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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산재 인정을 환영하며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직장내 성희롱의 ‘정신적 상해’ 인정한 것 의의
회사 관리자에게 성희롱 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가 겪고 있는 정신적 상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피해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 7월 12일 현대차 전국 판매영업소 앞에서 동시다발 일인시위가 진행됐다. ©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노동자 지원대책위
여성가족부 앞에서 장기노숙농성 중인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A씨가 그 주인공이다. A씨는 지난 7월, 직장 내에서 겪은 지속적인 성희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 우울, 불안 증상을 겪고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 신청을 냈다.
그녀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하청 업체에서 14년간 일 해오다 2009년 4월부터 간부 2명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자,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 성희롱 사실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과 자체 조사를 통해 ‘성희롱 피해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고 밝혔으며, 산재 판정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산업재해 보상은 2000년 부산 새마을금고에서 발생된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신체 상해에 대해 한번 이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산재 판정은 신체 상해가 아닌 정신적 상해에 대해 산업재해임을 인정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 캐나다 등 ‘성희롱 증후군’ 보상체계 마련돼 있어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는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신체에 입는 상해에 비해 이러한 정신적 상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 왔다. 직장내 성희롱을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대우’가 아닌, ‘짓궂은 장난’이나 ‘이성 관계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왜곡된 문화도 이러한 경향에 한 몫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문제 삼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성희롱 관련법이 제정되고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지만, 성희롱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왕따를 당하거나 보복성 인사조치를 받는 현실이다. 때문에 대다수 성희롱 피해자들은 그저 참거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식으로 피해를 떠안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상해와 후유증은 피해노동자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내 성희롱은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노동권뿐만 아니라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미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피해자가 겪는 무력감, 자존감 상실, 우울증 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으로 설명되고 있다. 정신적 상해를 포함해 위장장애, 두통, 치통 등 성희롱 피해 이후에 나타나는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성희롱 증후군’(sexual harassment syndrome)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급여 내용에 치료비 외에도 생계비, 직업 및 심리상담, 재활과 직장복귀를 위한 비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구제가 단지 ‘치료비’를 지급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 박탈로 인해 손실된 생계비를 보전해주고, 재활과 직장복귀까지 완료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질적인 피해구제는 ‘복직’이 선결조건이다
이번 산재인정 판결로, 피해자 A씨는 병원 치료비와 함께 휴업 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A씨는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나서 직장을 잃었고, 여성가족부 앞에서 180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여성이 직장내 성희롱 피해로 입은 산업재해로부터 회복되려면 ‘복직’이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산재인정은 큰 성과이지만, 우리 사회에 남은 큰 과제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실정에 맞는 ‘성희롱 증후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성희롱 피해자의 실질적 권리구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직장을 잃게 된 사례에서 보듯, 직장내 성희롱 및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아우를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이다.
※ [일다 논평]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 박희정(편집장) 조이여울(기자) 정안나(편집위원) 서영미(독자위원) 박김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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