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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윤정의 멘토 찾기(2) 여성주의 타로 연구자 장지유
<우리 인생에는 멘토가 필요하다! “고윤정의 멘토 찾기”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필자 고윤정님은 부산에서 9년간 교육복지사로 일해 오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대학시절 여성주의에 눈 뜨며 멋진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고, 졸업 후 지역공동체운동을 하며 ‘나의 삶과 세상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입니다. 그녀의 멘토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끈끈한 연대가 우리 삶에 귀감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며칠 전 사진수업에서 만난 혹자는 이걸 두고 알레르기의 한 종류인 것 같다고 했다. 뚜렷한 원인은 알지 못해도 일정한 패턴은 있는 것 같고, 해결책이 있다고는 하나 체질 개선 없이는 재발률이 매우 높은 점에서 어쩌면 진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울증, 바로 요 놈 말이다.
때로는 몸살처럼 살짝 지나가기도 하나 때로는 몇 날 며칠 이불 뒤집어쓰고 끙끙댈 정도로 아프다. 심하다 싶을 때에는 ‘나는 왜 태어났나’는 근원적 질문에 답을 못 찾겠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기약 없이 자책모드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지난 20대는 수시로 발병하는 우울증을 조금 더 긴 주기로, 조금 덜 아프게 맞이하고자 효험이 좋다는 온갖 처방을 해댔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방구석에 박혀서 밤낮 술로도 달래보고, 4만원 딸랑 들고 홀로 여행도 감행하고, 여성주의자 친구들에게 위로도 실컷 받아보고. 수없는 노력과 도움 끝에 빈도수도 통증 정도도 옅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고치고 싶은 병이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 우습지만 가끔씩 우울증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밖으로만 내달리는 에너지 방향과 관심사를 내 안으로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나 할까. 그토록 떨치고 싶은 고질병인 요 놈이, 때로는 더 큰 병에 걸리지 않도록 자신 만을 사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알려주는 따끔한 예방주사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횟수로 2년 전 쯤 되겠다. 출근도 귀찮고 먹는 것도 하물며 자는 것도 귀찮은 울증기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한통 왔다. “여성주의 타로 모임 할 건데 같이 안 배울래?”
나를 이끌어 준 한마디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뜻을 담은 "Death(죽음, 종말)" 카드.
사실 나는 간간히 재미로 사주 카페를 가본적은 있지만 태생이 ‘합리성’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갖고 있는 이성중심주의자라 점술의 하나로 여겼던 타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대학 시절 많은 위로와 지지를 해주었던 친구들을 주 1회 만나 오만가지 수다를 떨면 일상이 재밌어 질까 하는 바람으로 참여하겠다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타로 여행은 '장지유'라는 매력적인 멘토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울증 개선 처방전을 선물로 받았다.
초기 수업 몇 번은 목적성이 없던 나에게 그냥 그런 시간이었다. 내 주 카드가 7번(전차)라는데 그 모양새가 네 마리 말을 끌고 가는 기사에다 뒤에는 노예가 끌려가고 있으니 꼭 앞뒤도 안보고 '전진'만 외쳐대는 단무지 무대뽀 같아 볼 때마다 거슬렸다. 게다가 보완해야할 점으로 ‘배려와 섬세함’를 꼽을 때는 은근히 화도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청이라는 조직사회에서 참한 기획은 잘려 먹기 일쑤고 어르신들 눈치 보느라 피가 마를 것 같았으며, 내 담당인 교육복지사업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철썩 같이 믿었던 애인에게 차인 상처는 아물지도 않아 '배려'라는 글자는 보기도 듣기도 싫었을 때였다.
자연스레 타로 수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그만 둘 궁리를 하던 어느 날, 그녀는 꼭 뒤풀이에 함께 가자고 하더니 마지못해 끌려간 맥주 집에서 그 해 연도 타로 카드를 봐주겠다했다. 그리고 뽑은 무시무시한 “Death(죽음)” 카드.
“이 카드는 소멸이 아니에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다는 거죠. 올해 뭐든 정리되나 봐요. 축하해요”라고 했다. 그 말에 북받친 뭔가가 툭 튀어나오듯 눈물 콧물이 사정없이 쏟아지던 건 왜일까.
분명 원해서 걸어왔다 싶은데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좀더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꿈꾸며 들어온 직장생활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 눈치가 아닌 어른들 눈치만 봐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튀지 말고 크게 웃지도 말라’는 충고에 맞춰 수년간 버텨낼 생각을 하니 숨이 막힌다 싶을 때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난 너무 ‘불안’했다. 신입사원 서류를 내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 버린 듯 했고 뭘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느껴졌다. 친구들은 쿨하게 적응하거나 어느 시기 과감히 다른 선택을 하던데, 나는 선택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도 없었다. 내게 시도라는 것은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했을 때만 행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준비도, 목표도, 노력도 희박했다.
장지유. 그녀는 이런 나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인생은 여러 단락이 있어요. 소망하는 것 작은 하나를 시작하다 보면 다른 경험들과 통합되기도 하면서 생각지 못한 문이 열리게 되요. 시작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글 써보고 싶다 하면 저널이 맞겠다며 써보라 하고, 사진 찍겠다 하면 은유적이고 직관적인 사진을 계속 찍어보라 했다. 그 힘 때문인가. 생각지 못하게 <일다>에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게 된 건지.
선입견을 줄이고 깜냥을 넓히다
▲ 여성임을 만족하고, 같이 소통하고 나누고자 노력하는 여성주의 타로 연구자, 장지유.
그녀의 조언이 내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게 할 만큼 힘을 주는 건 그녀가 살면서 터득한 노하우이기도 한 것 같다. 경상도 가부장적 집안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나 오로지 아들만을 최고로 여긴 환경이 너무 답답해 다니던 학교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서울 학교로 무작정 상경 했다는 그녀의 당시 나이는 17세. 20세도 아닌 17세에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서울에서는 우연히 잡지에서 발견한 여성인권모임에 활동하고자 무작정 먼저 문을 두드려 열심히 활동을 했고, 불현듯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며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상태로 호주로 떠나 몇 년을 살다오기도 한 그녀. “새로운 시작이 안 무서웠어요?”라고 물었더니 “더 나은 선택이라 믿으니까 한 번도 무서운 적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태생적으로 모험을 좋아하는 성향도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다른 무엇이 준비되었을 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 그녀 표현으로는 ‘깜냥’을 넓히는 기회로 보는 태도가 두려움이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것 같다.
스스로 헤아린다의 순 우리말인 ‘깜냥’.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내공 얕은 내가 정확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녀를 통해 유추해보면 하나의 사물이나 상황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고 발현된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승화시켜내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추진력 좋고 에너자이저지만,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 자신도 타인도 지칠 수 있다는 전차 기질을 헤아려 ‘쉼’과 ‘배려’를 더해 더욱 승화시켜나가라는 조언처럼.
그녀는 20대 때 가만히 상대를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싸가지 없다 들을 정도로 지적질을 잘해 ‘분기탱천’이라 불리었단다. 한 번도 그녀가 화낸 것을 본 적 없어 “성격이 바뀐 거예요?”라고 묻자 “분열의 시기였어요.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나은 통합이 이루어진 거니까 그 시절이 소중하죠.”란다.
그렇다면 내 우울증도 치료해야할 병이 아니라 통합을 위한 분열의 시기, 깜냥이 넓어지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소중한 시기가 아닐까.
그녀를 만나면서 가장 놀란 것은 사랑에 관한 자세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겐 오랜 연인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연인이 다른 사람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과 같이 살아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가죽장갑 끼고 뺨 몇 대 갈긴 후 기름통 들어붓고 난리쳐도 모자랄 판에 같이 살아보라 했다니!
“화 안나요?”
“그렇게 해보고 싶어 하니까, 함께한 시간들이 고마우니까.”
이건 뭐 속칭 쿨하다거나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는 것과는 개념이 달랐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소설 마지막에서 세 사람이 함께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처럼 관계를 규정하는 시선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바람 피우면 인생의 끝을 보게 될 거라며 애인에게 수시로 엄포를 놓는 나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태도지만, 관계에 선입견이 없는 그녀의 자세는 ‘~ 해야 만하고, ~ 모습이어야 하는’ 사회적 관습이 다른 각도에 따라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타로, 연대를 배우다
언젠가 한 번은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여러 모로 여자라서 차별 받은 경험이 많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했다. 여자들 간의 연대와 소통이 좋고 지금의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자주 가는 부산 서면 모 주점에서는 그녀와 술을 마시고 있으면 매번 공짜 안주 서비스를 받는다. 주점 사장 언니의 그간 고생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왔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부산에서 여성전용 주점을 직접 운영한 적도 있었는데, 좋은 친구들과 편하게 술 마시며 놀고 싶은 것이 개점 이유랬다. 여성회 회원들 대상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타로 교육을 하기도 했고 여성 타로연구소 카페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녀가 타로를 계속 공부하는 이유도 점술로서가 아니라 여성을 보듬어 안아가는 ‘심리 치유’의 도구로 유용하기 때문이라 한다. 나만 해도 점을 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 그녀를 만나게 된다.
“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게 뭐에요?”
“전 세계를 다니며 타로를 공부하는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거요.”
아마 그녀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꼭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며 나이스 하게 살아 갈 것이다.
여성임을 만족하고, 같이 소통하고 나누고자 노력하는 그녀에게 감사할 것이 많다. 2030 시기 어느 문턱에서 주저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 시도해보라고 해줘서, 내 미래는 더욱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 장담해줘서, 마음의 알레르기를 더이상 두렵게만 보지 않게 해줘서. (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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