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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여성가족부 앞 농성중인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피해자를 만나다
<이 르포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풋사과 몇 개를 들고 찾아갔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은박 돗자리를 깔고 앉아 소풍 나온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솔직히 나는 묻고 싶었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풋사과를 휴지로 닦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여물지 못해 단맛이 적은 사과임에도 그녀는 맛있다고 했다. 그녀 옆으로 크고 작은 차들이 쉼 없이 지나갔다. 나들이객들은 청계천 아래로 내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에 발을 담갔다. 어린 아이들이 탄 마차를 끌며 돌아온 관광상품 늙은 말이 돌바닥에 느린 말발굽 소리를 냈다. 그녀는 청계천 주변, 아스팔트 대신 깔린 돌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밤에 차가 지나다니면 저 돌바닥이 울려오는데, 잘 수가 없어. 머리까지 드르륵 울려대는데……”
좁은 텐트에 누인 몸은 소음에 시달린다. 한밤을 가리지 않는 이동차량만 소란이 아니다. 청계천 번화가에서 술을 먹고 온 남정네들이 그녀가 잠든 텐트 앞에 와 주정을 한다. 그들이 시청 인근 농성장 중 유독 그녀가 잠든 곳으로 찾아오는 이유는, 아무래도 텐트 앞에 걸린 플래카드 때문인 듯하다.
“성희롱 피해자를 복직시켜라”
머리 위로 이런 문구를 이고 그녀는 청계천 광장 한복판에 앉았다. 오며 가며 자신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과 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성희롱 피해자다. 사람들의 시선에 낙인이 찍힐까 그녀는 불안하다. 움츠러든다. 그런데도 거리에 나왔다. 그것도 아산에서부터 올라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섰다.
여성가족부 앞 노숙농성을 결심하기까지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를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억울해 부글부글 속이 끓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인 <금양물류>에서 14년간 근무했다. 그곳에서 관리자인 소장과 조장으로부터 일상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그런데 사건이 알려지자 정작 해고된 이는 ‘그녀’ 자신이었다. ‘회사 내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였다.
가해자는 버젓이 회사를 다녔다. 그녀는 복직을 요구하며 <금양물류>의 원청인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가해자는 회사 정문까지 찾아와 그녀를 비웃고 지나갔다. 현대자동차 용역직원들은 그녀를 향해 윽박질렀다.
“아줌마는 성희롱 당하고 쪽 팔리지도 않느냐.”
“정문 앞 인도도 현대자동차 땅이니 나가라.”
눈이 쏟아져도 비닐 한 장 덮지 못하게 했다. 우산 하나 담요 하나 눈에 보이면, 몸집이 큰 용역직원들이 쫓아 나와 눈을 부라렸다. 어느 한 날은 용역 직원들이 폭력을 휘둘렀다. 맨발로 차도까지 끌려 나온 그녀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병원에 실려가 전치 4주를 받았다. 점심때가 되자, 그녀는 안 넘어가는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으며 말했다. “밥 먹어야지. 잘 먹어야지 잘 싸우지.”
<금양물류>에 들어온 첫날부터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관리자들은 성적인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일하는 여자들의 엉덩이를 치고 가는 것은 예사였다. 하는 품새가 하도 당당해 그녀는 불쾌한 자신이 이상한 것인가 싶었다. 여성노동자들은 음담패설을 받아주기도, 피하기도, 뒤에 가서 화를 내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모두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다. 속으로 삭였다. ‘저 새끼들은 원래 저런 새끼들이니까. 일일이 저런 얘기에 신경 쓰면 회사 못 다녀.’ 신경 써봤자 어쩔 수 없었다. 욕설과 성적인 농담을 던지는 이는 정규직이나 관리자였다. 못 참겠으면 개인이 그만두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도 농담(?) 정도는 참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농담은 수위를 더해갔다. 가해자로부터 너랑 자고 싶다는 연락이 한밤중에 오기 시작했다. 참기를 포기하고 그녀는 이 문제를 회사에 알렸다. 그러자 회사는 피해자 그녀에게 정직을 내렸다. 처음에는 6개월, 재심을 요청하자 3개월의 정직이 결정됐다. 직장에 복귀하자 가해자들이 주도하는 따돌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사내에서 ‘남자 잘 꼬시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14년을 일한 회사였다.
그러던 중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냈다. 불법으로 사용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시켜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던 그녀는 이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녀에게 정규직이라는 희망이 스쳐갔다. ‘정규직이 된다.’ 동시에 물음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정규직이라면 이런 대우를 받았을까?’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정규직이 아니기에, 어떤 보호망도 없이 관리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하청 노동자 신세이기 때문에 숱한 욕설과 추행, 성희롱에 말 한마디 못하고 당해 왔다는 것을.
그녀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찾았다. 그곳에서 지금의 대리인, 권수정 조합원을 만났다. 며칠 후, 성희롱 문제가 노동조합 소식지에 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냈다. 그리고 그녀는 징계해고 됐다. 나흘 후, 그녀가 다니던 하청업체가 폐업을 했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형진기업>에 고용승계 됐다. 물론 그 속에는 가해자도 포함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해 겨울, 대법원이 인정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조합원 대다수가 해고를 당한다. 온갖 탄압에 노동조합마저 휘청거리자, 그녀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바뀌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이런 심정으로 짐을 쌌다. 서울행을 결심한 것이다. 대리인 권수정 씨도 그 짐을 함께 쌌다. 그것이 올해 5월 31일의 일이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갈 곳이 없다”
그녀의 대리인 권수정 씨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하기로 결정을 하며, 그 앞 청계 거리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봤다. 청계 광장은 밝았다.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권수정씨는 걱정했다. 언니(성희롱 피해 여성)가 이들을 보며 자신을 더 어둡게 느끼면 어떻게 하나.
서울로 올라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50여명의 해고와 징계에 허덕이는 노동조합이 흔쾌히 상경하라고 등 떠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큰 결심을 했는데 자신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잡을 생각도 없었다. ‘그녀’와 수정씨는 그저 노동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인연일 뿐이었다. 그러나 수정씨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플지, 그녀의 결단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밀치고 나온 것인지. 알 수 밖에 없었다. 수정씨 자신도 ‘그녀’의 입장에 선 적이 두 차례 있다. 금속노동조합 동료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수정씨는 싸웠고, 애썼고, 좌절했다.
같은 마음으로 두 여자가 서울로 올라왔다. 번듯한 여성가족부 건물 앞에 ‘애기무덤’ 같다 불리는 작은 텐트 두 동이 놓였다.
여성가족부는 자신들은 성희롱 예방교육을 담당할 뿐이라며, 성희롱 사건은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인권위의 성희롱 판정은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노동부는 이미 하청업체가 폐업되었으므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일한 14년간 하청업체만 7번이 바뀌었다. 직원들은 같은 자리에서 일하기만 하면 됐다. 원청에서 내려 보낸 바지 사장들만 바뀐 것이다. 이런 위장폐업에도 노동부는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다. 제 각기 이유를 들며 그녀들을 외면했다. 복직이라는 해결의 열쇠를 쥔 현대자동차는 하청업체의 문제라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했다. 오히려 용역직원을 불러다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는 한탄했다. “나는 어디로 가? 이 나라 어느 곳에도 갈 데가 없는 거야. 힘 없는 여성들은, 억울하게 당한 여성들은 갈 데가 없는 거야. 이게 현실인가 봐.”
공감, 격려, 연대…농성장으로 이어지는 발길들
자칫하면 단란한 청계 광장에서 그녀들의 텐트가 무덤처럼 놓일 뻔했다. 그러나 행인들이 발길을 멈췄다. 그녀들이 농성 텐트를 세운 첫 날, 누군가 다가와 아이스크림 통을 건넸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힘내시라고 말하고 서둘러 가버렸다. 어떤 사람은 돈을 건네고, 어떤 사람은 말을 나누고, 어떤 사람은 자신도 성폭력 피해자인데 어떻게 싸워야 하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갔다.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호적인 표현을 해왔다. 우호의 이유는 공감이었다. 이 길을 지나는 여성 누구나 성폭력 위협을 겪고, 그런 상황에 맞닥트려 분노하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수치스러워 했던 경험들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반응이 ‘그녀’는 놀라웠다. “이렇게 성희롱 당하는 여자들이 많은지 나도 몰랐어요. ‘잘 싸운다’ ‘대단하다’ 그런 말들을 하고 가는데, 들을 때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이나 힘든 것들이 사그라지고 녹는다고나 할까. 위로가 된다는 거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리고 내 싸움이 그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 거 같아요. 누군가 이 문제로 싸우고 있다는 자체가.”
힘을 주고,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텐트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누구는 감자를 쪄오고, 누구는 삼계탕을 끓여왔다. 도시락을, 베개를, 만화책을, 꽃이 그려진 걸개그림을 손에 들고 왔다. 각자 나름의 호의, 공감, 격려, 연대의 표현이다.
시청 주변에 놓은 수많은 농성장들도 그녀의 위안이 된다. 그녀의 주변에는 1000일 넘게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농성을 하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있다. 조금 더 가면 재개발 철거에 맞서 삶터를 지키는 명동 3구역 세입자들이 있다. 이 외에도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등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다. 그 농성장들을 오며 가며 그녀는 깨닫는다.
“이 시대에 아프고 억울하고 힘들게 싸우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
기운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큰 위로와 기운은 대리인 권수정씨에게 향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그녀가 이 넒은 곳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대리인 수정씨 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수정씨는 ‘그녀’로 인해 자신이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작년 성폭력 사건으로 휴식을 하고 6월에 복귀하자마자 8월에 피해자 대리인이 됐어요. 내가 살면서 2번씩이나 성폭력 사건을 경험했는데,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대로 내가 독한 년이고 내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 논리적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왜 당해야 하는 걸까, 이런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참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 내가 우리 언니 대리인 하려고 그랬나 보다. 전혀 논리적이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이 있어요. 참 다행이다. 당장 언니를 복직시키지 못하고, 나라는 사람이 못하는 것도 많지만 적어도 내가 언니 마음을 아니까, 다행이다. 적어도 언니가 답답한 것은 없게 할 수 있겠다. 그래, 잘 할 수 있지. 왜냐면 나는 피해자가 이런 말을 들을 때 이런 눈빛을 받을 때 어떤 심정인지, 그리고 얼마나 그런 문제에 예민해지는지,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아니까.”
수정씨 또한 이 싸움에서 나름의 위안을 받고 있다 했다. ‘그녀’의 싸움이 사람과 만나 위로가 되어간다.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한 싸움
8월 18일, 많은 사람이 농성장을 찾았다. 매일 저녁 촛불 문화제가 농성장에서 열렸다. 이날 문화제 명칭은 “8월의 크리스마스”다. 사람들이 색색의 종이에 ‘그녀’의 복직을 요구하는 글을 써 나무에 매달았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 여성가족부 건물주가 농성장을 가리려고 세워둔 화분이 트리나무 역할을 했다.
사진을 찍다가 종이에 쓰인 글 하나를 보았다. “성희롱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과를 받고 억울한 해고에서 구제받는 것이 8월에 크리스마스가 오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일까.”
‘그녀’와 대리인 권수정씨에게 이 싸움의 의미를 물었다.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현대자동차 내부에 성희롱 예방 교육이 진행됐다며 웃는다. 현대자동차 는 그녀의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가졌다. 그녀는 지난달 7월,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해 생긴 불안우울장애를 산업재해로 신청한 첫 사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녀는 ‘싸우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겠죠?’라고 묻는다.
“지금도 수많은 사업장들 속에서 성희롱 당하는 여성들이, 말 못하고 참는 여성들이 있을 거라고요. 이건 여성 인권의 문제예요. 자존심 문제예요. 처음에는 내가 억울해서 싸움을 못 접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알려졌는데 내 싸움이 진다면 부당하게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되는 여성들도 싸우고 싶어도 못 할 거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요. 못 싸우지. 용기를 못 낼 거라고요. 이렇게 싸우고도 진 것을 봤는데. 그걸 막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 해요. ‘거대한 현대자동차 기업하고도 싸워서 이겼다는데, 나도 싸워봐야지. 부당한 것을 말해야지’ 이런 용기를 주고 싶어요. 이기고 싶어요, 꼭.”
그렇지만 돌아서 묻는 그녀다. “나 겨울까지 여기 있어야 해?”
그 말을 들었다는 권수정 씨는 그저 말을 내게 전할 뿐인데도, 왈칵 눈물이 고인다. 아산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작년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는 수정씨의 ‘언니’다. 수정씨는 싸움의 의미를 말했다.
“파견법 제도에 의해서 대공장 하청업체 여성 노동자가 얼마나 취약한 노동조건에서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싸움이에요. 심지어 여성 노동자에게 성을 요구하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일까지 벌어지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천박하고 야만적인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 더 보탤 것은 언니가 싸워서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에요. 이 여성이 참지 않고 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며 몸을 일으켜 싸우면 탄압도 있지만 반대로 연대도 있다는 것을. 여기 농성장은 참 풍요로워요. 당장 이슈가 되진 않아도 오시는 한 분 한 분이 그만큼 소중하고, 그들이 하는 표현이 참 따듯해요. 그 과정이 복직과 무관하게, 언니에게 치유의 한 방법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르뽀 작가 희정)
▶ 사진 출처: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http://blog.jinbo.net/bokjik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대안언론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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