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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조이여울의 記錄(11) 5.18 민주화 운동을 기리며 
 
어릴 적의 기억이다. 온 가족이 광주에서 해남으로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 길에 올랐다. 버스는 서너 대가 같은 방향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앞의 버스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휴게소에 정차하더니 줄줄이 1시간이나 지체하고 말았다. 승객들의 불만이 제기되었고, 그때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래서 전라도는 안 된다니까.”
 
그러자 승객 중 또 다른 사람 몇몇이 그 말을 받아서, 잠시지만 버스 안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장이 되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전라도사람’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어른들의 ‘지역’이야기, ‘정치’이야기는 뜬금없었지만, 한편으로 뭔가 마음 아픈 것이 느껴졌다. 경상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경상도사람들은 ‘이래서 경상도는 안 된다니까’ 하는 식의 자조 섞인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버스 연착 문제가 정치이야기로까지 비화될 일도 없었을 테고.
 
나의 친인척들이 포함되기도 한 ‘전라도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았고, 정세에 관해 실제로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기도 했다. 때로 별 연관도 없는 것에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경우엔, 피해의식이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 자료 이미지: 다큐멘터리 <오월愛> 

 
당시만해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빨갱이 폭도들의 난동’ 쯤으로, 많은 광주사람들의 죽음과 끔찍한 고통이 ‘유언비어’ 쯤으로 취급 받던 때였다. 전라도사람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한 국가 안에서 철저히 매도되고 고립된 지역이 있었다는 것.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일반화되어 가는 때에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만, 사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해당 지역사람들에게는 어떤 경험이었을까. 그 ‘한’은 개개인의 내면에, 그리고 외부를 향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을까.
 
광주 민주항쟁 20주년 즈음에 알게 된 한 대학생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자기 어머니는 배가 아프다고 하신다고 얘기했다. 자신을 임신해 만삭인 배로 5.18을 겪었던 어머니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김없이 5월이면 그 해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몸을 통해 재생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접한 후로, 해마다 5월이면 나의 머리는 자동적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1980년 광주에서 태어난 아기는 서른이 넘었다.
 
이제는 대중들도, 그 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만 가지면 정보를 접할 수 있다. 5.18은 폭동이 아닌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4.19혁명과 마찬가지로 달력에도 기념일로 기록되었다. 1990년대 후반 최초의 정권 교체와 사회의 변화는 분명 광주사람들, 그리고 전라도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겪었던 고립과 소외를 조금씩 회복시켜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궁금해진다. 그 친구의 어머니의 배는 지금쯤 통증을 멈추었을까, 유가족들은 그 슬픔에 얼만큼 위로를 받았을까, 광주사람들은 ‘피해의식’ 혹은 ‘지역감정’이라 불릴만한 심리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주로 ‘기념식’에 초점 맞춰지곤 하는 5.18은 단 몇 일간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봉인되었던 기억, 풀지 못한 실타래를 조금씩 매듭지어 고통스러운 경험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어야 하는 몫이 우리에게 있다.
 
아마도 이 순간, 이 자리에서 5.18을 ‘기념’하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 그 해답과 힘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반공이데올로기 앞장세워 정치를 해온 세력들이 고스란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국민들은 전쟁과도 같은 희생을 치러 얻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쉽게 망각하곤 하지 않은가. 이것이 당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재생하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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