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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 들여다보기 (상)
[노인복지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3년, 제도적 결함이 많아 요양기관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복지의 질은 떨어지고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은 너무 열악한 상황입니다.
이에 전국요양보호사협회와 공공운수노조,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제도 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지난 11월 22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과 ‘요양보호사 처우 및 지위 향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청원했습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가 관련 내용을 2회에 걸쳐 상세히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시>의 성희롱 장면은 현실이다
영화 <시>를 본 적이 있나요. 이창동 감독이 제작했고 원로배우 윤정희가 주연한 영화 말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손자와 단 둘이 사는데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의 집을 방문해서 약을 먹여 주고 목욕도 시켜 주지요.
노인을 목욕시켜 주던 어느 날, 갑자기 이 노인이 주인공을 껴안으며 욕조 안으로 끌어 당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세상에 이런 일이’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거부감도 가졌습니다.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감독이 억지를 부렸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요. 요양보호사에게는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라는 사실을 근래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윤정희가 맡은 역할이 바로 요양보호사입니다.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양보호사는 요양기관을 통해 국가(국민건강보험공단)로부터 일정액의 급여를 받습니다. 역으로, 이들 노인들은 국가의 지원으로 돌봄 서비스를 받습니다.
▲ 지난 4월 19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대병원 앞에서 간병.요양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따끈따끈 캠페인> 선포식을 가졌다. © 사진 - 공공운수노조
예전에는 노인이나 그 가족이 직접 자신의 비용으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했는데요. 3년 전에 국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만들면서, 이제는 사회보험제도로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국가가, 그 동안 개인과 가족에게 떠맡겨져 있던 노인요양의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정말 잘된 일이지요.
그런데 안을 들여다 보면 이 제도에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사실 제도를 처음 만들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되었는데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국가가 ‘꼼수’를 부렸다는 것인데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들어가는 국가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민간 공급기관을 무한정 늘리고, 공급기관들끼리 출혈경쟁을 하도록 부추긴 꼼수 말입니다.
꼼수의 결과는 요양보호사들의 희생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일선에서 직접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이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들의 희생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국요양보호사협회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공대위’를 꾸려 지난 11월 22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과 ‘요양보호사 처우 및 지위 향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청원했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요양기관 경쟁속 ‘국가공인 파출부’ 된 요양보호사
노인들이 돌봄 서비스를 받으려면 요양기관에 신청해야 해요. 그러면 요양기관은 소속되어있는 요양보호사를 각 가정에 파견합니다.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서는 직접 노인들을 수용해서, 소속된 요양보호사로 하여금 시설 안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고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 후, 요양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노인에게 제공한 돌봄 서비스의 시간 비율대로 비용을 신청합니다. 그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요양기관에 비용을 지급하지요.
그런데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르면,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일정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 가정에 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요양기관, 소위 ‘재가요양기관’에서는 신고만 하면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어요.
복잡한 절차 없이 누구나 요양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수의 요양기관이 난립하고 있어요. 제도가 시행된 2008년에는 요양기관의 숫자가 3천여 개였는데 불과 1년 만에 2만 개가 넘는 요양기관이 생겼어요. 특히 재가요양기관은 1년 만에 12배 이상 늘었답니다. 마찬가지로 시행 3년 만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도 백만 명이 넘었어요.
요양기관들이 넘쳐나다 보니, 노인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답니다. 원래는 노인들도 발생하는 비용의 15~20%는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데요. 요양기관에서 노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고 있어요. 본인부담금 면제해 줄 테니 우리 요양기관으로 오라고 유치작전을 펼치는 것이지요.
게다가 요양보호사들은 돌봄 서비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집안일을 해주고 있어요. 집안일을 안 해주면 노인들이 다른 요양기관으로 옮기니까, 속된 표현으로 잘릴까 봐 집안일까지 다 해주는 것이지요.
부정수급의 문제도 생기고 있어요. 예컨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2시간, 집안일 하는 데 4시간이 걸린다면, 원래는 2시간 분의 돌봄 서비스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기관에 지급해야 하는데요. 요양기관에서는 6시간 분의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아내는 것이지요. 엄밀하게 따지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마련하는 재원은 세금은 아니지만,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데도 말이지요.
요양기관 ‘허가제’로, “영리목적은 안돼”
▲ <따끈따끈 캠페인> 선포식 중에서, 간병.요양노동자이 따뜻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 공공운수노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에요. 돈을 벌기 위해 요양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돈벌이를 하는 요양기관이 너무 많아요. 건전하고 정직하게 운영하는 비영리 요양기관은 온갖 탈법 수단을 동원하는 영리 요양기관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요.
영리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돈벌이가 안 된다 싶으면 서비스 제공을 회피하고, 어떻게든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요. 이들이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소속된 요양보호사들의 급여를 깎는 것이고요.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영리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요?
결국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요양기관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서, 무분별하게 요양기관이 늘어나는 것을 통제할 필요가 있지요. 둘째, 영리 목적으로는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없도록, 또한 개인은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해요. 전문성을 가진 비영리 법인이나 단체만이 요양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요양기관이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고요.
더 나아가 요양기관에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도 바꿔야 해요. 지금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의 질이나 요양기관의 수준,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처우 이런 것들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이런 것들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서 요양기관에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겠지요.
한 가지 더!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요양기관이 필요해요. 현재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요양기관의 숫자가 극히 적은데요. 이렇게 해서는 요양기관의 실태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알 수 없지요. 직접 운영하면서 제도의 문제점도 인식하고 수준 높은 돌봄 서비스 모델도 만들 수 있지요.
지금 이야기한 것들은 결국 국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해서 사회보험 제도답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은 이런 내용들을 모두 반영하고 있습니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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