌혈관성 치매, 예방할 수 있다
치매(dementia)란, 성장기에는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유지하다가 후천적으로 인지 기능에 손상이 오거나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단순한 건망증과는 다르게 치매에 걸리면 인지 기능 전체가 영향을 받아 성격이 달라지고, 감정이나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로 인해 전혀 다른 인격을 보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특징적인 증상으로는 우울 상태가 지속되고, 침착함이 없어지며, 걱정이 많아지고, 기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크게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나눌 수 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더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뇌혈관성 치매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걸린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비정상적인 단백질로 인해 서서히 뇌가 위축되어 결국 뇌세포가 괴사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드물기는 하지만, 노인이 아니어도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여주인공도 이십대 후반에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렸는데, 제작사 측은 29세 여성의 실화를 소재로 한 일본 TV 드라마가 모티브라고 밝혔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에 의해 뇌혈류의 장애가 생겨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치매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혈관성 치매의 치료제로 공인된 약물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혈관성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책을 읽거나 장기를 두는 등의 정적인 여가와 더불어, 산책하기나 운동을 하는 등 활동적인 여가를 함께 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금연, 운동, 당뇨 조절, 재활 및 물리치료 등을 통해 치매 위험인자를 조절하는 것이 권유된다.
치매환자에게 권장되는 신체활동
지금까지는 치매 치료를 위해 약물치료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비(非)약물요법인 사회 환경적 치료 방법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회 환경적 치료방법에는 미술요법, 원예치료요법, 운동치료요법, 작업치료요법, 음악치료요법, 게임치료요법, 문학치료요법 등이 있다. 그 중 운동요법은 항상 걸어 다니거나 외출하고 싶어 하는 치매환자의 특성에 부합되고, 과다한 에너지를 발산시켜 주며, 체력과 운동기능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에 좋다.
치매환자에게 있어서 운동치료의 목적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 전적으로 ‘삶의 질 향상’에 있다. 화장실에 가고, 밥을 먹고, 볼일을 보러 집 밖에 나가는 모든 일상 행동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근력을 강화하고 유연성과 평형성을 향상시켜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개인에 맞춘 프로그램을 통해 운동이 환자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한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다음 몇 가지를 주의해서 하도록 하자.
먼저, 안전 장치가 있어야 한다. 치매환자는 쉽게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핸드레일(난간)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서 운동을 하기보단 쿠션이 있는 바닥에서 운동하는 것이 좋다. 복잡한 동작보다는 단순하면서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동작을 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치매환자는 늦은 오후나 이른 저녁시간에 혼란과 불안 증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운동은 해가 지기 전에 하는 것이 좋다. 외국의 몇몇 병원들에서는 해가 지면 증세가 심해지니 주의하라는 표시로, 해가 질 때쯤 치매환자의 가슴에 “Sundowning effects”이라고 라벨을 달아준다.
운동 프로그램은 ‘치매가 얼마나 진행되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초기 치매환자는 대부분의 신체활동이 가능하지만, 기억소실 때문에 운동방법이나 운동하는 것 자체를 망각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속 격려를 해주면서 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운동은 ‘걷기’ 정도로 강도가 낮고 단순한 운동부터 시작한다.
치매 중기에는 행동조절이 힘들어 쉽게 동요하고 운동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중기부터는 기억력 상실이 뚜렷해지고 극도의 분노나 신체에 대한 공격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때문에 환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흥분을 조절하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언어능력을 상실하고, 이해력이나 집중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의 말기 치매환자라면 관절가동범위운동과 근력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환자는 의자나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옆 사람이 주물러주거나 문지르는 마사지를 해주고, 환자의 팔 다리를 천천히 스트레칭 해주는 식으로 근육을 이완시켜준다. 치매증상이 심한 환자는 일광욕을 하거나 흔들의자에 앉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기분을 달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박은지)
※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기획연재 기사와 관련하여 독자들이 더 알고 싶어 하는 질문을 접수합니다. 박은지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 분들은 일다 대표메일(ilda@ildaro.com)로 보내주세요. 연재를 마무리할 즈음 Q & A를 실을 계획입니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저널리즘 새지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 입학 대신 사회로 뛰어든 20대 이야기 (0) | 2011.04.29 |
---|---|
그 여성들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2) | 2011.04.26 |
성기 절단 이후에야 밖으로 나온 ‘트랜스젠더 인권’ (0) | 2011.04.22 |
알려져있지 않은 장애인들 ‘소리 낸다’ (0) | 2011.04.13 |
유흥업소 여성 7인의 자살…‘성 구매’에 대해 생각하다 (2) | 2011.04.08 |
인권운동의 ‘공간’을 마련하자 (0) | 2011.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