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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특별기획] 내성천 트러스트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3)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내성천을 대상으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한 습지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성천 트러스트’는 내성천 주변 본래 강의 땅이었던 사유지를 확보하여 다시 강의 품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시민 한 사람이 1평씩의 땅을 사기 위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일다>www.ildaro.com는 내성천트러스트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세 번째 글은 내성천 순례를 다녀온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이지홍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 모래와 얕은 물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내성천의 모습 © 박용훈
내성천과 함께 흘러본, 그 짜릿한 오르가즘!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설명이 될까?
주렁주렁 달린 욕망과 분노와 방황의 찌꺼기들이 떨어져나가 온전히 살덩이만 남아버린 듯한 느낌? 강물과 함께 섞여 물길 따라 흐른다는 건, 내게 그런 순간이었어.
서른여섯 해를 지탱해온 두 다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강 중심을 향하다
강줄기 사이사이 누런 배를 드러낸 모래 둔덕 중 하나에 멈춰 섰을 때,
우리 일행을 그곳으로 인도한 회백색의 그녀는 물길을 살피고 있었지.
물의 갈래 속에서 사람의 길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었어.
물의 농담(濃淡)으로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
너무나 쉬운 이치가 그 순간만큼은 내 생의 진리가 되었지.
나는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갓 난 오리처럼
회백색의 그녀가 디딘 발자국에 서둘러 나의 발을 포갰어.
아마 본능이겠지?
물의 흐름과 세기, 그리고 농담(濃淡)에 모든 감각의 촉수를 열어
물살에 휩쓸릴 위험을 막아 내려는.
그렇게 우리는 그녀가 찾은 물 속 길을 따라 비틀대며 강과 함께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갔어.
신발 가득 모래가 들어차고, 때론 발목까지 푹푹 꺼지는 그 무거운 직립보행.
하지만 마음만은 오히려 가벼웠지.
내침 김에 신발을 벗어 버렸어.
신발은 한 인간의 영혼을 대변하는 상징물이기도 한데,
차라리 신발을 떠내려 보내면 어떨까?
그만큼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지만 행여 모래무지 속에 숨어있을 날선 유리조각이라도 밟을까봐,
강 밖에서 마주하게 될 난처한 상황을 계산하며,
진드기처럼 여전히 내 몸에 퍼져있는 욕망과 분노와 방황의 찌꺼기가 툭 불거졌지.
풋!
인생의 해를 거듭할수록 더 비대해져만 가는 나의 속물근성!
우리 일행을 태우고 굽이굽이 휘도는 이곳 내성천은 참 독특한 곳이야.
바다도 아닌 것이, 강바닥은 온통 고운 모래로 되어 있어.
특히 우리가 걷고 있는 내성천 상류는
유속이 완만하고, 물이 크게 불지 않는다고 해.
물과 함께 구르는 모래들이 흩어졌다 쌓이면서 여러 물길을 만들어 내는데,
때문에 여러 갈래로 나뉜 물줄기는 서로 다른 깊이로 제각각 흘러가게 되는 거지.
두월교 위에 올라 넓은 시야로 강을 바라보게 되면,
여러 마리의 뱀이 물비늘을 반짝이며 다르지만 함께 흘러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다르지만 함께.
강과 함께 흘러간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자칫하다간 물살에 휩쓸릴 수 있다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하지.
허연 허벅지에 닿는 물의 시원한 촉감.
모래를 뚫고 뽀글뽀글 샘솟는 지하수를 발견하고.
모래를 긁어내어 간이 우물을 만들어 그곳에 모인 지하수로 목을 축이고.
쏴아 쏴아 물 가르는 소리에 옆 사람의 목소리가 묻혀
내 안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물길의 경계에서 모래와 함께 무너져 보는 경험도.
감당할 수 없는 세기의 물줄기에 휘엉청 흔들려 보는 것도 재미나지.
작은 섬처럼 누런 배를 드러낸 모래 위에서 만나는 낯선 생명체의 발자국이 마냥 신기하고.
(도시가 고향인 우리에게 강을 고향으로 둔 동물은 외계의 생명체와 별반 다르지 않지.)
모래벌에 간간히 박혀있는 수박을 보며, 지난 폭우를 떠올리는 것도.
일행으로부터 조금 떨어졌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던 오십을 훌쩍 넘긴 언니의 엄살이.
강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지.
사랑은 서로를 물고 빨고 부비며 서로를 느끼는 거잖아.
이산서원 부근에서 시작된 우리의 도강(渡江)은 두월교까지 이어졌어.
두월교 근처에는 마지막 여름휴가를 즐기는 몇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지.
얕은 물속에 엉덩이만 담근 채 민물고기를 잡는 아저씨.
첨벙대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아이들보다 더 아이 같은 젊은 엄마아빠들.
말없이 무심히 강을 지켜보는 눈빛과
허연 연기를 뿜어내는 큰 솥에 끓고 있을 소소한 행복감.
풍경처럼 나른한 그 광경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가물가물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어.
안기는 순간 모든 두려움이 사라져버리는 엄마 품처럼,
그렇게 안겨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었지.
그때
회백색의 그녀가 우리에게 말했어.
눈을 감고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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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땐 미처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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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무너지듯 발밑에서 빠져나갔어.
한 번 빗질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던 어느 병자의 증언처럼
무너지듯 내려앉는 모래의 빠른 침식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
인간의 개발 욕망이 만들어 낸 강 끝 어딘가의 상처를 메우기 위해
강은 또 다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일 거야.
강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갈 테고, 내성천은 점점 더 야위어지겠지.
강을 생의 터전으로 삼았던 많은 생명체는 실향의 고통 속에서
죽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떠나겠지.
그리고 우리도…
사랑을 추억하는 것조차 비겁함임을 깨닫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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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15일 내가 속한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회원들은 내성천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지율스님의 안내로 내성천 상류를 함께 걷고, 내성천 곳곳의 피멍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 기대를 하고 왔던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목적도 없이, 그저 그곳에 강이 있다기에 인연 따라 묻히듯 사람들에 섞여 그곳에 닿았을 뿐인데, 내성천과의 동행이라는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이지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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